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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수수께끼 놀이

by 보나


아이와 대화를 시작했다. 오늘은 어떤 억울한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짜증이 가득한 지에 대해서.




오늘은 아이가 원하는 걸 먼저 하고 숙제를 하기로 했다. 영어영상을 30분 본 후에 숙제를 시작하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을 하고 자리에 앉기까지 또다시 30분이 흘렀다. 앉아서 시작한 연산 숙제는 아이의 자신감을 바닥으로 떨어 뜨렸다. 연산 숙제를 시작하면 아이의 머릿속엔 이런 생각이 떠오르나 보다.


'나는 바보라 연산을 잘 못해. 자꾸 더하기를 하는데 빼기가 생각이 나고 빼기를 해야 하는데 더하게 돼. 그래서 자꾸 멍 때리게 돼.'


아이는 연산을 할 때마다 나에게 말한다.


"엄마 난 이거 빨리 못해, 자꾸 멍 때리게 된단 말이야."


하며 이야기한다. 내가 자꾸 시간 안에 빨리 하라고 해서 그런가? 그렇다고 해서 세월아 네월아 아이가 풀도록 기다리기에는 다른 숙제도 해야 하는데... 구몬수학 연산 3장을 1시간 내내 풀도록 두는 게 맞는 걸까. 어제는 이런 고민을 하다가 아이를 그냥 놔두었다. 그냥 놔두고 잠잘 시간이 되어 그냥 자자고 했다.


침대에 누워서 아이는 걱정을 한다.


"엄마 나 연산 다 못했어. 영어 숙제도 다 못했는데..."

"괜찮아. 오늘은 하지 말고 일찍 자자."


항상 숙제를 하느라 늦게 자는 아이를 보며 안 그래도 섬세한 아이가 더 섬세해지는 것 같아 잠을 일찍 재워보기로 했다. 숙제를 못해가는 한이 있더라도.


조금 징징 거리던 아이 옆에 같이 누웠다. 그리고는 "오늘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었니?" 하고 가볍게 물었다.

아이는 울먹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늘 학교에서 연극한다고 역할을 정했는데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내가 하기 싫은 역할이 됐어. 나는 여동생 역할 하고 싶은데 엄마 역할 하게 됐어"

"엄마 역할이 왜 싫어?"

"소리 지르는 대사가 있는데 그걸 (부끄러워서) 못 하겠어."


아이가 많이 속상했을 것 같았다.

"그랬구나. 진짜 진짜 속상했겠다. 그렇지? 엄마가 안아줄게." 하고 안아 주었다. 그 외에 다른 말은 넣어 두었다.


아이는 내가 이렇게 해주니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연극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생이 다가와 내 옆에 누웠다. 엄마랑 둘이 이야기하는데 동생이 다가오니 첫째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더 싸움이 격해지기 전에 나는 놀이를 제안했다.


"엄마랑 누워서 수수께끼 내기 놀이할까?"


오늘 오전에 봤던 <어린이는 멀리 간다> 책에서 수수께끼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고, 첫째가 수수께끼를 참 좋아하는 걸 알기 때문에 놀이를 제안해 보았다.


"응!! 할래 할래!" 하며 거실로 나가더니 수수께끼 책을 찾는다.

"엄마 수수께끼 책이 어디 있지?"

"엄마도 모르겠는데..?"

"없네. 에이 모르겠다. 그냥 내가 생각해서 문제 낼게!"


이렇게 시작된 첫째의 수수께끼들.


문제 : 오렌지가 얼면?

정답 : 오렌지바


문제 : 햇볕이 있으면 죽는 사람은?

정답 : 눈사람


문제 : 거북이가 구워지면?

(힌트는 막내이모네 근처에 있는 거야, 막내이모네 집 근처에 이것이 유명한 가게가 있다)

정답 : 거북이빵


본인의 기준으로 수수께끼를 내면서 무척 즐거워했다. 깔깔깔, 호호호 웃음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퍼졌다. 둘째는 언니에게 맞추기 쉬운 걸 내달라고 요구했고 언니의 퀴즈에 눈사람이라는 답을 해서 맞췄다. 첫째도, 둘째도, 엄마도 모두 즐거운 이 시간. 자기 전에 이렇게 셋이 아무렇게나 누워서 나누는 대화가 무척 즐거웠다.


매일 이런 시간을 가지자 다짐했는데 왜 그게 잘 안 됐을까?


첫째는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30분 정도 엄마와 동생과 이야기하고 잠이 들었다. 자기 전 기분이 수면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에 일어난 첫째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평소처럼 동생에게 화내거나 나쁜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생을 배려하는 모습도 보였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무얼까?

공부, 학원숙제, 오늘 해야 할 일... 이런 것일까?

아니다, 분명 아이들에게는 노는 시간, 부모와 교감하는 시간이 1순위다.


아이들에게 매일 행복을 선물하고, 깔깔깔 웃게 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 순간이 모두가 행복한 순간이다.


아이의 행복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엄마 우리 내일 아침에 수수께끼 놀이 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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