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은 할머니"라고 쓴다.
초등 5학년 아들의 이번 주 숙제는 장래희망에 대한 글짓기이다.
아들:"엄마는 어렸을 때 장래 희망이 뭐였어?"
나: "나는 영화감독과 기자가 되고 싶었어"
아들: "그래서?"
나: "엄마는 기자가 되었지. 영화감독은 못되었지만 지금은 마케팅일을 하면서 감독님들과 영상을 만드는 일을 하지."
아들: "그럼 이제 엄마의 장래 희망은 뭐야?"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이제 백세 시대라고는 떠들고들 있으나 난 그 남은 50년을 어떻게 살지 뭘 하며 살지 잘 모르겠다. 다행히 홍보 마케팅 업무를 하며 직장에 다니는 "직장인"이 되어 앞으로 10년 정도는 월급을 받으며 더 일을 할 계획이다. 하지만 직장 외에 내 장래희망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자고 일어나면 폭등하는 집값 관련 뉴스에 대출 중단 뉴스, 게다가 암울한 코로나 관련 소식과 하루가 다르게 슬금슬금 오르고 있는 물가에 불안정한 정국까지, 우리 세대는 과연 장래희망이라는 숙제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바보처럼 House Poor를 벗어나자며 결혼 전에 구입했던 서울의 작은 아파트를 집값 폭등 전에 홀랑 팔아버리고, 서울 외곽의 신도시에서 전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내 신세를 한탄하며 하루하루 얼마나 부동산이나 경제의 흐름에 무지했던 나의 선택에 후회막급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 그때 그 아파트를 팔지 않았더라면, 아니면 그때 전세가 아니라 아파트를 샀더라면 등등의 상대적 박탈감과 상실감에 힘들어하는 우리 세대의 많은 사람들과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한탄만 하고 있는 내가 아들이 툭 던진 질문에 당황한 건 부끄러움이었다.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해서, 이렇게 혼란스러운 땅에 너와 너의 친구들이 일구어야 할 너희들의 장래희망들이 보여서 부끄러웠다.
누군가 대기업을 평생 다닌 직장인이 노후 대책을 걱정하는 나라는 OECD 국가 중에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한다. 난 경제통이 아니라서 다른 OECD 국가의 직장인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미국에 있는 내 동생들은 주거의 기본권을 누리려고 평생을 영끌까지 하며 집을 사기 위해 힘들게 번 돈을 쏟아붓지 않는다. 주거의 불안이 아니라 건강한 삶을 위해 노력하고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다.
반면, 한국의 수도권 끝자락에 사는 그들의 누나인 나는 "돈 많은 할머니"가 되는 장래 희망을 꿈꾼다. 그래서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이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온정을 베풀 수 있고 유의미한 관계를 맺으며 슈퍼히어로는 아니라도 리틀 히어로가 되어 조금은 더 나은 사회 구조위에 아이들의 장래 희망이 펼쳐질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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