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은 덜어내기의 계절이었다.
조금라도 덜 하려고, 아주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보통 여름이 시작되면, 운동 시설을 기웃거려보고, 새로운 걸 배워볼까 동네 학원이나 온라인 강좌를 검색해보기도 하고 아이의 특강 스케줄도 챙겨보고 여행은 어디로 가야 할까 폭풍 검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여름은 2박 3일 속초 여행 일정을 일찍 잡아놓고 그 외에는 검색도 하지 않고 공부 계획도 노는 계획도 다 접기로 했다. 원래 있는 일정을 최소화하고 미룰 수 있는 것은 미루고 안 해도 되는 것은 과감하게 접고, 누구를 만나거나 쇼핑을 해야 하거나 하는 모든 것들을 참아내고 하지 않기로 했다.
덜어낸 일정과 더불어 커피도 줄였다. 늘 과다한 업무에 "To do list"를 챙기다 보면 하루에 네다섯 잔의 커피를 위속으로 쏟아 넣는 것은 일상이었다. 게다가 스트레스 좀 받았다 싶은 날은 저녁시간에 와인이나 맥주도 벌컥벌컥 씨~원하게 털어 넣고 그득한 배를 두드리며 잠이 들었었다. 그런 날이 지속되면 또 찾아오는 만성위염으로 카베진을 몇 알씩 삼키고 또 하루를 맞았었다.
올여름엔 커피도 줄이고 잠이 안 깨는 아침은 따뜻한 블랙티로 달래고 그게 도움이 안 되면 그냥 쉬었다. 애써 잠을 깨려고 하지 않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날을 며칠 보내니 저녁에 맥주도 와인도 그리 생각나지 않았고 가벼운 위장으로 잠이 들었다. 수면의 질도 좋아졌다.
밥도 조금 덜 먹고 군것질도 조금 덜 하고, 드라마 정주행도 늦추고 (완전히 안 할 수는 없는 K 드라마의 유혹),
넷플릭스는 구독을 잠시 취소하고, 한 달에 네 권 읽겠다는 독서 목록도 반토막을 내고, 인스타를 보다 들어오는 광고에 휘둘려 검색 지옥에 빠지는 시간을 줄였다. 하루의 스크린 타임을 줄이려고 의도적으로 폰을 가방에 넣어두고 전화가 올 때만 손에 들었다.
이 모든 것을 작게 하고 줄였더니 늘어난 것도 있었다. 잠도 늘고, 시간도 늘고, (살짝 몸무게도 늘었다 ㅜㅜ), 그리고 나에게 관대해졌다. 계속해서 무엇인가에 쫓기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이대로도 괜찮다. 잘하고 있다"라는 말을 내게 해줄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더 달리게 했던 것들로부터 조금씩 편해지고 휘둘리지 않게. 슬기로운 의사 생활 시즌 2, 정로사(안해숙 분)씨의 명언 "어느 날 걸려 온 전화 한 통에 휙휙 휘둘리는 게 인생이야. 그러니까 우리 아들, 그럴 때마다 너무 마음 쓰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