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으로 이틀간 여행을 다녀왔을 뿐인데 디지털 디톡스가 되었다. 집에 돌아왔는데 휴대폰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휴대폰이 옆에 없으면 자꾸 손이 가게 되고 찾게 되고 그랬었는데. 단 이틀 만에 휴대폰의 존재를 잊는 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이게 자연이 주는 힘인가 보다. 오늘은 여행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우리 가족은 캠핑을 자주 갔었고, 국내여행도 가끔 가고, 아주 가끔은 해외로도 여행을 간다.
이 3가지 스타일의 여행은 다녀올 때마다 얻는 게 다르다.
캠핑을 다녀오면 자연 속에서 곤충들도 보고, 다슬기도 잡고, 자연 속 공기를 느끼며 밥도 먹고, 불멍도 해보고 오지만 집에 돌아오면 몸이 무척 피곤하다.
국내 여행은 리조트로 가면 리조트 내의 수영장, 키즈카페, 식당, 조식뷔페 등을 누리고 편하고 재미있게 놀다 온다. 그리고 다녀오면 몸도 편안하다.
해외여행은 일단 비행기라는 평소와는 다른 교통수단을 타게 되고, 면세점도 구경해 보며,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국내와는 다른 이국적인 풍경, 문화 등을 느끼고 온다.
3가지의 여행 중 어느 여행이 가장 좋다 말하기는 어렵다. 각자의 여행 스타일이 주는 매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에 갔던 한옥 국내여행은 그동안 갔던 여행들과는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4가지의 깨달음을 주었다.
첫 번째, 한옥 독채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우아하고 좋지 않다는 것.
한옥은 겉으로 보기에는 멋있고 고급스럽고 우아한 느낌이 있지만 그 안에서 먹고 자고 사는 건 또 다른 문제다. 한옥에서 이불을 깔고 2 밤을 잤는데 둘째 날은 등이 배겨서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눈은 감고 있지만 몸은 잠들지 않은 느낌으로 누워 있었다. 그리고 벌레들과 함께 하는 밤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신기한 건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는데도 집에서 밤을 새웠을 때보다는 몸이 편안하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대청마루에 앉아서 저 먼 산을 바라보는 느낌이 신선했다. 신기하게도 밤에는 일찍 잠들게 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는 게 산속 한옥집의 매력이었다.
두 번째, 단체로 하는 여행에서는 아이들의 컨디션이 중요하다는 것.
이번 여행은 4명의 아이들과 6명의 어른이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아이들은 초등학생 3명, 미취학 1명이었는데 아이들이 배도 부르고 컨디션이 좋을 때는 무얼 하자도 해도 잘 따라주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밥시간을 넘기거나 날씨가 더울 때는 조금만 힘들어 보이는 '걷기'를 해도 징징거리고 짜증이 많았다. 4명 중 2명은 컨디션이 좋고 2명은 나쁘거나, 3명이 컨디션이 좋고 1명이 나쁘거나를 반복했었다. 이런 아이들을 끌고 어른의 욕심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일이 쉽지 않다. 사진 속 아이들의 얼굴은 찌푸려져 있었고 첫째 아이는 '은수사'라는 절에 가기 위해 500 계단을 올라갈 때 나에게 이야기했다.
"엄마 나 너무 힘들어요.
에너지가 바닥났단 말이에요!"
생각해 보니 그 시간은 배가 무척 고플 시간이기도 했고, 날씨 또한 많이 더웠다. 그리고 '이 계단을 조금만 금방 올라가면 절이 나올 거야'라는 달콤한 말로 아이들을 현혹했지만 그 계단은 500 계단이었다. 당연히 아이들에겐 힘들고 짜증 낼 만한 상황이었다.
아이들의 컨디션을 조금만 더 고려해서 동선을 짜거나, 중간중간에 먹을 달콤한 초콜릿 등을 준비했다면 아이들은 조금 더 수월하게 계단을 오르지 않았을까?
아무런 준비 없이 간 것이 아이들과 어른들을 모두 힘들게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돌아올 때는 좋았다. 여행이 항상 계획적으로 착착 이루어지긴 어려우니 아이들은 이런 경험을 통해 또 하나를 배우지 않았을까? 다음 여행에는 내가 조금만 더 부지런을 떨어서 준비하고 아이들을 배려한 여행을 해 보려 한다.
세 번째, 역시 여행은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 중요하다는 것.
식도락 여행도 중요하지만 매 끼니 음식을 사 먹을 수는 없으니 숙소에서 해 먹는 음식도 무척 중요하다. 아마 젊은 두 부부와 아이들만 여행을 갔다면 정성이 담긴 음식을 풍족하게 먹긴 어려웠을 거다.
이번 여행에는 시어머님, 아버님이 함께 해 주셨는데 감사하게도 음식을 모두 준비해 와 주셨다. 부모님의 음식 찬조가 없었다면 이렇게 배부르게 잘 먹고 즐기는 여행을 하기 어려웠을 거다.
정성스레 압력솥에 끓여 와 주신 닭백숙과 질 좋은 삼겹살, 그리고 된장찌개, 고등어구이, 숙소에서 직접 무쳐주신 오이나물과 파채 반찬, 멸치볶음, 그리고 갓 도정한 쌀을 가져와서 지어주신 밥까지.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사실 여행 가기 전 내 몸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입 안에는 원인 모를 입병이 나서 많이 힘들었고 음식을 먹기만 하면 많이 아팠다. 그랬는데 어머님께서 해 주신 정성이 담긴 음식을 정말 많이 먹고, 자연 속 맑은 공기를 마시며 쉬고 했더니 입병이 거의 다 나았다. 원래는 여행을 가면 몸이 피곤해서 돌아오면 입병이 더 심해지곤 했었는데 이번 여행은 입병도 낫게 하는 여행이었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마지막은, 글 쓰는 사람으로서 여행 계획이 있을 때는 미리미리 글쓰기 서랍을 채워두어야 한다는 것.
여행지에서 휴대폰으로 종종 밤 12시가 되기 전에 벼락치기로 글을 쓰는 경험을 해오긴 했지만 이번 여행을 계기로 그건 자만이라는 걸 느꼈다. 여행에도 집중하기 어렵고 부담감을 안고 하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지 않은가. 이제는 그렇게 쓰는 글은 의미가 없으며 나와 타인에게 모두 남는 게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여행계획이 있기 전 미리 여행의 일정에 맞게 글쓰기 저장고를 채워두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하루 전날 다음날 올릴 글을 미리 쓰는 것도 해 보기로 했다. 오늘부터 시-작!
이렇게 잠시 떠난 여행만으로 몸과 마음이 리프레쉬가 되고 다른 시선으로 일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기분이 든다.
우리가 여행을 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일상을 여행하는 느낌으로 살기 위함이 아닐까? 다시 돌아왔을 때도 여행을 통해 얻은 경험을 되새기며, 그때를 회상하며, 또다시 여행을 갈 기대를 안고 산다. 잠시 떠난 여행을 일상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고 활력을 느끼게 해 준다. 여행은 휴식이 아닌,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 위한 일상생활의 일부가 아닐까.
내게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나 유의어가 아니라,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또 다른 자극이나 더 큰 고통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환부를 꿰뚫어 고통을 잊게 하는 침구술처럼 일상 한중간을 꿰뚫어, 지리멸렬한 일상도 실은 살 만한 것이라는 걸 체감하게 하는 과정일 수도. (중략)
- 박상영 에세이,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