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는 곳'은 '집'입니까?

정착할 수 없는 이 시대 청년들의 이야기

by 클레멘타인

지금까지 살면서 약 서른 번은 이사를 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 때문이었지만, 크고 나서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이사였다. 말 그대로 좀 더 나은 보금자리 쟁취를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처음 서울에 올라간 후 취업을 위해 친구의 원룸에서 함께(또는 얹혀) 사는 것을 시작으로 꽤 많은 집을 전전했었다. 나름 월세와 관리비를 냈지만 그렇다고 내 집은 아니다. 친구가 기존에 살던 집에 생활비를 반 낸다고 해도 뭔가 모르게 눈치가 보이기 마련이다. 성격이 좋은 아이라서 부딪힌 적은 없었고 덕분에 나는 서울에서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와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란 걸 느꼈다.


혼자 독립을 한 이후로, 대부분 최대한 직장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다녔고, 때로는 직장을 잡고 그 근처로 이사가 기도 했다. 안 그래도 복잡한 러시아워에 걸어서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건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돌이켜 보면 그때 나는 이사 박스를 다 풀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1년마다 이사를 하는 통에 굳이 다 풀어놓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옷은 계절마다 박스를 분류해 놓고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박스를 하나씩 풀고 다시 덮었다. 그리고 결국 부모님이 계시는 곳으로 돌아왔다.


집이란 무엇일까? 예전에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어른 세대들은 내 집 마련의 꿈이 있었던 거 같다. 아니 적어도 꿈을 꿀 수 있는 시대였던 것 같다. 노력하면 한 만큼 성장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으니까. 시골로 이사 오고 난 뒤 몇몇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한 결 같이 말한다.


'그때는 진짜 돈 잘 벌었다고. 지금은 반에 반도 안 된다고.' 물론, 몇몇 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 한 사람들의 불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골에 들어오면 대부분 자가주택에 거주를 하고 있고, 힘들다고 하지만 서울 생활보다는 훨씬 여유로웠다. 그러나 문제는 직업군이 없었다. 그래서 지역에는 대부분 청년층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서울에서 꿈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에게 기본이 되는 의, 식, 주 중 은 언제나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다.


N 포 세대들은 등록금 빚에 월세는 물론이고 취업 준비 비용까지, 아무것도 생산되지 않는 커다란 구멍에 더욱 많은 것을 쏟아붓는다. 마주하는 것은 커다란,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구멍과도 같다. 이전 세대가 오르막길을 오르는 고단함을 짊어졌다면, 지금의 청년들은 끝을 알 수 없는 내리막을 마주하고 있다.

청년, 난민 되다. 미스핏츠 지음


전 세계적으로 불황이라고 하고 , 이미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말로 장기불황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니까 어느 나라나 베이비붐 세대가 있고 그들과 함께 부동산 가격은 폭등했다.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부동산 문제는 세계 곳곳에서도 큰 문제다. 전 세계를 경제의 구렁텅이로 쏟아부었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집은 어느 순간부터 사는 곳이 아닌 경제 수단이 되어버렸다. '부동산 버블' 이 만들어 놓은 허상의 세계는 오롯이 청년들의 발목을 휘감는다.


높아질 대로 높아진 집값은 이제 누가 감당해야 하는 가? 노오력을 안 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얼마 전 정부에서는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해야 할지 규제를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인다. '집'은 이제 더 이상 주거 공간만의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식,주'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필수요소로 적용되지만, '부동산'이라는 대명사로 바뀌면서 청년세대 이하로는 끼어들 수 없지만 커다란 짐을 떠안은 존재로 남게 된다.


서울의 현실은 부모의 지원을 받지 않고 독립하고 싶어서, 아니면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집안 사정이 있어서 보증금부터 혈혈단신 해결해야 하는 친구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진다. 그들의 자존감은 집 앞에서 무기력하게 흩어지곤 한다. 사람들이 집을 위해 돈을 벌 동기를 잃는 다고 했다. 집값이 너무나 높이 올라가버리니 사람들은 '내가 왜 집을 구하기 위해 이렇게 일해야 하는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청년, 난민 되다. 미스핏츠 지음


2014년 타이베이의 평균 집값은 2001년에 비해 딱 세 배 올랐다. 당연하게도 청년 세대는 더 이상 타이베이에 정착할 수 없다. 임시로 나뉜 삶들은 가장 사적인 소리를 숨길 권리가 없다. 각자의 사적인 소리는 타오팡 안에서 어쩔 수 없이 '공유 되어야만 하는 '영역에 속해버린다. 일본에는 지붕만 있는 곳에 몸을 누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하우징 푸어(HOUSING POOR)'라고 부른다. 하우징 푸어는 '지붕만 있는 거처', 불안정한 주거 환경에 사는 사람을 가리킨다. 도쿄엔 싼 여관(도야)이나 캡슐호텔, 사우나도 있다. '마쿠도 난민'은 14시간 운영하는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새벽을 떠도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언제든 떠돌 것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트렁크 가방 한 개 안에 모든 생활을 담아야 한다.


청년, 난민 되다. 미스핏츠 지음
샤워실도 있고 양말, 티셔츠, 맥주, 온갖 먹을 것을 다 파는 일본 넷카페(NETCAFE)도 하나의 선택지다. 2007년 '넷카페족'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알려진 주거 난민의 피난처다. 2007년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약 5400여 명이라고 한다. 양대 산맥을 이루는 것이 바로 20대와 50대다. 이중 20대가 약 27퍼센트, 50대가 23퍼센트를 차지했다고 한다. 넷카페로 모여든 50대는 은퇴로 안정적인 소득을 잃은 '노후 난민'이 여럿이다. 20대 청년층은 불안정한 고용으로 안정적인 소득을 기대할 수 없는 이들이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는 프리터나 파견직,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이들이 많다.


청년, 난민 되다. 미스핏츠 지음


이런 상황 속에서 무업자 또는 선택적으로 일을 하지 않는 '니트족'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할 의지가 없는 그들은 희망을 잃은 삶을 살 것을 스스로 택하는 것이다. 한 편에서는 '게으른 청년'이라는 말로 청년들을 이해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왕년에 반지하부터 라면만 먹어가며 지금의 꿈을 이뤘으니 너희들의 지금의 고통은 당연하거라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더 이상 성장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물가는 올랐지만 임금은 따라가지 못 했다. 그 책임을 감당 못 하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물어야한다면 너무 가혹하다.


N 포 세대가 등장하는 이유는 과연 노력 부족일까? 모두가 상향평준화된 사회에서 어떤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것일까? 삶의 가장 기본적인 주거가 흔들리는 데 심리적으로 정착하지 못 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기존 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틀은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세상과는 균형을 이루지 못 하고 있다.


불안감과 상실감. 심리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집'의 의미라는 게 생성될 수가 없다. 이웃 간의 유대감도 기대할 수 없고, 지역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2013년 후생노동성 통계에 따르면 비정규 노동자로 일하기를 원치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일하고 있는 경우라고 답한 경우가 25~34세 사이에서 30.3퍼센트로 가장 많았다. 자기 의지로 '자유롭게 일하기'를 택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강제된 상황에서 저임금에 시달린다.

청년, 난민 되다. 미스핏츠 지음


반듯한 사회인이 돼서
'방'말고 '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에 살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집은 '공간'보다는 '시간'의 개념에 가까웠다. 일정 시간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 밤 열한 시가 되어야 집이 생겼고 집은 아침이면 다시 사라졌다. 언제든 박스 몇 개에 나눠 담을 수 있도록 인생을 정리한다는 것. 원치 않지만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 도시에서 안정적으로 공간을 빌릴 자본이 없는 청년은 잠재적 난민이다. 원치 않는 이동을 반복하고, 안전하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공간을 떠돌면서 소진된다.

청년, 난민 되다. 미스핏츠 지음

대안 주택이다 청년 주택 보금자리다 여러가지 방안들이 나오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힘을 쓰고 있는 가는 여전히 미지수다. 최근에는 쉐어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공유 거주지를 대책으로 내놓고 있다. 쉐어하우스는 다수가 한 집에서 살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인 침실은 각자 따로 사용하지만, 거실ㆍ화장실ㆍ욕실 등은 공유하는 생활방식이다. 한 집에 하숙의 형태로 모여 살던 것은 예전부터 존재 해 왔지만, 1인 가구가 늘면서 좀 더 체계화된 모습으로 발전 하고 있는 양상이다.


어떤 형태가 되던지 청년들 역시 좀 더 자신의 주거에 대해 깊이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아니 적어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취업 문제가 먼저 인지 주거 문제가 먼저 인지 모를 정도로 둘 다 문제이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모습 그대로 살다가는 기득권자들에 의해 누군가는 늘 벼랑끝으로 내몰리기만 할 뿐이다. 주어진 삶을 살 것인지, 삶을 만들어 나갈 것인 지는 여전히 우리의 선택이니까.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미스핏츠 「청년, 난민 되다」, 구도 게이, 나시다 료스케「무업 사회」

다음 편: 먹고 살기도 바쁜데 정치는 무슨


소통해요.

페이스북 페이지 바로가기 <<< 클릭
인스타그램 +팔로우 @loveseaclementine

구독하시면 당신만을 위한 즐거움이 찾아가요.



https://brunch.co.kr/@clementine/167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