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잠을 깨우는 걸 싫어하는 걸 아는 아이는 눈을 뜨면 아주 조심스럽게 내 얼굴을 만진다. 그러다가 속삭인다. "엄마 얼굴은 버터 같아요."
아이의 주옥같은 말들을 주워 담아 예쁜 상자에 계속 모아 왔다면 아마 난 예쁜 소품 가게를 열 수 있을 거다.
4살 때였나. 푸른색 솜사탕을 선택한 아이에게 무슨 맛이냐고 물었더니 "하늘 맛"이라고 대답한 아이.
나도 먹어 보고 싶다. 그리고 너의 제한 없는 경계 없는 마음을, 감각을 갖고 싶다.
우린 언제부터 아이의 말을 그대로 받아주거나 그 자체만으로 감동하는 것을 멈추고 "이건 이런 거야"라고 "가르치기" 시작하나. 예전엔 아이가 말하는 모든 것이 경이롭고 신기했는데 이젠 아이들의 질문에 "답"을 "모범답안"을 "가르치기"에 바쁘다. 그 뻔한 모범답안은 학습지 뒷면에 또는 구글 검색 끝에 또는 교과서 어딘가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풀어내야 할 문제들이 학습지에 있지 않듯이 아이들에게 시험 유형을 가르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입시전쟁을 치르고 난 선배 엄마들은 여유 있게 말해준다 "책 많이 읽게 하세요"... 과연? 고작? 정말?
요즘 국제학교가 인기다. 입학설명회에 가면 어떤 기준으로 즉 선발 기준이 무엇인지, 어떻게 입학시험 준비를 하면 되는지 묻는 부모님들이 많다. 학교 측의 답변은 주로 "학교의 인재상과 맞는 학생을 선발합니다." 이에 부모님들은 또 묻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세요." 그럼 돌아오는 학교 측 답은 이렇다 "책을 많이 읽게 하세요" 그럼 탄식이 들린다. 어느 구석에서는 툴툴 거리는 부모님들의 항의가 들린다. "그런 막연한 답을 들으려고 내가 여기까지 왔나."
그 부모가 듣고 싶었던 답은 이런 것이었을까. 어느 학습지 몇 단 원부터 몇 단원까지 시험에 나옵니다. 책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의 몇 번째 에디션을 사서 어느 챕터를 읽게 하세요. 수학은 미국 동부 어느 사립학교에서 교재로 쓰는 어느 출판사의 수학교재 어느 챕터부터 어느 챕터까지 문제를 풀어보게 하세요... 등등
그리고 이런 것들을 가르쳐주는 속성 과정이 있는 강남의 어느 학원의 어느 선생님의 수업에 등록하세요 등.. 이런 구체적인 답을 듣고 싶었을까.
그럼 그런 과정을 듣고 들어갈 수 있는 학과정이 고작 그런 수준의 학교에 아이를 넣고 싶어 줄을 섰는지 되묻고 싶다. 국제학교도 여러 학교가 있다. 학과 정도 모두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학교에서 말하는 내용은 주로 "Critical thinking, Inquiry-based (IB 과정일 경우), Socratic seminar, problem-solving" 등등 어딜 가나 아름답지만 비슷한 키워드를 반복해서 들을 수 있다.
중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학교의 교육이 이 키워드들을 기반으로 디자인되어 있음으로 학교 브로셔, 웹사이트, 설명회 등에서 누누이 강조하지만, 이미 입학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이 경쟁만 뚫으면 된다. 그리고 또 그다음 경쟁선에 선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못할 일이 없다. 무엇을 배우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 아이들이 세상을 배운다.
세상 해맑은 눈으로, 주옥같이 아름다운 말들로 세상을 그려나가던 아이들에게 우린 무엇을 그리고 언제부터 그들의 그림을, 캔버스를 망치고 있었는지 되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