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유난히도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날이 있다. 그렇게 느껴지는 느낌일 수도 있고, 실제로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당근으로 택배를 보내주기로 했고 미리 집 근처에 있는 GS 편의점택배 앱에 예약을 해 놓았다. 이제 박스 포장만 해서 가져가면 되는데, 책이라 무게가 꽤 되었고 8kg 정도의 박스를 나 혼자 들고 가기엔 어려울 것 같았다. 이때부터 난관이 시작되었다.
집에 있는 끌고 다니는 캐리어에 박스를 넣다가 틈이 좁아서, 손등에 한번 멍이 들었다. 비가 오는 날 차를 끌고 집 근처 편의점에 갔다. 가서 택배를 접수하려고 하는데 아무리 기계를 살펴봐도 QR code 찍는 부분이 없는 거다. 몇 번이나 삽질을 하고 실패하고 결국 편의점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미 (나 자신에게) 화가 났지만 편의점 직원을 부르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온 곳은 GS편의점이 아니라, CU 편의점이었다!! 아니 이런 착각을 하다니.
아침부터 손을 다치고 편의점을 착각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택배 기계 앞에서 시간을 보낸 탓에, 아이 학교 픽업 가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컵라면으로 대충 빠르게 점심을 때운 후 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향했다. 학교 앞에 가서 또 깨달았다. 비가 오는데 내 우산만 가져오고 아이의 우산은 가져오지 않은 것을. 그래도 같이 쓰면 되니 이 정도는 애교에 속한다.
그리고 집에 와서 빨래를 꺼내는 데 끈이 있는 옷들을 망에 넣지 않고 돌리는 바람에 아이의 치마와 내 치마, 그리고 속옷들이 마구마구 엉켜있었다. 마치 복잡하고 어지러운 내 마음 같았다.
당연하다 생각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때가 있다. 가끔 나만의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내가 너무 당연히 생각하고 있던 생각, 그게 틀린 걸 수도 있다. 나는 분명 ‘아이스’ 라테를 주문했다고 생각했는데 따뜻한 라테가 나왔을 때와 같이.
누구에게나 평소와 다를 게 없는 날인 거 같은데 이상하게도 일이 안 풀리는 것 같은 날이 분명 있을 거다. 이런 날이면 짜증이 나고, 힘들다. 나 같으면 정신력과 인내력이 바닥을 쳐서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럴 때일수록 많은 걸 하려 하지 말고 천천히 움직이고, 뭘 ‘더’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 그냥 오늘은 무사히 보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자. 그렇게 찬찬히 흘려보내는 날들도 있어야 다음날 또 활기차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나에겐 오늘이 그런 날이다. 찬찬히 오늘이, 큰 별일 없이 무사히 흘러감에 감사한 날. 이런 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