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 or And

낭만사전 #11 End / 끝의 새로운 의미

by Philip Lee

끝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많은 시간을 들여 노력했는데도 뜻대로 안될 때.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고 무기력한 시간을 보낼 때. 타인과의 관계는 어그러져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을 때. 이런 나 자신에 실망하여 끊임없이 후회하고 자책할 때...


나 역시 지금이 그런 터널을 보내고 있다. 40대 초입. 2,30대 나름 땀 흘리고 열심히 살았다. 남들보다 치열하게 살았다고는 말 못해도 최소한 남들처럼은 했다. 그런데 지금 내게 있는 것이라고는 매달 나가는 은행대출금. 성인병을 의심해야 할 몸무게와 혈압. 매사를 신경질적으로 바라보는 째진 눈. 그것들뿐이다.


의욕이 없다. 살아갈 꿈이 없다.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 때, ‘그래 수고했어.’하며 뿌듯하게 내일을 그려볼 희망이 없다. 그저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아갈 뿐.


자연스레 ‘끝’이라는 단어가 저 멀리 보인다. 이제 끝이구나. 앞으로도 이렇게 그럭저럭 살아가겠구나. 무언가 새로 시작할 수도, 시작해서도 안 되는 시기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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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끝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끝은 ‘End’가 아니었다. End와 비슷한 발음의 ‘And’!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모든 순간이 끝(End)이 아니라, 당연히 지나가야 할(And)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지금 나의 눈물과 좌절도 의미가 있지 않나.


터널. 아무리 길고 지난해도 반드시 그 끝엔 찬란한 햇빛이 있다. 어둠 속에 있었기에 더욱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태양빛이 있다는 말이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 내게 손톱만큼의 희망조차도 사그러질 때, 끝이 아님을 깨달아야겠다. And가 계속된다면 결국 그토록 그리던 햇빛을 만날 것이다. 설사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두운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지 않을까.


지금 내가 기억해야 할 단어. End와 And!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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