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문중일기 18화

글쓰기, 뭐 그까짓 것!

자영업자의 에세이 분투기

by Philip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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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써야겠다’ 마음을 먹고, 글을 썼다. 12월 6일에 첫 글을 쓰고, 이번 글까지 7편째다. 20일에 7편이면, 보통 사흘에 한 편씩은 썼다. 최근에는 속도가 붙어 이틀에 한 편은 쓰는 것 같다. 많이 썼다고 자랑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맞다.


올해는 크게 세 종류의 글을 썼다. 첫 번째는 서평이다. 내가 자발적으로 쓴 경우는 거의 없다. 강요에 의해 쓴다. “따끈따끈한 새 책을 줄 테니 서평을 쓰거라.”는 출판사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매달 2~3편의 서평을 썼다. 본격적으로 서평단 활동을 한 것이 4~5년 전이니, 그때부터 책 소장의 욕심에 눈이 멀어 서평을 써 오고 있다.

두 번째는 뜨거운 여름부터 서늘한 초겨울까지 작업했던 내 책을 위한 글쓰기. ‘책을 한번 내봐야지, 무엇을 쓸까, 어디에서 내면 좋을까?’라며 철저한 고민과 고증 끝에 쓴 것은 아니다. 정말 우연히, ‘이런 식으로도 책을 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손쉽게(그렇다고, 책 쓰는 게 쉬웠던 건 절대 아니다.) 책을 쓰게 되었다.


마지막은 요즘 쓰고 있는 에세이. 위의 두 가지 글쓰기보다 더 즐겁게 쓰고 있다(즐겨 보던 미드를 안 보고 있으니까). 오늘은 쓰고 있는 에세이에 대한 에세이를 써 보겠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글쓰기에 대한 글도 나중에 쓰려 한다(편히 글감을 찾으려는 고도의 술수?).


에세이를 써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내가 하도 글을 안 쓰니까 글쓰기를 연습하기 위한 용도로 꾸준히 써봐야겠다는 의도에서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쓸 게 없었다. 쓰고는 싶은데, 쓸게 없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배고픈데, 쌀이 떨어졌다는 상황과 같을까. 어쨌든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힌 꼴이다.


찬찬히 생각해 보니, 결국엔 (내) 이야기를 써야겠더라. 최대한 나를 숨기고 글을 써보겠다는 계획(복면작가도 아니고)은 며칠도 안 돼서 수포로 돌아갔다. 나를 (조금은) 드러내야겠다고 결심(내게 이건 결심의 문제다)하고, 글을 썼다.


다행히 쓸 게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왠지 알리기 싫었던 문구점 이야기도 썼다. 문구점과 나는 떼려야 뗄 수 없으니까. 음... 물과 물고기. 하늘과 새. 호빵과 팥(?). 이 정도의 관계랄까.


어디서 쓰느냐. 친환경원목 서재책상에서 에드워드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들으며, 방금 정성스럽게 내린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원두커피를 마시며 쓰고 싶지만, 나의 애증의 장소, 문구점에서 쓴다. 원두커피 대신에 한국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 믹스커피를 마시며, 바깥 차소리와 새소리의 언밸런스한 협주를 들으며 쓴다.


아침 장사 끝나고, 제일 한가할 때 쓴다. 물론, 손님이 오면 글의 리듬은 끊기고, 최대한 빨리 가 주시기를 바라며 말이 빨라지지만, 이 시간이 제일 집중이 잘 된다. 벌써 20분 동안 A4 한 장을 썼으니까.


글감은 어떻게 찾나. 어떤 주제나 소재가 떠오르면, 숙성한다. 어디에서? 머릿속에서. 하루나 이틀 숙성하면, 주제가 조금 더 명확해지고,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불현듯 생각나기도 한다. 김치를 만들 때, 처음에는 생배추 씹는 것 같다가도 며칠 지나면 ‘이게 바로 한국의 맛이야’라며 곁들일 라면을 끓이는 것처럼... 생각만큼 숙성이 안 될 때는 다른 주제를 생각하면 된다.


잘 숙성된(그래봐야 이틀?) 글감을 꺼내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서론-본론-결론으로 미리 계획하지 않는다. 분량도 전혀 머릿속에 없다. 에세이 아닌가. 내 마음대로 쓴다. 독자의 마음과 기호도 생각하지 않는다. 고려할 독자도 없는데(왠지 씁쓸)... 손가락에 모터 달린 듯, 쭉 쓴다. 한 시간쯤 지나면 초고가 완성.


글을 마치고, ‘그래 가끔 하늘을 봐야 돼’하며 멍 때리고 있을 때쯤, 교대하러 아내가 나온다(이때의 아내 모습이 제일 반갑다). 전성기 시절 이종범의 도루 때보다 빠르게 집으로 뛰어 들어간다. 밥을 먹고, 도서관 가서 책을 빌리고, (아주 조금) 집안일을 하고, (아주 가끔) 헬스를 하고, (거의 매일) 낮잠 자고, 아이들의 하교 시간인 4시 쯤, 다시 전장으로 나온다.


몇 차례 손님 러시를 받고 나면, 다시 노트북을 켠다. 그리고 아까 썼던 초고를 수정한다. 몇 시간 전에 쓴 것인데도, 수정할 것이 많다. 이렇게 다 쓰고 나면 브런치에 올린다. 혹시나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독자를 위해 SNS에도 공유한다(없다면 말고). 그날 다 못 쓰면 다음날로 넘긴다(뭐, 청탁원고가 아니니까 상관없다).


이렇게 한 편을 쓰면, 기분이 상쾌하다. 진부한 표현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머리를 짜내야 하고, 가끔은 (완결 안 된) 미드를 보고 싶어 미칠 것 같고, 다음엔 무엇을 쓸지 (약간의) 걱정도 하지만, 글을 쓰는 순간 어느 때보다 몰입한다.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확실히 재미있다. 이 맛을 알기에 계속 쓰나 보다.


다 쓰고 나면, 글 쓰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은 순삭(순간삭제)되어 버리고, ‘글쓰기가 제일 쉬웠어요.’라며 공부가 제일 쉬웠다는 (나의 입장에서는) 재수 없던 옛날 우등생의 마음을 어느 정도 느낀다.


기우도 생긴다. 지금은 1년 중, 제일 여유로울 때(장사가 안 된다는 말입니다. 흑흑)라서 이런 루틴으로 쓸 수 있지만, 아이들이 일렬종대로 밀려와 ‘그만 와’라며 행복한 고함을 외치는 3월에는 이렇게 쓸 수 없을 것이다. 어떡하지? 그때는 또 그때 생각하면 되겠지. 뭐, 일단은 오늘만 생각한다. 원빈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너희들은 내일을 보고 살아가겠지? 나는 오늘을 보고 살아간다!”(응? 갑자기? 원빈과 나는 나이만 같다)


그냥저냥 오늘도 한 편 썼다. 지금부터 다음 편 글 쓸 때까지가 제일 기분이 좋다. (누군가 내진 않았지만) 숙제를 끝낸 느낌. 이젠 놀아야겠다. 근데, 다음 글은 뭐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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