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7월이 되고 매일 35도를 넘나드는 지독한 열기에 세상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도로의 아스팔트도, 택의 체중도, 평정심도, 인내심도, 배달일을 하면서 알게 된 주변 사람들도 모두 사라졌다. 누군가는 배달 중 싱크홀에 빠져 생을 마감했고, 또 누군가는 열사병으로 쓰러져 길가에 오래 방치되어 있다 세상을 떠났다. 택도 배달 중 종종 어지러움을 느껴 휘청이는 날이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밖에 나오길 꺼리는 사람들 덕분에 배달이 늘었다는 점이었다. 지난봄부터 모은 돈으로 몇 번의 투자 끝에 천만 원을 손에 쥐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잠도 밥도 줄이고 장시간 배달했다. 장마 기간엔 쿠팡에 지원해 알바를 하기도 했다. 고급 아파트에 갈 때면 버려진 중고 물품들을 주워 현금으로 만들기도 했다. 종종 자신을 쳐다보는 주민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부끄러울 시간도 낯을 가릴 시간도 없었다.
몸에서는 하루 종일 쉰내가 풍겼고, 타인과 이야기하는 날도 점점 줄어들었다. 대기 시간엔 대부분 골목 그늘에 서 있었지만, 체감 온도 40도가 되는 날에는 골목에 오토바이를 세울 수 있는 은행에서 대기하거나 대형 카페 화장실에서 잠시 쉬기도 했다. 그렇게 미쳐가는 세상에 택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싸워나가고 있었다.
빵빵-.
배달이 가장 밀리는 점심시간, 좁은 골목에 차들이 멈춰 서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보려 택한 골목길이었건만, 택은 욕이 절로 나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빼고 보니 멀리 하얀 SUV 가 비상등을 켜고 서 있었다. 주차를 빨리 못하는 모양이었다. 미친놈 운전 못 하면 버스 타고 다니던가. 빠질 수 있는 골목도 없는 일방통행이라 택은 하는 수 없이 차들 사이를 발로 걷다시피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가까이 가보니 주차를 하려는 작은 공터에 사람의 실루엣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말로만 듣던 주차 빌런인가. 택은 한문철 tv에 제보라도 해볼까 하는 요량으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영상 버튼을 누르고 주머니에 넣은 후 옆을 지나가며 천천히 찍으려고 했다.
아줌마! 비키시라구요!
곧 차 온다니까요!
아니, 그런 게 어디있어요! 차가 왔잖아요!
제가 먼저 왔거든요!
가까이 다가갈수록 두 사람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자리를 지키겠다고 서 있는 이의 악다구니가 멀리까지 느껴졌다. 저저, 미친년. 택이 한마디 할 요량으로 천천히 다가가는데,
...병진이?
하얀색 긴 팔 바람막이 여름 점퍼와 분홍색 긴치마, 땀에 홈빡 젖은 얼굴, 목에 미역처럼 힘없이 달라붙은 긴 머리, 곳곳이 지워져 피부가 벗겨진 것 같은 화장, 악다구니와 열기로 상기된 얼굴로 버티고 있는 빌런은 다름 아닌 병진이었다.
쟤가 왜 저기 있는 거야.
이름을 부르려 다가갔을 때, 무슨 보물이라도 찾은 듯 절대로 뺏기지 않으려 희번덕이는 병진의 눈알과 마주쳤다. 저 얼굴, 반지의 제왕에서 본 거 같은데. 헬멧을 쓴 택을 알아보지 못한 병진은 오토바이가 다가오자 뒤로 주춤하면서도 손으로 지나가라는 듯 가로저었다. 이윽고 그날의 그 작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더니 그 자리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차량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택은 차와 병진이 사이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내렸다. 주차 자리를 두고 싸우던 두 사람이 동시에 벙찐 얼굴로 택을 쳐다봤다. 앉아 있던 병진이 택인줄 모르고 다시 자리 주장을 하기 위해 아저씨 여기 자리 있어요 하며 도끼눈을 뜨고 일어나려는데, 병진이 손으로 잠깐만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뭐에 홀린 듯 병진이 그 자리에 멈추자, 택은 SUV에 다가갔다.
사장님, 요기 앞에 30미터만 가면 오른쪽에 유료 주차장 있어요. 그쪽으로 가시죠.
거기도 만차예요! 그리고 여기 자리가 있잖아요!
에- 맞아요. 자리가 있죠, 있는데, 그, 뭐냐, 미친년도 있잖아요? 날도 더운데 시간 낭비해서 뭐 합니까.
아니 씨팔! 진짜. 어이가 없네. 아니 저게 말이 돼요?
그러니까요. 그런데 미친 사람하고 무슨 대화가 되겠습니까. 저 보세요. 이 땡볕에 저 눈깔 돌은 거.
에이 진짜, 재수가 없으려니 별 미친년이 다 설치네. 저런 년은 차로 콱 밀어버려야 정신을 차리지, 야이 미친년아, 평생 그렇게 살다 뒤져라.
차주는 마지막으로 발악하듯 소리를 지르고 창문을 올렸다. 택은 차에서 떨어져 서서 수신호를 하듯이 차를 하나하나 보냈다. SUV가 왱-하고 소리를 내며 과격하게 출발하자, 뒤에 차들도 서서히 빠져나갔다. 줄줄이 서 있던 뒤에 차들 중 한 대가 눈치 없이 창문을 내리며 여기 주차 안 돼요? 하고 다시 물었고, 택은 여기 미친 여자 있어서 안 돼요, 하고 대꾸했다. 차주는 빈자리에 꼿꼿이 앉아있는 병진을 한심하다는 듯 째려본 후 창문을 닫고 출발했다. 차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골목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조용해졌다.
택이 뒤돌아 뙤얕볕에 앉아 있는 병진에게 다가가자, 병진이 또다시 고장 난 녹음기처럼 맥없이 아저씨, 여기 자리 있어요 하고 웅얼거렸다. 택이 병진 앞에 서서 병진을 내려다보며 차가 진짜 오긴 오냐? 하고 말했다. 병진은 택을 쳐다보지도 않고 한 손으론 해를 가린 채, 아저씨 반말하지 마시구요, 가세요, 여기 자리 있어요 하며 나머지 한 손을 허공에 휘휘 가로저었다.
택은 그제야 헬멧을 벗어 손으로 헬멧을 한쪽 허리에 받쳐 들고 병진을 쳐다봤다. 아까부터 업체에서 계속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야, 임병진.
그 말에 손으로 해를 가리고 딴 곳을 보던 병진이 고개를 든다
어? 어? 뭐야. 택아!
병진이 그제야 해사하게 웃으며, 그러니까 택이 알고 있는 그 순수하고 앳된 얼굴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땀에 찌든 냄새가 훅 끼쳐왔다.
뭐야, 너였어? 나는 또 뭐라고. 뭐야, 대박이다, 여긴 왠일이야.
너 뭐냐 진짜.
뭐가 뭐냐야. 야아, 너라고 빨리 말하지. 난 또 웬 미친놈인가 해서 괜히 엄근진하고 있었잖아.
너 도대체 무슨 차가 오길래 이 땡볕에 독립투사처럼 이러고 있냐고, 뭐 사장님이 자리라도 맡으래?
아니야, 그런 거.
그럼. 뭐야, 남친이야?
그때 배달 독촉 전화가 와 택은 다시 오토바이 위에 올랐다.
아무튼 난 배달 가야겠다.
그래. 우리 택이, 돈 버느라 바쁘구나. 운전 조심하고. 연락할게.
뭘까. 조금 전에 그 모습은, 귀신이라도 쓰였던 걸까. 오토바이를 출발시키는 택의 머릿속이 들끓는 화산처럼 요동쳤다. 땀에 찌든 채 머쓱한 얼굴로 힘없이 손을 흔드는 병진에게 택이 출발하려다 다시 멈추고 돌아본다.
너 근데, 차가 진짜 오긴 오는 거야?
대답 없이 비실비실 웃기만 하는 병진을 두고 택은 오토바이를 목적지로 몰았다.
4.
그날 이후 택은 병진을 알고 있을 것 같은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더 이상 엮여서도, 궁금해하지도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지만, 왜일까. 한편으로는 병진을 이해하고 싶었다. 병진에겐 분명 어떤 일이 있었고 그래서 그 종이 인형 같던 아이가 그렇게 된 거라고. 생략된 지난한 과거를 확인하고 나면 그녀의 기이한 언행을 다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말 못 할 속사정이 있어서 망가진 거라고. 아직은 온전히 망가지지는 않은 것 같으니 어쩌면 가슴에 맺힌 이야기를 하고 나면 원래대로 돌아올지도 모를 거라고. 무엇보다 호기심인지 과거의 연민인지 그것도 아니면 뭔지 모를 자꾸만 신경 쓰이는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인연이 보통 그렇듯 병진의 소식을 알고 있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쉬는 날 언제야? 밥 살게.
뜬금없는 문자가 온 건 새벽 1시가 넘어서였다. 아침에 확인한 문자에 가타부타 다른 말은 넣지 않고 약속부터 잡았다.
쉬는 날 없어. 돈 벌어야지. 평일 10시 이후에 아무 때나.
내일 집으로 와.
병진의 집 주소를 받고 택은 이건 또 무슨 시그널인지 몰라 조금 고민하다가 알겠다고 했다. 종잡을 수 없는 병진의 행동을 보며 분명 MBTI는 대문자 P일 거라고 확신했다. 거기다 요즘 떠들어대는 성인 ADHD도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게라도 택은 병진의 기행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한편으로는 불안함도 있었다. 혹시 무슨 일에 엮이는 건 아닐까. 안 그래도 밑바닥 인생 더 밑바닥으로 꺼지는 일이 생기진 않을까. 장기 매매라도 하는 애면 어떡할까, 마약이라도 타면 어쩌지, 괜히 성추행으로 신고라도 당해서 돈 뜯기는 건 아닐까 하는 망상적인 고민을 하면서도 병진의 집에 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진 못했다.
택은 알고 있었다. 병진은 분명 변해있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니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오랜만에 본 친구들이 실망스러운 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변한 건 택 자신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너 그럴 줄 알았다, 그 정도 수준이었다. 그 기저에 깔린 본성이 바뀐 건 아니었다. 하지만 병진은 뭐랄까. 아예 다른 인격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변해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점이 택의 호기심을 자꾸 자극했다.
택은 지난번 갔던 지하철 앞 편의점에서 다섯 캔에 1만 원 하는 수입 맥주와 과자 몇 개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콘돔이 매달려 있는 매대 구석에 서서 한참을 눈으로 살피다 그냥 계산대로 향했다. 어쩌면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어쩌면 나쁜 일이 있을 수도 있는 불확실한 확률 속에서 괜한 도박을 할 용기가 없었다.
네이버 지도를 살피며 20분쯤 걸었을까.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해 앱의 안내를 따라왔는데, 어느덧 아파트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아파트 골목은 이중 삼중 주차로 가득했다. 아파트 틈 사이로 5층 높이의 빌라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가까이 갈수록 이상함을 느꼈는데, 어쩐지 빌라로 들어가는 입구가 펜스로 막혀있었다. 눈앞에 빌라가 보이지만 들어가는 길이 보이지 않아 당황한 택은 이리저리 주변을 살폈다. 뛰어넘을 수 있을까 오른쪽 다리를 올려보려는 그때 뒤에서 누군가, 어어- 거기로 다니면 안 돼요 하고 소리쳤다.
택이 고개를 돌려보니 아파트 관리인이 뛰어온 건지 숨을 몰아쉬며 험악한 얼굴로 빨간 봉을 들고 흔들고 있었다. 택은 손가락으로 빌라를 가리키며, 빌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묻자, 관리인의 목소리는 더 사나워졌다. 빌라 주민인지 아파트 주민인지 여긴 무슨 일로 왔는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질문을 마구 퍼부었다.
자신은 빌라에 사는 친구 집에 온 거뿐이라고 이야기하니 빌라 가는 데 왜 아파트로 들어오냐며 면박을 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택이 급발진하며 아니 씨발 길을 모르니까 왔지 하고 소리를 지르자 경비원이 주춤하며 빌라로 가려면 저쪽 밖으로 돌아나가라고 했다. 경비원이 이야기하는 길을 앱으로 확인해 보니 대략 30분은 더 걸리는 거리였다. 그제야 펜스 옆에 '이곳은 사유지입니다 아파트 주민 외 절대 출입 금지'라고 써진 현수막이 택의 눈에 들어왔다.
택은 배달하며 이런 이상한 규정으로 영역 다툼을 하거나 자신들의 거주지를 신성화하는 곳들을 많이 봐왔다. 아이들 보호 명목으로 오토바이 자체가 아예 출입이 안 돼서 입구에서부터 걸어가야 하는 곳도 있었고, 들어가려면 몇 번의 신분 검사 후에 배달시킨 사람이 내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곳은 물론 단가가 조금 더 높긴 했지만 기분은 최악이었다. 이럴 거면 시켜 먹질 말던가. 하지만 언제나 돈이 궁하고 절실한 자신 같은 인간들이 있으니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건 자신이었다. 어떤 불합리도 별 탈 없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에 동조하는 건 사실 자신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는 생각은 안 하기로 했다. 빚만 다 까고 나면 이 짓도 끝이라 다짐하는 방법 외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택은 지도를 보며 가는 길을 다시 확인했다. 30분이나 더 걸어가면 캔 맥주가 다 식겠네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가는 택의 뒤통수에 경비원은 다시 한번, 다음부턴 친구 집에 올 때면 아파트 길로는 들어오지 말라고 여긴 땅값 자체가 다르다고 했다. 뭐라고요? 하며 택이 험악하게 돌아보자, 경비원은 목소리를 누그러트리며 그러지 않으면 자신이 주민들에게 항의를 받아서 하는 말이라며 택을 달랬다.
균열이 가득한 5층 높이의 빌라는 페인트가 모두 벗겨져 있었다. 재건축, 중단, 채광, 보존, 생존권, 보장, 악마, 위협 등의 단어가 어지러이 섞여 여기저기 아파트를 비난하는 원색의 현수막이 가득 걸려있었다. 바로 옆엔 펜스가 있던 길도 보였다. 심리적인 압박감일까, 몇 걸음 차이에 있는 아파트는 빌라 쪽에서 보니 아까보다 훨씬 높아 보였다.
삐걱이는 샷시 문을 열고 들어오니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된 걸까. 택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마음으로 병진이 말한 호수의 문 앞에 섰을 때, 문에는 법원에서 온 등기 우편 안내 스티커로 가득했다. 집을 잘 못 찾은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스티커에는 온통 임병진이라는 이름이었다.
똑똑-.
께름칙한 기분으로 현관을 두드렸다. 집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초인종은 이미 망가져 전선 여러 가닥이 밖으로 나와 있었다. 문 앞에 서서 병진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그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센서등이 불이 들어왔다가도 금방 꺼져 주위가 어두워졌다.
임병진-. 나 왔어-.
현관을 두드리며 이름을 부르던 택이 문고리를 잡고 돌리자, 문이 힘없이 당겨졌다.
윽-. 뭐야 이거.
음식물 쓰레기통 옆에 가면 나는 미지근하고 역겨운 냄새가 훅 끼쳐왔다. 택은 본능적으로 숨을 참고 코를 막았다.
임병진, 안에 있어?
삐걱- 소리를 내며 문을 천천히 열자,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 높이의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온갖 음식점 이름이 적힌 봉투들 사이로 날파리와 쇠파리들이 놀란 듯 흩어지며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와. 씨바.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