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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인튜너 Apr 07. 2022

모닝커피

커피, 단상, 향내음, 맑은 생각, 각성, 모닝콜

2016년 1월 둘째 주, 오랜 직장 생활을 마감하고 자유인이 됐다.




말이 좋아 자유인이지 자발적 실업자가 된 것이다. 처음 일주일은 좋았다. 쉬니까.


번역을 공부하면서 다음을 준비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영어 과외를 시작했다. 고등학생, 중학생, 대학생, 직장인까지 대상을 확대하며 영어를 가르쳤다. Covid-19 팬데믹 직전까지 주업으로 하지는 않았으나 지속해서 활동했다. 괜찮았다.


실업자가 되었으니 나라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실업 급여를 신청했다. 승인이 난 후 고용 센터에서 상담을 했다. 의무 사항이다. 그동안 납부한 세금을 돌려받는 것이라 생각했다. 보조금을 받은 것이라도 절차와 확인은 반드시 있어야 했다. 구직 활동을 하고 있다는 증빙 자료도 제출해야 했다. 재취업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증빙으로 낼 근거가 없었다. 취업 성공 패키지 과정에 등록하면 매월 보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배운 게 커피 바리스타다.


신세계를 봤다. 커피 공부가 재미있었다. 커피숍에 가서 주문하면 거의 자동으로 서빙되던 커피를 직접 내려서 마셨다. 종류도 여러 가지를 번갈아 가면서 제조했다.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법도 알았다. 하루에 커피를 7~8잔을 마셨다. 몽롱한 날도 있었다. 그래도 두 달 동안 즐겁게 배웠다. 그리고 그해 말 커피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운전면허증 이후로 처음으로 받은 자격증이다. 사단법인 한국커피협회에서 발행했다. 런 것도 소확행의 한 방편인 걸 알았다.





새벽에 집을 나서 저녁 늦게 들어오는 생활을 거의 27년을 했는데, 더 이상 그런 삶을 살지 않아 좋았다. 나만 생각하면 좋았다. 가족을 생각하면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풍족한 생활을 누리기가 어려웠다. 등가교환의 법칙이라 생각했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건강하게 사는 게 자신을 위해서나 가족을 위해서 낫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커피를 애용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물을 마시면, 배가 불러온다. 차를 마셔도 마찬가지다. 카페 라테도 배를 부르게 한다. 그런데 아메리카노는 다르다. 아무리 마셔도 배부르지 않다. 이유는 모르겠다. 설탕이나 우유는 넣지 않고 마시는데, 어떤 날 아침부터 집중해서 뭔가 해야 할 때는 설탕과 우유를 넣어서 마신다. 그러면 배가 불렀다. 요상한 물건이다. 그래서 '악마의 음료'인가...



아침에 일어나면 드립핑 해서 한 잔을 마신다. 이유는 없다. 책상에 앉으면서 왼쪽에 커피 잔이 있으면 안정감을 느낀다. ZOOM으로 코칭하거나 교육을 받을 때도 항상 옆에 둔다. 영화처럼 파리의 노천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는 아니지만 그냥 운치가 있다.


일전에 한 카페에서 내려다본 모습이다. 서울 부암동에 있는 커피프린스 촬영지인 '카페 산모퉁이'... 서울에, 그것도 晚秋에 이런 경치를 볼 수 있었다니... 그냥 행복했다.


딸내미와 함께 작은 카페를, 정겹고 운치가 있는 카페를, 커피 볶는 냄새가 구수하게 퍼지는 그런 카페를 열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다.


- 부암동 카페 산모퉁이, 2017년 11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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