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
4학년인 아들의 Zoom 수업을 멀리서 엿듣고 (?) 또는 감시하고 있었다. 화상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지는 않는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 방문을 열어 놓고 복도에서 듣고 있는데 화면 속의 선생님이 깜짝 퀴즈를 하겠다고 하신다. 속담 초성 퀴즈. 선생님이 초성을 쓰시면 아이들이 어떤 속담인지 각자 선생님께 비밀 쪽지로 보내는 퀴즈였다. 한국 속담에 익숙하지 않은 아들내미한테 불리한 게임인데 혼자서 못 맞추면 어떡하지 하며 마음이 조급해진다. 첫 번째 질문이 나왔고 아들은 뭔지 고민하다가 결국 제출을 못했다. 두 번째 질문이 나왔는데 아들이 보자마자 뭔가 쓰려고 한다. 아주 느릿느릿 뭔가 쓰고 있다. 그걸 못 참고 방으로 진입한 나. 조급한 엄마는 화면을 보고 아이에게 대체 무엇을 쓰는 거냐고 물었다. 아들은 차분하게 "등잔 밑이 어둡다" 아닌가? 그러고 보니 정답이다. 그런데 한글 타이핑이 느린 아들이 천천히 쓰고 있는 게 답답해진 나는 "이리 줘봐, 내가 할게" 하고 결국 키보드를 점령하고 급히 제출을 눌렀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 "오.. 00아, 답은 맞는데 마음이 급했나 보네?" 하고 웃으신다. 아차... 다시 보니 "등잔 미치 어둡다"라고 보내버렸다.
아이에게 정답을 맞힐 기회도 빼앗고, 아이에게 스스로 공부할 기회도 빼앗은 지지리도 못난 엄마인 나를 발견했다. 그러면서 나는 매체를 뜨겁게 달구었던 부모 찬스를 제공한 부모들에게 손가락 짓을 하였었다. 대학교수로서 중학생 또는 고등학생인 딸이나 아들에게 논문을 공저한 것인 양 아이 이름을 올려놓아 자신이 또는 제자가 쓴 논문에 숟가락을 얹어 자식에게 좋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준 이 땅의 많은 부모들. 무슨 경연대회에 혼자 힘으로 참여하여 수상을 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브로커를 통해 수상작을 샀거나 드라마 스카이캐슬에 나옴직한 컨설턴트를 통해 스펙을 "구매"해준 부모들. 그리고 자기가 가진 권력을 이용해 자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공정한 스타트 라인에 세우지 않고 부모 찬스를 활용한 사람들. 이들도 나처럼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며 조금씩 조금씩 선을 넘었을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 등잔 "미치" 어두운 상황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미치"고 있는 것을 잊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