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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EBA Aug 07. 2021

아이에게 팩폭 당하고 쓰는 글

육아 원정대

"엄마는 열심히 공부했다고 했죠. 그렇지만 결국 지금 회사원으로 살고 있죠. 그럼 엄마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나요. 나에게 공부하면 성공한다고 하지 마세요. 먼저 소통하는 부모가 되세요"라는 말로 엄마의 뼈를 때리고 학교로 걸어 들어가는 초등 5학년 아들 녀석의 등짝을 바라보다 근처 북카페로 들어갔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쓰린 속을 달래줄 우유 한 스푼, 각설탕 하나를 떨어뜨리고 집어 든 책의 제목은 <아직도 내 아이를 모른다>.


이 책에서 저자 대니엘 J. 시겔과 티나 페인 브라이슨은 육아의 목표는 인내하기와 성공하기라고 머리말에 전제를 둔다. 세상 모든 부모가 바라는 것. ".. 아이들이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누리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학교생활도 잘 해내고, 상냥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의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하게 살기를 바란다. 첫째. 인내하기 (난관을 헤치고 육아 임무 완수하기). 둘째. 성공하기 (자녀를 성공적으로 키우기).." 


이 지점부터 이 작가들의 관점은 내가 주로 생각했던 성공하기의 주체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여기서 "I"는 아이가 아니라 바로 부모인 "나"라는 것. 내가 부모로서의 성공하는 것이지 아이의 성공을 바라는 게 아니라는 것.  내가 부모로서 성공하기 위해 해야 하고 알아야 할 것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일 뿐, 그다음은 아이가 결정하고 아이의 운명일 뿐. 이렇게 생각하니 아들이 내게 내뱉었던 말이 훨씬 감당하기 쉬워졌다. 



문득 몇 년 전 강연에서 만났던 교육학박사 Yong Zhao 박사와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Yong 박사는 자신의 아들이 시카고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다가 갑자기 전공을 바꿨던 때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예술 쪽 공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시카고 대학이 경영학과 경제학으로 유명한 곳이고 졸업하면 좋은 곳에 취직도 할 것으로 유망한 곳이라 못내 아쉬웠다고 한다. 하지만 Yong 박사는 "난 성공한 부모다. 내 아들은 더 이상 내 집에서 살고 있지 않고 독립해서 나가서 살고 있지 않은가! (정확한 표현으로는 I got rid of him from my basement. So, I succeeded as a parent)"  일단 부모의 집에서 얹혀살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모로서의 성공을 말할 수 있다면 나도 왠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교육학에서 자주 쓰는 말 중 "Scaffolding" 이란 말이 있다. 직역하면 "비계" 즉, 건축 공사 시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 가설물이다. 이는 교육분야에서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우거나 성취할 때 구조적으로 도움을 주는 방법을 말한다.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복잡한 내용을 단계별로 쪼개서 점차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즉 아이가 큰 고기 덩어리를 먹을 수 있도록 엄마가 잘게 잘라 주는 것과 같다.


내게 육아는 끝없는 scaffolding의 반복이다. 하나의 고기 덩어리를 다 쪼개서 아이가 다 먹었다 싶으면 또 다른 고기 덩어리가 나온다. 그걸 다 먹으면 브로콜리? 그다음은 당근인가? 그것들을 먹기 좋게 조리하고 쪼개 주는 일상의 반복이다. 뭐... 어쨌든 맛있게 먹어주면 성공했다고 치자.


오늘은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오지 않는 날이다. 아들이랑 돈가스나 먹으러 가자. 그냥 잘 튀겨진 고기를 먹으며 호구 엄마 최고를 외쳐줄 아들 등짝이나 쓰다듬으며 오늘 하루도 "성공적인 부모의 하루"였다고 일기에 쓴쓸거다. 내 일기니까,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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