"아빤 왜 맨날..."

낭만사전 #14. 걸음 / 누군가와 걸음 맞추기

by Philip Lee

여섯 살 아들과 함께 공놀이를 했다. 집으로 가는 내 발걸음은 언제나처럼 빠르다. 내 손을 잡은 아들의 발걸음이 뒤쳐진다.


“빨리 가자.”

“왜? 난 천천히 가는 게 좋은데.”


이런 대화가 몇 번이나 계속되었다. 자꾸 재촉하는 내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들은 더욱 걸음을 늦춘다.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달랜다.


“집에 빨리 가서 씻어야지. 씻고 재밌게 놀자.”


그래도 아들은 요지부동이다.


“아빤 왜 맨날 빨리 걸어?”

한 번도 내 걸음이 빠르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걸었을 뿐. 아이의 눈에는 내 걸음이 항상 빨라 보였나보다. 그렇다면, 내 걸음을 무작정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순 없다. 내 걸음이 있으면, 아들의 걸음도 있다. 내 걸음이 있으면 상대방의 걸음도 있다. 내 걸음이 결코 기준이 되선 안 된다.


걸음을 약간 늦추었다. 아들도 화가 좀 풀렸는지 손을 다시 잡는다. 천천히 가는 것. 내 발걸음엔 맞지 않지만,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새소리도 더 잘 들리고, 보도블럭 사이의 풀꽃도 보인다.


걸음. 내 걸음만을 유지하고 따르지 않아야겠다.


다른 사람과 맞추어 걷는 걸음.

그 걸음 하나로 다른 이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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