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은 예상 못 한 상황에 당황해 잠시 서 있었다. 얼굴을 찡그리며 야- 임병진 하고 다시 한번 나지막하게 병진의 이름을 불렀다. 불 꺼진 집안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냥 돌아갈까. 무엇보다 악취가 너무 심해 더 이상 서 있기도 힘들었다. 아니 도대체 여기서 무슨 밥을 먹고, 무슨 술을 먹겠는가.
이거, 진짜 보통 년이 아니네.
택은 구역질이 올라와 현관문을 닫으려다 다시 한번 문 앞에서 전화기를 들었다.
우우웅-. 핸드폰 진동 소리가 집 안에서 들려왔다. 그제야 이상한 공포가 택의 등을 엄습해 왔다. 택은 쉽사리 집안으로 발을 넣지 않았다. 현관문을 활짝 열고 다시 임병진- 나 왔어 집에 있어? 하고 불렀다. 여전히 대답이 없자 택은 문 앞에서 재차 병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옅은 진동 소리만 집 안에서 맥없이 흐르고 있었다.
들어가서 확인해야 할까, 이대로 경찰을 불러야 하나,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머릿속이 뒤죽박죽 되어 상황 판단이 되질 않았다. 자신이 약속 날짜를 잘못 안 건 아닐까 병진의 문자를 다시 확인하고 날짜와 시간을 확인했다. 오늘이 분명한데. 택은 문 앞에서 초조하게 고민하다 참지 못하고 핸드폰 카메라를 켰다. 영상을 찍으며 들어가면 적어도 나중에 생길 오해는 받지 않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현관을 활짝 열어둔 채 휴대폰 조명을 켜고 집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택의 팔꿈치에 부딪혀 높이 쌓인 쓰레기 더미들이 바닥으로 투두둑 떨어졌다. 집이라고 해도 신발을 도저히 벗을 자신이 없어 신은 채 들어갔다. 천천히 빈 곳을 찾아 발을 내디딜 때마다 쓰레기 봉지들이 밟혀 바스락바스락 거렸다. 쓰레기 위를 걸어야 할 땐, 어떤 것들은 물컹하고 어떤 것들은 플라스틱이 깨지는 소리가 빠자작 - 났다. 거실로 들어설수록 선득한 기분에 뒷덜미 털이 삐쭉 섰다. 식은땀이 흘러 등을 적셨다.
임병진- 하고 속삭이듯 부르며 거실 전등 스위치부터 찾았다. 입으로 숨 쉴 때마다 속이 울렁거렸다. 택은 병진이 휴대폰을 두고 잠깐 마트라도 간 건 아닐까, 혹시 자신을 마중하러 바깥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이윽고 불이 훤하게 켜지자 집 안은 생각보다 더 처참했다. 쓰레기 매립장에 서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밝은 빛에 놀란 바퀴벌레들이 미친 듯이 움직였다. 주위를 돌아보니 방문 두 개가 닫혀있었는데, 아무래도 하나는 화장실이고 하나는 안방인 듯했다. 택은 본능적으로 현관에서 멀리 있는 문 앞에 섰다. 영상은 여전히 촬영 중이었다.
임병진-. 임병진 방에 있어?
택은 문 앞에서 다시 한번 이름을 불렀다.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병진이 바깥에 있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라도 돌아갈까. 이 방문 넘어 무슨 일이라도 생긴 상황이라면, 나중에 경찰이 찾아오면 뭐라고 해야 할까. 집에는 왔지만 방 안엔 안 들어갔다고. 자신은 이미 아파트 관리인과 이야기한 상황. 누가 봐도 수상한 상황. 자신이 이상한 오해라도 받으면 어쩌나. 도저히 문을 열 자신이 없어 한참을 서성였다. 씨바 모르겠다. 시간을 끌기엔 냄새가 너무 지독했다. 눈이 따끔거려 눈물이 맺혔다. 그냥 모든 걸 확인하고, 문제가 있다면, 만약 진짜 있다면, 오히려 지금 당당하게 경찰에 신고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야- 임병진. 헉!
이름을 부르며 문을 활짝 열자마자 택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거실과 달리 깨끗하고 쾌적한 방이 눈앞에 펼쳐졌다. 에어컨이 약하게 돌고 있었다. 방 한쪽엔 프레임 없는 매트리스만 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그렇게 찾던 병진이 가지런하게 누워 있었다.
병진아! 병진아!
엄마를 잃었다가 찾은 아이처럼 병진에게 달려간 택은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주사기 여러 개를 발견했다. 제정신 아니더니 이유가 있었구만? 하얗게 드러난 팔과 다리엔 주삿바늘 자국이 보였다.
야,,, 너...너...
코에 귀를 대보던 택이 으아아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뒤로 밀려났다.
진짜, 죽었잖아?
택이 두리번거리며 방바닥에 뒹굴고 있는 핸드폰을 다급하게 찾았다. 핸드폰을 들고 119를 누르는 데, 무언가 택의 눈에 들어왔다. 병진의 머리맡에 있는 두툼한 봉투 2개와 핸드폰, 볼펜 그리고 무언가 적혀있는 종이들. 급히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천천히 기어 그곳으로 다가간다. 자신의 DNA라도 묻을 새라 조심히 병진의 머리맡에서 물건들을 하나둘 챙겨낸다. 봉투를 벌려보니 비밀번호가 적힌 통장 하나와 5만 원짜리가 빼곡히 다발로 들어있었다.
헉. 이게... 다 뭐지...
택은 종이의 글귀들을 읽어본다. 한 장은 택에게 쓴 거고, 나머진 청소 업체 견적서였다.
청소비랑 장례비.
그리고 남는 건 너 가져.
통장을 펼쳐 잔액을 보니 1억이 조금 넘는 돈이 있었다. 택은 망연자실한 상태로 그 자리에 한동안 앉아있었다. 통장과 5만 원 다발 그리고 병진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기만 했다.
5.
아이 씨발 냄새.
열린 문으로 밀려들어오는 악취에 정신을 차린 택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닫고 창문을 열었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들어왔지만 그래도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조금 전 갔었던 아파트가 내뿜는 불빛들에 눈이 부셨다.
하나 둘 셋 넷...
택은 눈으로 아파트 층수를 세다 23층쯤 헷갈려 멈췄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시간을 끌면 왜 늦게 전화했냐고 경찰들이 물어보는 거 아닌가? 그냥 놀래서 그랬다고 하지 뭐.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없는 이 상황. 택은 방바닥에 있는 현금 뭉치를 주워 창문에 몸을 기댄 채 돈을 셌다. 구십팔, 구십구.... 백... 백? 오백만 원! 통장을 들어 다시 숫자를 확인했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 일억... 택은 통장에 있는 숫자를 보다 자신이 쓸 수 있는 돈인가, 하는 궁금증에 빠졌다. 현금은 그냥 가져가면 될 테고, 일억은? 병진이 써 놓은 메모를 다시 읽었다. 남은 돈은 너 가져라고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나 가지라고 했으니까, 이게 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건가. 무연고자라서 나라에서 가져가는 건가. 가족이 아니라서 안 되는 걸까?
택은 최면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통장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뒤지려면 현금으로 다 찾아놓고 뒤지지 어쩌란 거야. 병진에 대한 원망이 일었다. 통장 속의 돈을 어떻게 찾아 쓸 수 있을까. 죽고 난 다음에 쓰면 뭐든 거래 기록이 남을 텐데, 이 늦은 시간에 ATM 기계에서 100만 원씩 인출한다고 해도 그게 가능한가. 아! 계좌이체. 하. 그것도 기록이 남을 텐데. 지금 이체하면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
생각이 꼬리를 물수록 택은 짜증이 났다. 통장을 신경질적으로 병진의 얼굴에 집어던졌다.
너어는 씨바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어? 뒤질 거면 미리 주고 뒤지지. 엉!?
흥분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고요하게 누워있는 병진에게 시선을 던지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허무함이 느껴졌다. 우리 뭐 하는 거냐. 생은 너무 무겁고 죽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방 안 온도가 점점 후텁지근해져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택은 자신의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머리가 너무 복잡해 현금만 챙기고 나머지는 경찰이 알아서 하게 두기로 했다. 운이 좋아서 잔액을 받을 수 있으면 다행이고. 핸드폰을 켜자 습관적으로 코인 잔액을 확인하게 됐다. 엉?
여기 오는 동안 확인 안 한 사이에 몇 백만 원이 쑥 올라 있었다. 차트를 열어보니 누가 봐도 상승장, 크게 먹을 수 있는 자리였다. 돈을 더 넣고 싶었다. 택은 무의식적으로 눈으로 병진의 얼굴에 올라가 있는 통장을 노려봤다. 문득 이정도 돈을 모았다면 코인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병진의 핸드폰을 다급히 열었다. 코인으로 자신에게 이체한 다음 앱을 삭제해 버리면 되지 않을까? 뭐든 가능성을 확인해 봐야만 했다. 병진의 팔을 들어 지문 인식으로 된 핸드폰 잠금을 해제하고 신중하게 핸드폰을 살폈다. 하지만 코인 앱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통화 목록을 보니 병진의 세상은 훨씬 형편없어 보였다. 거의 1588로 시작되거나 070으로 시작되는 번호 밖에 없었고, 010으로 시작되는 것도 이름 저장이 없는 거 보니 광고 같았다. 유일하게 자신의 이름이 적힌 문자 메시지 몇 개가 있었고, 몇 년째 사람들과 소통 없이 유령처럼 살고 있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통장을 다시 살폈다. 2년 전에 입금된 월급 이후로는 조금씩 인출된 내용밖에 없었다. 그전에는 정기적으로 월급도 받고 있었고, 청약 저축 같은 문구도 간간이 보였다.
너는 살아있어도 죽은 것 같았냐 왜.
택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자신도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았다. 집에서 죽으면 누구를 오라고 불러야 할까. 누구에게 처리해 달라고 부탁해야 할까.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아 자신의 전화는 피하는 친구들, 회사에 다니고 있는 줄 아는 엄마를 생각하니 씁쓸했다.
자신의 핸드폰을 열어 다시 한번 코인 잔액을 확인했다. 무섭게 오르고 있었다. 지금 돈을 더 넣으면 빚은 정말 한방에 갚을 수 있는데.
띵동-.
그때 병진의 핸드폰에 알림이 울렸다. 깜짝 놀란 택이 확인하니, 햇반이 배송되고 있었다. 너는 죽고 싶었던 게 맞을까? 택이 핸드폰을 내려놓다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건 자신이 생각해도 무서운 생각이었다.
만약 임병진, 너가 죽지 않았다면?
이대로 아주 천천히 실종되어 버린다면?
바깥에 뿜어지고 있는 악취와 뒤섞여 함께 사라진다면?
택이 무서운 눈으로 누워있는 병진을 째려봤다. 천천히 일어나 창문을 닫고 에어컨의 실내 온도를 낮췄다. 파워 냉방 버튼을 누르자 에어컨이 우웅-하는 소리를 내며 차가운 바람이 쏟아졌다. 머릿속이 깨끗해지고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병진의 핸드폰을 열어 잠금 설정을 아예 해제해 버렸다. 청소 견적서에 있는 전화번호에 카톡을 남겼다. 선금을 넣을 테니 일정을 잡으면 와서 정리해 놓으라고. 자신은 집에 없을 예정이니 깨끗하게만 해달라고. 새벽이라 답장은 없었지만, 내일이면 그러겠다는 업체의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방 안 온도가 급속도로 떨어져 닭살이 오돌토돌 돋았다. 가정용 전기톱과 도축용 칼, 대용량 락스, 철수세미와 장갑, 봉투를 로켓배송으로 구매했다. 몇 개는 배달 중 아는 아파트 쓰레기장과 철거 현장에 있는 쓰레기차에 나눠서 버릴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모를 지문 인식 요구 때문에 손가락은 갖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빠르게 현금화할 수 있는 비싼 가전제품들을 하나 둘 구매하기 시작했다. 최신형 공기청정기, 무선 청소기, 가습기 따위의 이동이 쉽고 오토바이에 실을 수 있는 것들로 구매했다. 배송은 모두 이틀 안에 들어올 것이다. 구매를 하고 나니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배달의 민족 어플을 켜고 최근 28회 구매라고 써진 치킨집을 골라 시켰다. 메모엔 비대면 - 문 앞에 두고 문자 주세요,라고 써뒀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아차. 현관문을 열어두고 오지 않았던가.
다급한 마음으로 일어나 방문을 여니 습하고 뜨거운 열기와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다. 우욱-. 방문을 꽉 닫고 코를 막으며 쓰레기를 헤치고 현관 쪽으로 빠르게 나갔다. 활짝 열린 현관 앞에 맥주 봉지가 보였다.
삐리릭-. 문이 잠기자, 공간은 금세 고요로 내려앉았다. 낯설었던 이 쓰레기장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미지의 공포가 사라지자 제 집에 온 사람처럼 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식어버린 맥주를 냉장고에 넣으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처참했다. 다행히 작동은 했지만, 내부는 곰팡이와 죽은 벌레로 가득했다. 냉동실 속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더기를 손으로 잡아끌었다. 우두둑 소리와 함께 성애와 얼음덩어리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가 뭉쳐 바닥으로 떨어졌다. 캔맥주를 하나하나 꺼내 가지런히 쌓고 문을 닫았다. 나온 김에 화장실 문을 열었다 다시 닫았다. 밥맛이 떨어질 것 같아 아무래도 내일 일어나 일처리 할 수 있도록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싱크대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씻었다. 수압이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면 합격. 과자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자 가지런히 누워있는 병진이 신경 쓰였다. 시체를 보며 치킨을 먹는 취미는 없었기에 택은 병진의 두 발을 붙잡았다. 거실 쪽으로 천천히 끌고 나오는 동안 쓰레기 더미들이 병진의 얼굴과 몸으로 쏟아졌다. 쓰레기와 뒤엉킨 병진의 몸을 최대한 방문에서 멀찍이 떨어트려 놓았다. 일단 오늘은 좀 쉬고 모든 건 내일 처리하리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방으로 들어가 매트리스에 걸터앉았다. 피곤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택은 쓰러지듯 병진이 누웠던 자리에 벌러덩 누웠다. 신발을 벗자 자신을 옥죄던 모든 걱정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하. 이제야 좀 누워보는구나. 살 것 같아.
오늘은 배달도 많았고 계단 있는 집이 많아 힘든 날이었다. 내일은 금요일. 배달이 많을 텐데, 새벽에 일어나 일처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머릿속으로 내일을 천천히 계획하다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뱃속에선 생존 요청처럼 꼬르륵 소리가 울렸지만, 눈이 무거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 치킨 올 시간 다 됐는데... 맥주도 냉동실에 있어서 잠들면 안 되는 데...
택의 걱정스러운 마음에도 몸은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방문 틈으로 거긴 내 자리야 크크큭 하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도 듣지 못한 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