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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Oct 23. 2017

56. 벌

#바다를사랑한클레멘타인

사람은 언제 무너질까.

나와 비슷한 당신이 나보다 앞서있을 때, 그리고 그걸 알아차렸을 때 나는 외로웠다. 차가운 겨울을 온몸으로 버티는 마른 고목처럼 나는 홀로였다.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세상에서 이별하는 일은 사랑하는 일보다 어려워졌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더 이상 멀어질 수도 없는 공간에 갇혀 헤어진 듯 헤어지지 않은 듯 살아낸다는 건 얼마나 지독한 벌인가.


자주 가던 BAR에 앉으면 눈치 없는 바텐더가 오늘은 왜 혼자냐고 물을 때 그냥 웃을 수밖에 없던 일도, 당신에게 어울릴 것 같아 한 동안 눈여겨보고 있던 감색 스웨터도, 두고두고 먹을 거라고 마트에서 잔뜩 들고 와 처지 곤란해진 독한 소주도 감당하기 어려운 벌이었다.

그런 하루 속에서 매일을 발가벗겨진 기분으로 일상과 마주한다. 마주하는 동안 그들은 내 표정을 살피고 나는 그들의 질문을 삼킨다. 아무리 변명해도 자명한 현실인 것을.


멀리서 당신과 비슷한 사람이 나 아닌 누군가와 걸어간다. 이 시간에 이런 우연으로 이런 식으로 마주치고 싶지 않지만 당신을 사랑한 죄로 나는 벌을 받는다. 받기만 한 일이 많아서 기대어 울기만 하던 날이 많아서 주저앉은 마음이 벌을 받는다. 


당신은 앞서 걷고 있고, 나는 여전히 감당해야 할 몫들을 처리하고 있다.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는 선을 양 손에 붙잡고 허망하게 서 있다. 까만 밤보다 더 새까만 맘이 바스러져 있다. 아무리 손을 오므려 뭉쳐보아도 어떤 모양도 되지 못한다. 


당신이 멀리 앞서 가고 있다. 나보다 훨씬 따뜻한 사람과 함께.

그렇게 눈에 훤히 보이는 데도 현실을 따라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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