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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Jun 01. 2016

(1분소설) 첫 눈

At first sight

                                                                                                                                                                                                                                                                                                                                                            

처음엔 그냥 그저 가볍게 술이나 한잔 할 요량으로 나간 자리였어.


나는 그래, 사실 그런 마음으로 나간 거야. 지나간 사랑도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 늘 작은 세포처럼 살아있다가 이따금 감기처럼 심한 열병을 앓게 했거든. 그래서 잊으려고 해도 환절기가 되면 어김없이 오랜 시간 끙끙 거리는 기분에 사로잡혀야 했어.


그런 나는, 완치 안 되는 병이려니, 겪고 또 겪어 언젠가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었어.

그래.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주기에 난 여전히 멈춘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어. 널 만나기 전에는 말이야.



난 익숙한 술집에 들어섰고 , 익숙한 내 친구들 얼굴 사이에서 낯. 선. 너의 얼굴이 보였지.

그런데 왜일까. 나는 친구들과 손을 높이 들어 인사하면서도 눈은 널 쫓고 있었어.

뭐랄까. 이유는 모르겠어.

이런 게 그냥 첫눈에 반한다는 건가?


사랑의 정확한 정의를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여전히 모르고 있으니, 나는 그 나의 감정을 말로 설명하긴 어려워.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널 보고 있었어. 그건 확실해.

자꾸만 숨이 가빠 심장이 뛰고 두근 거리는 데, 나는 계단을 빠르게 올라와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재빨리 고개를 돌려 직원을 불러 맥주를 시켰어.



친구들은 왜 이렇게 늦었냐고, 늦었으니까 빨리 먹고 자기들 만큼 취하라고 나를 닦달해했지. 나는  웃으며 알았다고, 알았다고 그만 보채라고 했어. 우리의 호들갑에도, 너는 그냥 물끄러미 날 바라보기만 하더라. 이름을 묻지도 , 왜 늦었는지도, 내가 누군지도, 전혀 궁금하지 않은 것처럼. 그런 너의 건조하지만 따뜻한 눈빛이 나는 자꾸만 신경 쓰여 괜히 더 큰 목소리로 친구와 이야기했어. 모르겠다. 그냥 니 시선 받는 게..


좋았나 봐.


그러다 친구는 널 소개했지.
너는 스스로 니 이름을 말하지도 않았고, 친구가 널 소개한 후에도 아무 말도 안 하고 술만 들이켰어. 나는 안녕. 하고 말을 건네 봤지만 넌 그저, 그래.라고만 했지.


 나는 기분이 상했어. 왠지 무시당하는 기분도 들고, 그래서 일부러 네가 그렇게 짧게 대답해도 기분 나쁘지 않은 척 나도 친구와 이야기 나눴지. 나도 너에게 전혀 관심 없다. 됐다. 이런 걸 보여주고 싶었나 봐. 사실은 전혀 아닌데.

술이 나오고 친구들은 나에게 늦었으니까 폭탄주로 세잔은 먹어야 한대. 나는 그런 게 어디 있냐고 우겨보아도 이미 내 잔은 폭탄주로 가득 채워졌지.

짠.

싱그러운 잔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나는 일부러 너와는 잔을 부딪히지 않았어. 너는 모르겠지.
그 전에 너의 퉁명함이 기분 나빠서.

넌 말이 정말 없더라. 연신 뭐가 혼자 그렇게도 진지한지 술만 들이키더라. 그러다 가끔 친구랑 내가 수다를 떨면 , 아주 가끔, 아주... 가끔 날 쳐다보며 피식.
하고 웃더라.

사람 미칠 것 같게...

그냥 나는 니 모든 시선이 느껴지더라. 그래서 무얼 해도 과장되고 무얼 해도 어색했던 시간이었어. 넌 아마 몰랐겠지만.

그래, 넌 늘 모르더라. 내가 널 좋아한다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순간에도 넌 모르겠지. 바보같이.
아님 알면서 그러는 걸까. 그래서 내가 너라는 사람에게 빠져들고 또 물들어가는 걸 보고 싶은 걸까. 왜? 넌 나쁜 사람이라? 아니야. 내가 아는 넌 그런 사람은 아니야. 그러니까 그냥 바보처럼 모르는 거야. 내 이런 마음을.


이 편지를 네가 받는 다면 무슨 표정일까
무슨 말을 할까
우린 다시 만날 수 있는 걸까
너에게 답장을 받을 수 있는 걸까

나는 하루에도 수 백번 , 아니 수 천 번 널 생각하다 지우다 그리다 체념해. 잠이 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고 노래를 듣는 시간이 길어졌어. 전화소리만 울려도 깜짝깜짝 놀라고, 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가. 그리고 네가 잠시 아주 잠시 휴식시간에라도 날 생각... 하다 내게 먼저 연락하지 않을까. 하는 여러 가지 공상들.

그래 공상들.

만약에 말이야.
우리.

그날 말이야. 내가 아주 많이 많이 취한 날.

친구들이 자꾸만 술을 권해 , 나는 탁자가 흔들리고 땅이 솟아 걷기가 힘들어졌지. 너는 아무 말도 없다가 내가 술잔을 들자 , 날 쳐다보던 그 눈빛. 그리고 그 커다란 손으로 내 술잔을 잡았던 순간. 나는 너무 놀라 널 쳐다봤고, 넌 그 진지하지만 한결 부드러워진 눈으로 날 바라봤지.


나는 너무 긴장해서 술잔을 놓쳤고, 술은 내 바지에 다 쏟아졌어. 친구들은 이미 다 꽐라가 된 상태라 서로가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너만은 그렇지 않았어. 나는 허둥지둥 바지를 닦아댔고 넌 말없이 일어나 주방으로 가 수건을 빌려왔어.

내게 수건을 건네면서 넌 내 머릴 쓰다듬었지.
나는 놀란 고양이처럼 몸을 움츠렸어. 술이 깨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은데 내가 꿈을 꾼 건가 고개를 들어 너를 봤는데, 꿈이 아니더라. 넌 여전히 따뜻하게 그리고 깊게 날 쳐다보고 있더라.

아주 깊은, 빠져들고 싶은,
너의 눈.


그리고 그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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