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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인튜너 Aug 22. 2023

漢陽은 명당, 서울은 그냥 서울

명당, 한양, 남대문, 서울, 제일모직, 삼성물산, IMF

漢陽이 明堂이다. 서울은 한양이 아니다.




명당은 아주 좋은 자리를 뜻한다. 풍수지리는 후손에게 좋은 일만 생기게 하는 집터나 묏자리를 명당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정도전이 풍수지리에 능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성계의 정신적인 스승인 무학대사는 풍수지리에 강했던 것 같다. 개경을 떠나 한양에 궁터를 새로 정한 것이나 궁궐이나 주요 건축물을 올린 게 필요에 따라서만 정한 것은 아닌 듯하다.

신입사원 시절 중구 태평로에 자리 잡은 삼성본관으로 출근했다. 漢陽으로 출근하는 게 즐거웠다. 아침저녁으로 남대문을 보려고 일부러 가까운 시청역보다는 서울역으로 다녔다. 국보 1호를 매일 보는 게 큰 의미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5백 년이 넘는 건축물을 가까이서 본다는 걸 항상 신기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직장생활 3년 차가 되어 회사가 갑자기 역삼동으로 이전했다. 한양이 아닌 서울로 출근하게 됐다. 강남으로의 출퇴근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대중 교통, 점심 식사 등 먹거리, 물가 등등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다. 출퇴근의 편의를 위해 차를 가지고 다녔다. 이때부터 몸무게가 갑자기 늘기 시작했다.

1997년 10월, IMF가 시작되기 바로 전에 삼성물산으로 발령이 나서 다시 삼성본관으로 출근했다. 한양으로 복귀하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다시 남대문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소속 사업부만 다시 역삼동으로 옮겼다. 근무하던 역삼동 제일모직 맡은 편에 있는 빌딩으로 갔다. 지지리 복도 없지, 다시 강남살이라니... 그러다 사업이 잘 진행되어 다시 삼성본관으로 이전했다. 그때 17층인가 18층 도로변 코너에 내 자리가 배정됐다. 남대문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리였다. 명당 중의 명당... 흐흐흐.

그러나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삼성본관 옆에 신축한 남대문 빌딩으로 옮겼다. 제기랄... 그 이후로 나의 사무실 생활은 그저 무미건조했다. 보이는 건 맞은편 콘크리트 빌딩에, 내려다보면 오가는 차들 뿐이었으니...




가끔 일 때문에 노량진에 오면 여기가 새로운 명당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도히 흐르는 한강이 바로 보이는 탁 트인 전망이 좋다. 북한산은 멀리 저기서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있고, 열차와 차들이 오가는 모습은 마치 미니어처 세트같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를 때도 있고, 구름이 바쁘게 흘러갈 때도 있다.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운치가 있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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