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늦가을의 결심
따끈하고 달콤 쌉싸름한 코코아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바람이 낙엽을 차의 사이드 미러 사이에 꽂아 두었다. 그 갈색 입새를 아들이 차창을 스르륵 열어 떼어낸다. 엄마 여길 봐. 낙엽이야. 아들은 통통한 손가락으로 말라버려 바스락 거리는 이파리를 문질러 가루처럼 날려 보낸다. 이제 가을이다.
거리는 호박파이 같은 오렌지빛 핼러윈 장식으로 채워지고 있었고 난 머릿속으로 이제 곧 패딩을 꺼내야 하는데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앗 첫눈이다 싶을 텐데. 어떡하지? 이렇게 또 한 해가 끝나버리나?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바쁘기만 했던 거 같은데 남은 것도 없는데 또 이렇게 가버리나? 내가 올해 뭘 하겠다고 했더라. 뒤늦게 일기장을 다시 열어봐야겠다는 때 늦은 결심. 뭘 한건 없는 것 같고 넷플릭스는 여전히 돈을 내고 있고 최근에 Tving까지 가입해서 콘텐츠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 아.. 올해 영화 많이 보기를 애초에 올해 목표로 삼았어야 했다.
얼마 전 주펄님의 펄이 빛나는 밤에서 나눠주신 이야기. 그는 작품을 시작하려면 여러 가지 준비를 한다고 하셨다. 예를 들면 자료 조사도 하고, 스토리도 짜고 기획도 하는데 일단 작품이 시작되면 알게 된다. 준비가 안되었다는 것을...... 이게 무슨 소리냐면, 어떤 일이든 완벽히 준비하고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준비하고 시작하려면 절대 시작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차라리 어떡하든 완벽한 준비란 없다면 그냥 시작부터 하라는 말씀.
뭔가 결심만 하다 시간이 다 흘러갔다. 그림 좀 그려보겠다고 물감을 사들였고,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용기가 없어 계속 미루기만 했다. 글도 마찬가지다. 뭔가 엄청난 울림이 있을 때까지 기다려 보겠다고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다. 내게 오늘 하루만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시작하지 못하고,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고, 고마웠다고 말하지 못하고 흘려버린 시간들을 다시 주워 담아보아야겠다. 뭐든 해보겠다는 결심을 한다. 오늘도 감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