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에너지를 쏟는 일이다
당신은 얼마나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지.
내 마음은 온전하게 하나 밖에 없어서 한 사람 말고는 곁을 내준 적이 없다. 사람의 마음도 자동차랑 비슷하지 않을까? 보이지는 않지만 크면 클수록 에너지를 많이 먹어야 하는 어떠한 것일지도 모른다.
마음이라는 것에 실체를 직접 본 적은 없으니 내 마음의 크기가 얼만큼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고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것도 금방 에너지가 고갈되니 아마 경차 정도 수준일 거다. 그러나 엄마는 달랐다.
사계절 내내 변하지 않는 푸름으로 우뚝 솟은 소나무처럼 엄마는 변하지 않고 그 마음을 꼿꼿이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어떤 폭풍이 지나가고 비바람과 찬 서리에도 변함없이 푸르게 사람을 대했다.
먼 길을 돌아 산책을 하다 집으로 향하는 길, 길가에 앉아 있는 할머니 두 분을 만난다. 엄마는 살갑게
"아이고, 밖에서 뭐하셔. 옷은 왜 그렇게 입구. “
하면서 다가간다. 나는 쭈뼛쭈뼛 뒤를 따른다. 한 분은 치매를 앓고 있고, 다른 분은 곁에서 말동무를 하고 계신다. 치매를 앓는 할머니는 윗 옷을 벗은 채 앉아 있다.
“아니, 이래 옷을 벗고 있잖소.”
옆에서 안타깝다는 듯이 할머니가 말한다. 정작 옷을 벗고 방실방실 웃고 있는 할머니는 마냥 즐겁다.
“감기 들려. 아이고, 이리 봐봐. 이 옷을 왜 벗고, 엄마야. 할머니 가슴큰 거 봐라. 나보다 크다잉.으히히.”
엄마는 옷을 입히다가 할머니 가슴을 만지며 장난을 친다. 할머니는 간지럽다는 듯이 ‘히히히’ 웃으면서 옷을 입는다. 옆에서 같이 즐겁다는 듯이 할머니는
“우리 딸이 똑 그러더라고. 내 가슴만 보면 그래 만져. 엄마, 엄마 하면서. 우리 딸이 다 커서도 그래 만져댔다니. 아주.”
뒤에서 한 발짝 떨어져 지켜만 보던 나는 뭔가 민망하기도 하면서 재밌기도 하고 결국 피식- 웃음이 났다. 엄마는 할머니 옷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입히면서 ‘감기 걸리면 큰일이다.’ 라며 같은 말을 반복해서 한다. 그 말을 듣고 정말 이해하시는 건지 그냥 끄덕이는 건지 ‘알아. 알아.’하면서 웃으신다.
“그럼 두 분 재밌게 노셔요.”
“왜? 벌써 가려고? 좀 더 있다가지.”
“아이고, 나 우리 딸내미 밥해줘야지.”
“어, 딸이야?”
그제야 나의 존재가 드러난다.
“안녕하세요.”
나는 멋쩍게 인사를 한다.
“아이고, 딸이 이쁘네. 이래 큰 딸이 있어?”
“그럼 나도 나이가 많아요. 할머니랑 나랑 뭐 친구 해도 되지 뭘.”
할머니 두 분은 엄마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자꾸 이말 저말 시키면서 대화를 하고 싶어 하셨다. 집에서 코 앞이라 엄마는 가끔 먹을 것을 해서 나눠먹거나 길에서 만나서 말동무를 해드린다. 할머니는 치매에 걸리셔도 엄마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셨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 집 역시 치매 걸린 할머니가 계셨다. 엄마의 엄마는 그렇게 몇 년을 치매로 고생하다 달이 엄청 밝은 보름에 세상을 떠나셨다. 할머니는 인공 심박기를 차고 계셨는 데, 그게 멈추려는 심장을 인위적으로 계속 뛰게 하는 거라 돌아가실 때의 모습은 끔찍했다고 한다. 엄마는 새벽을 뚫고 나오는 할머니의 절규가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는 한 인간을 기계가 붙잡는 장면은 아무리 엄마라고 해도 공포 그 자체였다.
치매 환자와 함께 생활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마음 한쪽 구석에 자라나는 두려움이 있다. 늙어 가는 인간으로서의 두려움 말이다. 처음에는 스스로도 그 사람이 치매 환자이기 때문에 상황 인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부한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대화하던 우리 엄마였는 데’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말로 설득도 하고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어딘가 모를 공포가 자라난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혹시 나도 나이가 들면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게 되는 걸까? 내가 자식에게 이런 대접을 받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들 말이다. 암세포 같은 불안감이 점점 싹트기 시작한다.
스스로도 치매 노모를 모시는 동안 미워했다가 어떤 날은 동정했다가 어떤 날은 화가 났다가 어떤 날은 너무 미안하고 불쌍한 마음이 든다. 할머니와 같은 생활 하는 동안 내 마음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어찌 자식과 손녀의 마음이 같을까. 그렇게 마음이 백 번도 넘게 요동치며 스스로를 흔들어 무너트린다.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감정 에너지의 소모는 극에 달한다.
얼마나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부모라서 당연히 사랑해야 한다. 가족이라서 당연히 사랑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행동이 안 될 때가 있다. 귀신에 씌인 것 처럼 말에서만 그칠 때, 감정이 오히려 더 자신의 인생관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때, 정작 괴로운 건 본인이다.
스스로의 삶의 문제로도, 여자라면 겪는 갱년기 증상에 불면증 약을 먹는 동안에도, 매일 홍수가 휩쓸고 간 마을처럼 처절 한데, 동네에 사는 치매 걸린 노인이 자꾸만 돌아가신 우리 노모 같아서 마음이 쓰인다면 우리 엄마의 마음의 크기는 아마 커다란 대형 트럭 정도 될지도 모른다. 당연히 우리 엄마라서 더 커보이는 걸지도 모르지.
그런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그 큰 트럭에 앉아 싱싱 달리는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애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정말 엄마만큼 커다란 에너지 통을 가진 무언가가 될 수 있을지 스스로도 아직 확신이 없다.
추석 날, TV를 보며 모시떡을 먹는 엄마에게 말을 건다.
“엄마, 엄마는 후회되는 거 없지? 엄마는 할머니한테 엄청 잘했잖아.
“나? 후회되는 거?”
“응”
엄마는 먹던 떡을 접시에 내려둔다.
“있지. 왜 없어.”
“뭔데?”
“할머니한테 소리 지른 거. 그게 아직도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 노인네가 아무것도 몰라서 한 일들인데.”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일어나 괜히 설거지를 시작했다. 나는 그 뒤로 무슨 위로의 말을 건네어야 할지, 아니면 장난스럽게 넘겨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리고 쉽게 생각한 나 자신이 미워졌다.
사랑한다는 건 사람에게 에너지를 쏟는 일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사랑의 에너지는 고갈돼면 서서히 다시 차오를 수 있기에 우리는 그 통이 크면 클수록 좋다. 나도 커다란 마음 통을 갖고 싶다. 그래서 아무리 누군가를 사랑해도 넉넉하게 남아서 끄떡없고, 또다시 가득 차오르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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