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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는 미운 오리 새끼다

by 보나


나는 라테를 참 좋아한다. 언젠가부터 카페에 가면 라테만 주문했고, 회사에서 동료들은 당연하다는 듯 라테를 주문해 준다.


"보나 책임은 (당연히) 라테지?"


팀장님이 커피를 사주실 때도 다른 사람들은 눈치껏 가장 저렴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지만, 나는 눈치 없게도 꿋꿋하게 라테를 주문한다.


이 더운 날, 역시 얼음이 한가득 들어가 있는 투명한 유리컵에 멋지게 커피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라테는 단연코 최고다. 대부분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시절에는 캐러멜 마끼아또 같은 달달한 커피를 좋아했었는데 언젠가부터는 라테만 먹게 되었다. 아메리카노를 먹으면 유난히 머리가 아프고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이유였다. 그러다가 한 번은 우유가 섞여 있다는 라테를 먹어 보았는데 우유가 들어 있어서 인지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유제품을 좋아하기도 했던 나는 그 뒤로 라테만 먹는 라테쟁이가 된다.




글쓰기를 하면서도 라테 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만의 이유가 있는, 나만의 매력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내가 나만의 이유와 취향이 있어서 라테만 마시듯,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겐 라테 같은 존재가 되어 주면 좋겠다. 남들이 당연하다 생각하며 하는 것들이, 본인에게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 그때 선택할 수 있는 작은 위로가 되면 좋겠다.


어릴 적, '미운 오리 새끼'란 동화책을 읽고 나서 스스로가 미운 오리 새끼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왜 남들과 다를까? 왜 이렇게 유난스러울까? 남들은 쉽게 하는 게 나에겐 왜 어려운 걸까? 알고 보니 나는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섬세한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감정을 세세하게 느끼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걱정이 참 많았다. 오죽했으면 대학교 때 친구들이 나를 '걱정 인형'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그 당시엔 진짜 '걱정'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길 주저했다. 머릿속엔 온갖 걱정들만 산더미여서 그 생각 주머니들로 머리가 가득 차 터질 것 같았다.


그 당시에 서점에 가면 '난 생각이 너무 많아' 같은 류의 책들만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점차 줄기 시작하더니, 잡생각들을 끊어내는 노하우들을 스스로 터득하게 되었다. 수많은 책들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터득한 것 같기도 하지만, 회사생활이 나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공대 출신인 나는 공대에서 배우는 학문이 참 맞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생 때 교직이수를 하며 교직학점으로 내 학점을 채우기도 했다. 나는 분명 문과에 맞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공대에 진학했으니 어떻게든 학점을 따고 졸업해야 했다. 교직 이수 학점으로 공대학문의 부족한 학점을 커버하고, 봉사활동 이력을 열심히 채우고, 글로벌 마인드를 길러서 간신히 취업에 성공했다.


그 상태로 전공을 살려 취업했으니, 하는 일 역시도 적성에 맞지 않았다. 처음에는 정말 많이 방황했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니 3년만 다니고 퇴사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럴 용기도 없었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주어진 것 중 할 수 있는 것들을 골라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그러다 보니 공대에서 주요하게 필요한 논리적 사고가 나에게 무척 많이 도움이 되었다. 군더더기 없는 것을 골라내고, 필요한 것만, 유용한 것만 뽑아낼 줄 아는 능력은 잡생각 많은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주요한 것만 제외하고 사소한 것들은 쳐낼 수 있는 습관이 차차 몸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몇 년 간 이런 사고로 살다 보니, 회사형 인간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회사에 맞지 않는 이상적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과 현실의 갭이 점점 줄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내면에서는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이러다 내가 가진, 나만이 가진 순수한 이상이 사라지면 어쩌지? 하는 이상적인 의문이었다. 나만의 순수함이 매력이라 생각했고 그걸 잃으면 나를 잃는다 생각했다. 하지만 순수함은 잃는 게 아니라, 가진 채로 자신을 충분히 성장시킬 수 있는 거였다.


라테와 미운 오리 새끼는 공통점이 전혀 없는 것 같지만, 자신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자신만의 개성을 못났다고 생각하면 못난 거고, 자신만의 강점으로 사용한다면 강점이 될 수 있는 거다. 백조 무리들 안에서도 그들의 영역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건 취하고, 나만의 강점을 조합하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

아메리카노는 원두 자체의 오리지널 맛을 느낄 수 있고, 라테는 원두의 맛과 우유의 적당한 조합으로 이루어져 특징이 확실하다. 그리고 그 적당한 조합은 나의 최애가 되는 선택을 받았다.


그런 면에서 내가 사랑하는 라테의 자태를 올려본다.

이 더운 여름날 모두 시원하게, 그리고 건강하시기를!



KakaoTalk_20250709_145720510.jpg 어느 여름날의 라떼와 아메리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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