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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인튜너 Aug 22. 2022

一日淸閑一日仙 일일청한 일일선

명심보감, 성심편, 省心篇, 청빈한 마음, 무욕의 삶, 신선놀음

명심보감(明心寶鑑) 성심편(省心篇)에 나오는 말이다.


一日淸閑一日仙이니라.


하루라도 마음이 깨끗하고 편안하다면 그날은 신선처럼 산다는 뜻이다.

淸은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더 나아가 해석하자면 탐욕이 없거나 사념(邪念)이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閑은 신경 쓸 일이 없이 여유가 많은 걸 의미한다. 일에 치여 바쁘게 사는 현대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상상을 해본다면, 한 농촌 마을의 정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솔솔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쐬면서 하늘에 흘러가는 흰 구름을 하릴없이 바라보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직장에 다닐 때는 새벽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살았다. 일찍 출발하는 출근 버스에 늦지 않으려고 서둘러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려갔다. 사무실에 앉으면 무슨 할 일이 많아서 그런 것 같지 않지만, 24인치 모니터를 뚫어지라 바라보며 뭔가를 해야 했다. 굽은 어깨와 앞으로 구부정하게 내려간 고개를 몇 번 스트레치하고 나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곤 했다.버스에 늦지 않으려고 분주하게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피곤한 몸을 버스에 올리고 나면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루 24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일일삼성(一日三省)은 커녕 머릿속은 항상 '일'로 가득했다. 세 번 되돌아본다는 三省이 아닌 一日三星, 하루 종일 삼성갖혀 산 느낌이다. 다녀서 그랬나, 신선의 모습과는 조금도 연관이 없는 마치 일하는 로봇과 같은 생활의 반복이었다.




신선놀음 한 번 하고 싶었다. 그런데 정확히 신선놀음이 무엇인지 몰랐다. 퇴직 후 한 달이 신선놀음이었을까?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워낙 일하면서 사는 게 익숙해서 그런지 쉬는 건 체질에 맞지 않았다.


엊그제 박재희 교수의 《3분 고전 2》가 손에 잡혔다. 읽다 보니 '일일청한 일일선'이 눈에 띄었다. 일체유심조(造)와 뜻이 통하는 것 같기도 했다. 코로나 확진으로 자가 격리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할 일'을 하고 있을 시간이다. 몸이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는데 코로나로 인해 쉬지 않았다면 분명히 몸에 탈이 났을 터였다.


지금처럼 시간을 스스로 정해서 일을 하고 움직이는 게 신선의 삶이다. 안평대군(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문종과 수양대군 동생)은 안빈낙도(道)의 인생을 꿈꾸며 안견에게 몽유도원도(圖)를 그리게 했다는데 그림을 보고 감상하는 소질이 없는 탓일까, 봐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누구 유명한 사람이 뭐라 하던 내가 느끼고, 즐기고, 만족하고 살면 그게 안빈낙도가 된다. 항상 생산적인 목표로 무언가를 하던 시절이었으나 내게는 그리 생산적이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지금과는 달리 책의 한 줄을 읽더라도 생각에 골똘히 잠겨 의미를 곱씹어볼 짬이 별로 없었다.


일곱 개 한자로 구성된 한 줄 글을 읽고 내 생각을 자유롭게 끄적일 수 있다는 게 一日仙이다. 지금 이 순간이 감사할 따름이다. 먼 곳에서 찾지 않아도 발견할 수 있는 게 주변에 널렸다. 지족(知足)하며 살련다. 무릉도원이 먼 데 있나, 바로 내 맘속에 있지...


- 몽유도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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