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과 함께 하는 글쓰기 루틴
불과 5개월 전쯤, 휴직과 함께 시작된 루틴이 있다.
아이들 등교 후 바로 스타벅스에 와서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거다.
이 루틴이 휴직 하자마다 바로 장착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남들보다는 조금 늦게 육아휴직을 하기로 결정한 엄마는 일단 휴직을 즐겨야 한다. (아이를 낳음에 동시에 정부에서 지원하는 육아휴직에 들어간 엄마는 일단 제외하겠다. 나에게도 첫째와 둘째를 낳자마자 들어간 육아휴직 기간은 정신없는 시기였으니까.)
아이들이 둘 다 조금 크고 9살, 6살이 된 이후에 하는 육아휴직은 참 여유롭다. 이렇게 여유롭고 편안한 삶이 있을 수 있음을 몰랐다. 일반적으로 아이를 낳자마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붙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그렇게 1년~1년 3개월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복직을 하거나 휴직 연장을 하거나 퇴사를 결정하게 된다.
그때 복직해서 다녔다면 다음 휴직은 오로지 나의 의지로 결정하는 거다. 보통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기에 많이들 휴직을 한다. 아마 유치원에서 학교로 이동하는 이 시기가 아이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일 거다. 초등학교 입학 준비를 위해 전 해 10월부터 미리 휴직을 하는 엄마들도 있다고 들었다.
(관련 글 : 초등준비를 위해 10월에 휴직을 한다고? )
나는 사정상 그럴 수 없었고, 덕분에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1학년 시기를 버라이어티 하게 보냈다. 아이의 학교생활 적응과 학원 뺑뺑이로 인한 체력적 저하, 아이의 정신적 힘듦, 엄마가 야근이 잦은 탓에 아이 돌봄이 어려움, 엄마의 체력적 정신적 에너지 바닥 등이 그 이유였다.
아이는 아이대로 힘든 1학년 시기를 견뎠고, 나는 나대로 힘든 회사생활을 견뎠다. 그래도 버티고 또 버텨낸 덕분에 회사에서 내가 원하는 성과를 이뤘고, 마음이 조금 편하게(?) 휴직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이것 또한 물론 엄청난 용기였다. 미움받을 용기가 있다면 이럴 때 써야 하리. 관련해서 쓴 글이 또 있다. ( [브런치북]나 는 불안이 많은 엄마입니다 중, 21화 미움받을 용기 )
그렇게 미움받을 용기로 선택한 세 번째 육아휴직은 내가 원하는 삶을 잠시나마 실현해 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아이 둘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낸 후 나에게 주어진 오전시간 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아주 작게라도 시작해 보는 것.
아이들이 조금 크고 나니 기관에 가 있는 동안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어릴 적에는 감기도 자주 걸리고, 온갖 유행하는 병들에 걸린 적이 있어서 오전시간에도 급하게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의 키가 자라는 만큼 면역력도 성장한 건지 아픈 경우가 줄었다.
나에게 주어진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잘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비장한 각오로 휴직기간에 계획을 세워 철저히 무언가를 해내고 싶지는 않았다. 휴직을 압박감과 함께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워킹맘으로 지낼 때는 나에게 주어진 수많은 퀘스트들을 깨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루 일과 중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체크리스트로 적다 보면 무조건 다음날, 다다음날로 넘어갔다.
"나는 왜 이렇게 할 일이 많을까?"
그 시절 남편에게 자주 했던 말이었다. 수많은 기획노동과 회사 일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힘들어하는 걸 잘 모르는 남편은,
"대체 무슨 할 일이 많다는 거야? 그냥 하나씩 하면 되지." 하며 날 이해하지 못했다.
맞다. 하나씩 하면 된다.
그런데 하나씩 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하고 체력이 달린다. 할 수는 있는데 무쟈게 힘들다. 100m 달리기를 할 때 결승선에 다다르면 무척이나 숨이 헐떡거리는데 매일이 그런 느낌이었다. 매일 밤 잠들기 전이면,
'아 오늘 할 일 다 한 게 맞나? 내가 놓친 건 없나? 내일 준비는 다 된 건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곤 했다.
그랬던 삶이었으니 더 이상의 계획은 세우고 싶지도 않았다. 휴직이라는 단어 그대로 '쉴 휴'를 그대로 누리고 싶었다. 나에게 '휴'는 카페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삶이었다.
그래서 휴직과 동시에 집 근처에 일찍 문 여는 카페를 무작정 찾아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읽은 책은 김주환 교수님의 <회복 탄력성>, 그리고 게리 켈러, 제이 파파산의 <원씽>이었다. 이 2개의 책들은 내 휴직생활 루틴을 정하는 데 무지막지한 영향을 주었다.
<회복탄력성>을 읽으며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지 방향을 정할 수 있게 되었고, <원 씽>을 읽으며 독서보다는 글쓰기를 최우선순위에 놓는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정한 루틴대로 카페에 오자마자 책을 펼치지 않고 노트북을 펼쳐 매일 글을 먼저 썼다. 가끔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 날에는 책을 몇 장 먼저 읽기도 했지만 책에 빠져들지는 않았다. 책을 읽다가 영감이 떠오르자마자 책을 덮고 먼저 글을 썼다.
그렇게 쌓인 글들이 지금 여기 <매일의 깨달음> 매거진에 모아져 있다. 어느덧 쌓인 글들이 오늘까지 93개이다. 이제 7개만 더 쓰면 100개를 채우게 된다. 나에게 100이란 숫자는 어떤 의미일까? 곰은 100일간 쑥과 마늘만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데 나는 100일이 지나면 무엇이 되는 걸까?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100일간의 글쓰기가 내 삶을 지탱해 주었다는 것.
휴직을 하면 매일을 누워서 유튜브를 보거나, 자거나, 요리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나만의 다른 취미생활을 할 수도 있다.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할 일이나 목표가 없으면 늘어지게 되고, 방향성을 잃게 되어 무기력해지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있어 매일의 꾸준한 글쓰기 루틴은 삶을 지탱하는 무기가 되어 주었다. 1년간의 휴직, 그 휴직기간 동안 무얼 했냐고 물어보면 글쓰기를 했다고 말하기는 부끄럽다. 하지만 내 삶을 단단히 지탱하는 루틴 하나는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루틴은 복직을 하고 다시 회사를 다니게 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지속될 거니까.
그럴 수 있는 방법 또한 내가 찾아낼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