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앤가펑클 Simon&Garfunkle 험한세상의다리 팝송
사이먼 앤 가펑클이 부른 Bridge Over Troubled Water는 팝송 중, 사춘기 시절 내 감수성을 건드린 첫 번째 노래이다.
추운 겨울 외풍이 드는 방에서 마시는 코코아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색을 느낄 수 있다. 힘자랑하듯이 크게 부르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너무 감질나듯이 속삭이지도 않는다. 지금 생각하면 이동원 가수나 일본의 타니무라신지谷村新司와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절대음감은 아니지만, 한번 들은 곡조는 웬만해선 잊어버리지 않는 타입이다. 하지만 영어 가사라면 일단 리스닝부터 안 되던 나이였으니 그저 멜로디만 좋으면 좋아했던 시절이었다. 음악이라는 건, 그저 듣고 마음으로 공감하는 대상일 뿐 그 이상이나 이하도 아니다. 이 노래는 '그 시절'을 보낸 많은 청소년, 소위 지금의 7080들이 사랑하는 팝송 중 대표적인 노래다. 문화적으로는 암흑기였다. 불법으로 잡은 정권이 소위 *3S로 우민화에 열을 올리던 그런 때였다.
*3S: Screen, Sports, Sex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본질에 집중하기보다는 이상한 논리로 논쟁거리를 만들기 좋아하는 일군一群의 무리가 있었다. 정보의 양과 유통 채널도 많지 않았던 탓에, 그때는 마치 그 말이 다 맞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렇든 말든, 내가 좋아하면 그만이지 뭔 잡소리인가 생각했다.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 말까지는 냉전의 긴장감으로 고도의 공포감이 세상을 덮었던 시기이다. 특히 민주 진영과 공산권과의 대결, 미국과 소련의 군비경쟁은 당장이라도 핵전쟁이 발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전쟁의 공포가 임박해 있었다. 이를 기회로 삼아 고조된 공포심을 자극한 이들이 있었는데, 근본주의 기독교, 소위 자칭 보수 기독교가 종말론을 들먹이며 이상한 내용을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전파하기 시작했다.
담론이라고 하기에는 수준이 유치하지만, 지금 기억나는 화두의 커다란 두 줄기는 휴거(携擧, rapture)와 사탄 숭배였다. 당시 한국전쟁이 끝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폐허에서 일어선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사람들의 공허한 마음을 파고들며 도피처를 제공한 게 '신앙'이라는 이데올로기였다. 새로운 담론들이 주로 미국에서 나왔는데, 미국을 은인처럼 생각하는 기독교 목사들을 통해 새롭다고 여겨지는 정보가 대량으로 유통되었다. 그래서 잘 먹혔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이 그랬다.
휴거는 논외로 치고, 사탄 숭배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무슨 목사라는 사람이 어떤 팝송을 거꾸로 들으면 사탄을 찬양하거나, 마약과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고 해서 한창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교회를 다니는 학생은 팝송을 들어서는 안 된다는 부류의 장광설이 회자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떠오른 의문은, 왜 노래를 거꾸로 돌려서 듣는가였다. 그냥 정상적으로 플레이하면 되는데 왜 뒤로 돌리면서 듣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 이상했던 건, 집에 있던 소니 카세트 플레이어를 아무리 조작해도 거꾸로 들을 수가 없었는데,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들었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후에도 유명 가수들이 모여 아프리카를 돕자는 취지의 'We are the world'를 부를 때도 가사가 성경적이지 않다는 시비가 일었다. 당연한 사실을 갖고 이슈를 만든 것이다. 가수들이 세속에 속한 사람들을 상대로 노래를 만들지, 성경의 내용으로 노래를 만드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았을까. 물론 아는 팝송 중 한두 개 정도는 성경의 내용을 그대로 갖다 쓴 사실을 알고 있다.
오늘 날씨를 보니 마치 가을의 문턱에 올라선 것 같다. 오후에 동네 카페의 창가에 앉아 진한 커피 향을 음미하며 시선을 바깥으로 돌렸다. 나뭇잎 사이로 새어 나오는 가을볕을 맞으며 길을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졌다. 선선한 바람은 아직 따사로운 햇볕을 조금 덜어주는 듯했다. 종례를 마치고 교문을 나서는 중학생들의 모습에서 생동감을 느꼈고, 창가로 전달되는 아이들의 대화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반복해서 두 시간째 이 노래를 듣고 있다. 생각과 마음이 동시에 차분해진다. 평정심平靜心을 누리고 있다. 30, 40대 시절 치열하게 살아온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라는 걸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젊을 때 선택의 여지가 없이 일만 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지만, 현실의 부족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고, 그만한 대가를 누렸다는 생각에 감사할 뿐이다.
다만 좀 더 이르게 마음과 어깨에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앞으로도 거친 물살을 어렵지 않게 건네주는 다리로 살아갈 거라고 다짐해 본다.
When you're weary, feeling small,
힘들고 지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될 때
When tears are in your eyes, I will dry them all;
눈 앞을 가리는 눈물을 전부 닦아주겠소.
I'm on your side. When times get rough
곁에 있어 줄 테요, 친구가 없어서
And friends just can't be found,
홀로 힘든 시간을 보낼 때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내 몸을 눕혀서라도
I will lay me down.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줄게요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내가
I will lay me down.
다리가 되어 줄게요
When you're down and out,
남은 게 아무것도 없고
When you're on the street,
기댈 곳도 없이
When evening falls so hard
어둠에 짓눌려도
I will comfort you.
내가 위로해 줄게요
I'll take your part.
함께 짊어질게요
When darkness comes
암흑이 눈 앞을 가리고
And pain is all around,
고통이 가득할 때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내 몸을 눕혀서
I will lay me down.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줄게요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내가
I will lay me down.
다리가 되어 줄게요
Sail on silvergirl,
그대, 앞으로 헤쳐나가요
Sail on by.
계속 헤쳐가요
Your time has come to shine.
빛나는 날이 올 거예요
All your dreams are on their way.
모든 희망이 이루어질 거예요
See how they shine.
그날은 반드시 올 거예요
If you need a friend
친구가 필요할 때
I'm sailing right behind.
바로 뒤에서 따라가고 있을 거예요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될 테니
I will ease your mind.
안심하세요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다리가 되어
I will ease your mind.
그대를 달래 줄게요.
(안선형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