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문중일기 20화

제일 맛있던 사이다

"정답을 알려줘" 아니, 뻔한 답이라도

by Philip Lee

어느 때처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더니 여태까지와 사뭇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아내와 아이가 나란히 서서 현관에서 나를 맞이하는 게 아닌가. 미어캣처럼 나를 빤히 바라보며.


난 이들의 눈빛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용돈이 떨어졌나(아, 용돈은 내가 받지)? 핵폭탄세일하는 유럽 항공권이라도 득템했나? 그것도 아니면 가족을 위해 우직하게 일해 온 소같은 충심을 이제야 알아주는 건가? 수십 가지의 가능성을 놓고 몇 초간 행복한 고민이 떠오를 때쯤, 아내가 말한다. “애, 이 좀 빼줘!”


순간 김 빠졌지만, 내가 퇴근할 때까지 이를 빼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아내와 아들이 측은해졌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베네딕트 컴버배치처럼 얼른 집도 명령을 내린다. “실 가져와!”

아내는 베테랑 수간호사처럼 실을 가져와 말없이 아들의 이를 묶는다. 아내의 손이 약간 떨린다. 환자는 나를 믿을 수 있을지 의아한 표정이다. 나는 이에 묶인 실을 잡는다. 본격적으로 집도가 시작된다(BGM은 <하얀 거탑> OST면 좋겠다). “오늘 유치원에서 뭐했어? 재미있었어? 점심은 뭐 먹었어?” 시시콜콜한 질문을 던지며 환자를 안정시킨다.


드디어 때가 됐다. “크리스마스 선물 뭐 해 줄까?” 질문이 채 끝나기 전, 나의 오른손은 번개처럼 실을 잡아당긴다. 마치 강태공이 대어를 낚을 때처럼, 물수제비를 힘차게 날릴 때처럼 내 손은 재빠르고 정확했다. 아이의 입에 있던 이는 어느새 마룻바닥에 내동댕이쳐 있다. “뽑았다!” 내 외침에 아이는 어안이 벙벙하다. “하나도 안 아프지?” “응!” 아내도 신났다. “역시 자기가 이를 잘 뽑네.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되던데.”


하루의 피곤이 50%는 사라질 정도로 기분이 으쓱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있구나. 아들을 위해 내가 잘 하는 게 있구나.’ 항상 나보다 엄마를 더 찾고 편하게 생각하는 아이이기에 뿌듯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또 뺄 거 없어?”


문득, 아빠 생각이 났다. ‘옛날에 아빠도 내 이를 빼줬겠지. 몇 개 빼 주셨을까. 아빠도 잘 빼 주셨겠지. 나도 그런 아빠를 자랑스러워했겠지.’


아이가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아빠에 대한 글은 예전부터 쓰고 싶었다. 피일차일 미루다가 이제야 쓴다.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나는 돌아가셨을 때의 아빠 나이와 비슷해진 것이다.


6월이었다. 그 해 여름은 더위가 빨리 찾아왔다. 장마 전의 후텁지근한 공기는 불쾌지수를 높였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렀다. 한창 수업을 듣고 있었을 때, 담임 선생님이 연락을 받고 와서 내게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단다. 지금 병원에 가야겠다.”


나는 가게에서 배달하시는 아저씨(지금 생각해 보니 20대 초반의 형이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장례식장에는 가끔 명절 때 보던 친척 분들이 계셨다.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셨다. 그리고 엄마와 할머니가 보였다. 검은 한복을 입고 있었다. 세상 누구보다 슬픈 얼굴의, 피곤한 모습이었다.


어안이 벙벙하게 서 있는 나와 한 살 터울의 여동생에게 누군가가 사이다를 건넸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빨대 꽂은 병 사이다. 맛있었다. 시원했다. 그것이 장례식장에서 내가 맨 처음 경험한 감정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고작 맛있다고 사이다를 마시고 있었다니...


며칠의 장례식은 몇 시간처럼 끝났지만, 아버지의 부재는 그 후로 오래도록 나를 뒤흔들었다.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게 나의 작은 아킬레스건이었다. 아니, 결코 작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킬레스건은 더욱 견고하고 끈질기게 나를 짓눌렀다.


초등학교 때, 가정환경 조사 시간. 선생님은 다 눈을 감게 했다. “아버지가 안 계신 아이, 손 들어 보자.” 그 순간이 진저리쳐지게 싫었다. 다른 친구에게 들키지 않으려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내 마음은 울었다.


이후 어머니와 할머니(할머니도 고등학교 때 돌아가셨다)의 헌신과 희생으로 나와 동생은 아무 탈 없이 잘 컸다. 나도 결혼해 아들을 낳고,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다. 질풍노도의 십 대를 지나고, 꿈으로 가득 찬 20대를 지나고, 정신없이 달려간 30대가 지나고, 이제 40대 중반을 앞두고 있다. 이제 아빠 생각은 안 날 줄 알았다. 아빠의 부재라는 아킬레스건이 없어진 줄 알았다.


아니었다. 살면서 순간순간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아이가 사춘기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해요?”, “결혼 생활의 갈등은 어떻게 해소하나요?” 같은 질문부터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중년 이후의 삶은 어떻게 보내야 되나요?” 같은 것까지 묻고 싶은 게 많다.


“아버지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어른이 되기엔 난 어리고 여려.”


한 힙합 노래 가사처럼 난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다. 근사한 정답이 아니어도 된다. 답만 있으면 된다. 아니, 굳이 답을 안 해도 된다. 질문을 들어주기만 해도 좋겠다. 누군가 내 질문에 공감해 줄 수만 있었으면... 세상이라는 시험 문제를 나 혼자 풀고 있는 기분이다. 누군가가 있다면, 함께 풀 누군가가 있다면...


아들은 점점 더 사랑스러워진다. 초등학교를 앞두고 가방을 사 주었다. 고모는 예쁜 책상을 사 주었다. 학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들은 수십 년 전의 내 모습과 겹쳐 온다. 아들을 보며 흐뭇해하는 나의 모습에서는 수십 년 전의 아빠의 마음을 떠올려 본다.


‘아빠도 그랬겠지. 아빠도 내가 커 가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고 자랑스러우셨겠지...“


올해처럼 더울 때는 그때 마셨던 그 사이다가 생각난다.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는데...

난 아직도 아빠가 그립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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