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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by 청천

저녁에 뉴스를 시청하면서 준서에게 농담을 던졌다.

어느 노인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면서 의사에게 말했단다. 자기는 아주 규칙적으로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매일 아침 정확히 8시가 되면 대변을 본다고...

의사 말하길, ‘그러면 지극히 정상이다. 腸(장) 활동이 규칙적이니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다.’

노인 왈, ‘그런데 저의 기상 시간은 아홉 시입니다.’


이야기는 마무리가 되었는데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 무슨 말을 하면 이해를 했는지 못했는지 알 수가 없으니 그 말에 대한 의미를 설명해주어야 하는바 그렇게 되면 재미가 그야말로 半減(반감) 아니라 아예 없어져 버리는 경우까지 있다. 내가 ‘무슨 의미인지 몰라?’ 하고 물으니 이해는 했단다. 그렇다면 반응을 보이는 게 나을 텐데... 하여튼 내가 껍닥에 대해 무딘 것처럼 이 양반(李氏 집안의 특성임에 분명하다.)은 언어생활과 반응 부분에서 제로(zero)에 수렴한다.


나는 길을 지나다가 광고판이나 게시 문구, 펼침막 등을 보게 될 때 그 의도를 이해해 보고자 노력(?)을 하는 편이고 가끔 표현 부분을 따지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은파 산책길에 지나게 되는 지곡 교회 주차장 알림판의 글, 『예배 시간 전후로 외부 차량 주차 금지』라는 게시 문구. 이것을 보고 준서에게 물었다. 내용이 이해가 되는가? 조금이라도 어색한 곳이 있는가를... 없단다. 당연한 이야기로 신도들이 주차장을 사용해야지 그 시간에 외부인들이 자리를 차지하면 되겠는가 하는 말씸.


내가 하는 말. 저건 너무 두루뭉술하여 혼동을 주는 문구이다. 예배 시간이 제시되어 있지 않으니 도무지 시간을 알 수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정확한 시간 제시가 되어야 그 앞뒤로 이용 자제를 할 텐데 그게 명확하지 않은 탓에 이는 분쟁과 다툼의 소지가 될 수 있다... 우리 교회를 예로 들면 오후 예배가 한시 삼십 분인 바 그게 표준(?)이라면 여기도 그 시간 전후로 이용을 하지 않으면 될까? 그러나 그 시간은 교회마다 다르니(오후 3시, 5시 등)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한단 말인가? 차라리 ‘일요일은 외부 차량 주차장 사용 금지’라고 붙여놓아 버리면 개운하지 않을까?


리필.jpg

말이 나온 김에 앞뒤가 어울리지 않거나 모순(矛盾)되는 것 한두 개 가져와 보자. 우리가 알기로 ‘무한(無限)은 글자 그대로 수, 양, 공간, 시간 따위에 제한이나 한계가 없음’이라는 뜻이고 ‘리필’이라는 단어는 영어 refill로서 ‘비어 있는 그릇에 내용물을 다시 채우다’라는 뜻이니 고객이 배(腹)가 터질 때까지, 토할 때까지, 다리 아파 음식 가지러 나갈 수 없을 때까지 다시 채우고 드셔도 된다는 말 아니겠는가? 그런데 괄호 열고 ‘3회’라고 횟수를 제한해 버리니 이런 횡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처음부터 ‘리필은 세 번만 하셈’이라고 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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