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어떻게 쓸까(3) 일단 많이 쓰기
평소엔 안 그런데, 글을 쓸 때만 ‘완벽주의자’가 되는 이가 있다. 첫 문장은 누구나 매혹당하도록 아름다워야 하고, 문장은 별로 쓰지 않는 희귀한 단어가 있어야 한다. 문단에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절한 수의 문장이 채워져야 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마지막에는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 뺨치는 반전이 드러나야 하고, 아니면 냉혈한도 오열할만한 뜨거운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이런 완벽한 작품을 기대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삼십 분이 지났을까, 아니 겨우 십 여분? 펜대를 꺾어버리고, 노트북을 닫는 이가 수두룩하다. “나한테는 왜 뮤즈가 안 오는 거지?”, “역시 난 글 쓰는 데는 소질이 없나봐.” 자책하며... 글을 쓸 때부터 완벽한 작품을 쓰는 이는 없다. 스티븐 킹도, 김영하도, 돌아가신 도스토예프스키라도...
글의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구상하고, 얼개를 정확히 짜고 난 뒤, 글을 쓰는 이도 있다. 그도 자기가 구상한 내용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도중에 바뀐다. 새로운 인물이 나오기도 하고, 처음에는 엄청 중요할 것 같았던 내용이 통째로 빠지기도 한다.
나는 글을 쓸 때, (처음에는) 완벽함을 구사하지 않는다. 생각나는 것을 쭉 쓴다. 인용할만한 구절이 떠오르면 ‘붙여넣기’한다. 맞춤법이 틀려도 괜찮다. 문장이 꼭 끝나지 않아도 괜찮다. 일단 쭉 늘어놓는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아도 된다. 많이 쓰는 게 중요하다.
며칠이 지난 후, 글을 처음부터 매만진다. 제대로 안 끝난 문장은 완성시키고, 맞춤법도 교정한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새로운 문장을 넣기도 하고, 거추장스러운 문장은 빼버린다. 이때도 새롭게 생각나는 것은 쭉 늘어놓는다.
또 며칠이 지난 후, 글을 매만진다. 문장의 순서도 바뀌고, 아예 문단의 순서도 바뀌기도 한다. 생각나지 않아서 갑갑했던 단어가 ‘유레카’처럼 떠오르기도 한다. 논리가 전혀 없던 글이 나름의 논리를 갖게 된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았던 인용문도 제 자리를 찾는다. 누더기 같던 글이 설빔처럼 제법 매끈해진다.
하루나 이틀 지난 후, 마지막으로 글을 매만진다. 이때도 새롭게 변하는 경우도 있지만, 큰 변화는 없다. 맞춤법이나 미묘한 표현 정도 고친다. 이쯤되면 괜찮다 싶으면 고치기를 멈춘다. 글이 완성된 것이다.
어쩌면 글쓰기는 보드게임 ‘루미큐브’와 비슷하다. 자신의 타일을 가장 먼저 바닥에 내려놓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무작정 내려놓을 순 없다. 색깔은 다르지만 같은 숫자를 가진 타일이 3개 이상이어야 하며, 색깔이 같다면, 숫자 3개 이상이 연속될 때만 내려놓을 수 있다. 조커를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루미큐브를 잘 하는 사람은 타일을 잘 내려놓는 사람이다. 자신의 타일을 기존에 놓인 타일과 이리저리 비교해가며 내려놓을 수 있는 규칙을 찾는 사람이 이길 확률이 높다. 타일을 내려놓지 않고 (머리속으로만) 생각하고 계산하는 사람은 먼저 타일을 내려놓는 사람의 환호성만 들을 뿐.
글 쓰는 것. 처음부터 완벽을 추구하지 마라. 일단 많이 써라. 말이 되던 안 되든. 맞춤법이 맞든 틀리든. 차차 고치면 된다. 루미큐브는 많이 내려놓는 사람이 이긴다. 글은 많이 쓰는 사람이 결국은 잘 쓴다. 단어 하나라도, 문장 하나라도 더 써라.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필승의 패가 될지 혹시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