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 답은 없지만

통제와 자율성 사이에서

by 보나


육아에 있어 나의 고민 중 하나는 통제와 자율성에 대한 것이다. 아이를 통제해야 할 때가 있고 자율성을 주어야 할 때가 있는데 나는 자율성을 주기보다는 통제를 먼저 하는 부모다.


나 자체가 통제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그게 마음이 편하다. 아마 그건 내가 불안이 높은 기질이기 때문에 그럴 것 같다. 내가 불안이 높고, 아이도 예민한 기질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릴 적 부터 불안을 없앨 수는 없지만 잘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아이에게 노력을 기울였었다.


불안이 많고 예민한 아이이기에, 무얼 하기 전 미리 계획을 이야기해 주거나 일상에서 안정감을 얻게 하기 위해 일상을 가늠이 가능하도록 단순화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이는 예민하지만 호기심도 많은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통제와 자율성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잘 생겼다.




지난주, 조선미 교수의 훈육에 대한 강의를 듣고 와서는 마음 먹었었다. 아이를 통제하며, 부모가 권위를 가지고 키우는 게 맞다고. 그래서 조선미 교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대로 훈육의 상황에서 적용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말은 짧게. 이렇게 했더니 훈육이 필요한 면에서는 분명 나아짐을 느꼈다. 첫째도, 둘째도 불필요한 사족은 제거하고 해야할 일만 말을 하니 전보다 시키는 걸 잘 따랐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니 언니의 통제적 성향이 동생에게 다시 발현되고 있었다. 엄마가 언니를 통제 하니, 언니는 동생을 통제하고 있는 아이러니함.


나는 분명 언니가 동생을 통제하는 걸 없애기 위해 자율성을 주고자 노력했었는데 통제를 시작하니 다시 시작된건가. 참으로 혼란스럽다.


육아에 정답은 없지만, 육아서를 아무리 많이 읽어도, 육아전문가의 강연을 아무리 찾아 들어도, 결국 내가 주관을 가지고 하는 육아만이 남는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가지고 태어난 그릇이 있다. 그 크기와 모양은 본인만이 바꿀 수 있다. 그 그릇을 부모가 아무리 바꾸려 노력해도 하나의 인격체인 아이들은 자기 뜻대로 크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해주어야 할까?


그건 그냥 아이를 말 그대로 ‘오냐오냐’ 키우는 거다. 아이가 그렇게 크게 되면 사회에 나와 제대로 된 사회인의 역할을 하기 어렵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에서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인성교육을 시킨다. 이건 분명 통제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다.


내가 해야할 일은 통제와 자율성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 일인가. 아니면 선택과 집중을 통해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집중하는 일일까?


MBTI가 I 라고 해서 내향적인 성향만 있는 것이 아니듯, 외향 55%, 내향 45% 이더라도 E인 것처럼, 사람은 딱 하나의 성격으로 규정할 수 없다.


아이를 양육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관성 있게 키워야 한다고 하지만, 어떤 때는 통제가 필요하고, 또 다른 상황에서는 자율성이 필요하다. 결국 어디에 중심을 두어야 하는지도 시기별, 상황별로 변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면, 이런 걸 정하는 것 자체가 부모의 육아관인 걸까?


분명, 육아에는 답이 없다. 개개인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그 선택을 통해 아이가 크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그게 부모의 역할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모든 건 '사랑'이, 사랑스런 마음이 이긴다는 거다. 사랑만이 살 길.


나는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이들이 자신감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어 병든 어린이들을 건강하게 할 수 있다면, 부모와 교사들은 그 원칙과 실천 방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 하임 G.기너트의 <부모와 아이사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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