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멘타인 1분소설
누가 그래? 점쟁이가?
그게 니 팔자래?
참나. 야. 내 말 잘 들어.
팔자가 정해져 있다고 하는 인간들은 자기 인생 책임지기 싫어서 도망갈 구멍 만드는 거야.
생각해봐.
어차피 다 정해져 있었던 마당에 내가 실패하거나 사기당하는 게 그럼 운명이겠네? 사기꾼도 나쁜 놈이 아니고 나도 멍청한 게 아니라 그냥 어차피 다 그렇게 태어나버려서 그렇고 그렇게 된 결과다. 이 말하고 싶은 거 아니야?
진짜 자기변명 뿌라쓰 자기애 쩐다.
내가 이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 데...
그러니까, 유리는 다섯 살에 죽었어.
유리는, 내 동생 유리는 남자였어.
강유리.
유리. 이름 너무 이쁘지 않아? 그렇게 반짝거리고 깨지기 쉬운 이쁜 이름을 하고는,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이름을 하고는, 그렇게 죽었다.
나중에 안 건데, 그 이름, 유리라는 그 이름, 누가 아빠한테 좋다고 하는 데 가서 돈 주고 지은 거라고 하더라. 웃기지. 진짜. 내가 거기 찾아가서 불 지르려고 했다. 어. 그냥 진짜 빡치더라고. 돈도 없는 집구석에서 돈 백만 원이나 주고 만든 이름이래. 참나. 진짜 우리 아빠는 노답이야.
그때 그 사기꾼 새끼가 그랬데.
사내 애가 명줄이 약해서 중성적인 이름을 지어야 한다고.
그래서 누가 들어도 여자 아이 같은 이름으로 지어야 한다고 유리-라고 지었데.
유리. 강유리.
그럼 씨댕, 복도 많이 받고, 세상이 알아주는 큰 사람이 될 거라고.
웃기지 않냐?
겨우 5년 살다 갈 애 한테.
뭐, 그래. 5년이던 100년이던 산 기간보다 사랑받은 기간이 중요하지. 유리라는 이름으로 사는 동안 나름 복 받았다고 여기며 살았을지도 모르지. 그 어린 유리가 생각이 있었다면 말이야. 거기에다 주변 모두가 알아주고 기억하는 이름이긴 해. 다시는 입에 올리면 안 되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말이야.
유리는 큰 사람 따위는 되지 못하고 작은 아이인 채로 그렇게 죽었어.
너 그러니까 운명이니, 미신이니, 부적이니 그런 거 너무 믿지 마라.
뭐?
참나 이 새끼 노답이네.
명줄이 약하니 뭐니 하는 건, 걍 이름 팔아먹을라고 한 소리라니까.
하. 이런 얘길 다 하다니. 나도 참. 취했나 보다.
그러니까, 우리 엄마랑 아빠는,
...
...
... 아마 그게 아직도 내 탓이라고 생각할 걸?
야, 차라리 너처럼 운명론자면 존나 편하겠다.
걍 때 돼서 갔구나 하면 되잖아.
아, 그래. 사실은 내 탓이지. 나 때문에 그렇게 됐어.
나도 존나게 내 탓이라고 생각해. 형이라는 새끼가 그렇게 동생이 죽는 동안 뭐 하고 있었냐고 하면 솔직히 할 말 없다 나도.
내 동생, 유리는,
그러니까 유리는 나랑 다섯 살 차이가 났지. 아마 지금까지 살아있으면 스무 살, 딱 스무 살 됐겠다. 공부 같은 거, 잘 했을까? 살아있으면 말이야.
나는 공부 같은 거 조또 관심 없어서 그냥 아직도 이러고 있잖냐. 얌마.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노는 게 제일 좋아. 어.
그러니까... 내가 열 살, 유리가 다섯 살 때였어.
우리 집은 그때나 지금이나 형편이 고만 고만했지.
아빠는 인테리어 회사를 차렸다가 내가 세 살 때 사기당했대. 사기당했다고 하지만 내가 봤을 때 우리 아부지 사업할 줄 몰라. 그냥 기술 조금 있는 걸로 자기 이름 걸고 돈 빌려서 간판 세운 거지.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냐. 모르니까 속여 먹으려는 인간들이 들러붙지,
아무튼 뭐 그 길로 뚜렷한 직업 없이 선배나 아는 업체 사장들 따라다니면서 목수 작업해주고 있었어. 새벽 5시에 나가면 며칠 동안 안 들어오는 날도 많았지. 지방 출장도 많았고.
엄마는 들쑥날쑥한 살림을 메꾸려고 마트, 식당, 전단지, 대리 운전 뭐 그때그때 짧은 시간에 손에 잡히는 대로 일했어. 그래서 내가 유리가 세 살이 되던 때부터 유리의 실제적인 보호자가 돼야 했지. 8살 난 내가 3살 된 유리를 돌보는 거야. 어. 그랬다.
뭐 그렇게 어렵거나 긴 시간은 아니었어. 아침에 밥 먹고 조금 놀다 보면 유리는 언제나 낮잠을 잤으니까.
엄마는 점심시간 이후나 우리가 저녁 먹고 잠자리에 들면 일하러 나갔어.
가끔 자다가 깨면 불 꺼진 집에 유리 숨소리만 들려오는 게 너무 무서웠어. 잠든 유리 눈꺼풀을 한참 보고 있다가 잠들곤 했지. 집안에 온기라고는 그 작은 생명체 밖에 없었어.
그래도, 나는,
어려도 유리를 돌보고 지키는 건 내 몫이라고 어렴풋하게 책임감 같은 게 있었던 거 같아.
지금 생각하면 웃긴다.
애 키우는 게 왜 애가 가져야 할 책임감이냐.
왜 내 몫이냐고.
안 그냐?
유리가 죽은 게, 그게 내 책임이야?
내가 낳았냐.
내가 가난했어?
어. 알았어. 알았어. 천천히 마실게.
그냥... 생각하니까 열 받아서 그래.
그날, 그러니까 초등학교 3학년이 되고 나니까,
우리 반은 자전거 타고 같이 노는 게 뭐랄까. 약간 유행이랄까.
반에 남자 애새끼들끼리 자전거 타고 우르르 몰려다니고는 했어.
유리도 다섯 살이 되니까 말도 곧잘 하고, 먹고 뛰고 노는 것도 스스로 잘 했지. 진짜 쑥쑥 자라는 게 어린 내 눈에도 보이더라고.
대신 유리는 엄마나 아빠가 아니라 내가 보호자라고 본능적으로 느낀 걸까.
유리는 뭘 하던 내 껌딱지처럼 따라다녔어.
내가 하는 건 뭐든 따라 하고, 내가 먹는 거, 입는 거, 작은 행동까지 나를 따라 하곤 했지.
그리고 그쯤 되니까 떼도 많이 쓰고, 울기도 많이 울었어.
다 자기 꺼라고 우기는 게 고집이 대단했어.
특히, 내 자전거에 집착을 많이 보였는 데, 유리가 타기에 내 자전거는 너무 컸지.
유리는 자기 자전거가 있어도 언제나 내가 자전거에 가까이가기만해도 갑자기 자기가 타겠다고 울고 불고 난리였어.
엄마랑 나는 그런 유리를 떼어 놓느라 나는 친구들과 약속에 늦는 일이 많았지. 엄마는 동생 좀 데리고 나가라는 말도 많이 했어. 아,왜 애보는 게 내 임무냐고.
아마 그즈음이었나.
나는 점점 유리가 귀찮아지더라.
10살이잖아.
10살.
나도 10살밖에 안됐다고.
자전거는 휴일 빼고 평일에는 다들 학원 가기 전에 잠깐 타는 거라 난 늘 조바심이 났지.
그냥 그 시절에 친구들하고 같이 뭐 하는 게 엄청 중요하잖아.
학원 가기 1시간 전에 애들이랑 자전거를 타고 PC방을 가서 30분 동안 게임을 하고는 했어.
나는 학원을 안 가니까.
자전거 타는 그 시간이 유일하게 애들하고 어울리는 시간이었거든.
그날도... 그래서 그랬던 거야.
나는 급한데, 나는 시간이 없는 데, 그래서 그래서...
휴, 한 잔 따라봐.
오냐, 형아 조절하면서 먹고 있다.
걱정하지 마라.
그러니까. 쓰읍.
그날도 경제가 우리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지.
알지? 내 친구 경제. 왜 지난번에 휴가 나왔을 때 같이 봤잖아. 목소리 존나 크고 눈이 이따마한, 그래그래, 개구리 같이 생긴, 어. 그래그 때 코인 노래방에서 지랄하던 새끼. 그래. 걔. 경제. 걔가 다 봤지.
아무튼,
그때 경제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나는 최대한 빨리 자전거를 끌고 나가려는 데, 유리가 자전거에 매달리는 거야.
"형아. 나도 자전거 나도 자전거."
"안돼. 비켜."
"왜 안돼?"
"안되니까 안되지. 빨리 비켜어!"
"아 싫어어어!"
"비키라니까!"
"아 혀어엉!"
"이씨, 이게 진짜!"
나는 유리 어깨를 잡아끌었어.
유리는 뒤로 넘어졌지만 이제 다 컸다고 울지도 않고 오히려 식식 거리면서 다시 매달렸지.
나는 다시 유리를 떼어놓고 재빨리 자전거를 끌고 현관을 나갔어.
등 뒤에서 혀엉-하면서 유리가 따라 나왔어.
나는 더 빨리 뛰었고 경제한테도 뛰라고 소리 질렀지. 그때 그러는 게 아니었는 데. 진짜 그러면 안되는 건데 그랬어.
유리가 혼자 집에 돌아갈 수도 없었을 텐데.
유리는 집을 나왔으니 날 쫒을 수밖에 없었겠지.
돌아가도 아무도 없잖아.
그때는 그런 생각은 없었어. 그냥 빨리 자전거 타고 PC방 가야겠다. 유리가 뒤따라 나온 적은 처음이라. 모르겠어. 그냥 빨리 떨쳐내야겠다. 그런 거 같아. 아니 사실은 아무 생각도 없었어. 그냥 PC방 가야 되니까 PC방 가는 거였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날, 유리는 내 등 뒤에서 죽었어.
유리는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차를 미처 보지 못하고, 아니, 아니, 운전자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유리를 미처 보지 못 했다 하는 게 맞겠지.
그렇게 허무하게 내 뒤에서 죽었다.
...끄읕...
어, 이게 다야.
근데 죽는 거 진짜 순식간이더라.
죽음이라는 게 너무 이상하잖아.
내일 어쩌나 늙어서 아프면 어쩌나 이런 걱정도 하기 전에 오늘 갑자기 죽을 수도 있는 거잖아, 유리처럼.
그때, 순간이지만,
본능적으로 잘 못되었다는 걸 뒤돌아보지 않고도 느껴졌지.
찢어질 듯한 차바퀴 소리가 끼이이익- 하면서
둔탁한 퍽! 소리가 나더라고.
유리는,
그때 뒤를 돌아보니 내 동생 유리는,
하늘을 날고 있더라.
그게 슬로모션처럼... 쉬이 이익...
지금도 생생해.
유리가 눈이 진짜 예뻤거든.
그 멀리서도 눈이 커다랗게 보이더라.
그리고 막, 뭐랄까. 애들 특유의 순진한 표정 있잖아.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
그리고 놀랐는지 벌어진 입 사이로 짧은 비명도 나오지 않더라.
그리고 바로 또 퍽-소리가 나게 바닥에 떨어졌어.
그냥 영화 보는 느낌 같은 거...
전혀 현실감 없는... 그 순간에는 그랬어.
근데... 그때 말이야... 그러니까...
흐흑...
그러니까... 유리가... 내 동생 유리가...
흐흐흑...그 짧은 순간에 ...혀엉...그러니까 형이라고...
그 말을 미처 못 하고 죽은 걸까.
...
...
그 말을 하려고 했었을까...
언제든 누군가와 마지막이 될 수 있어.
영원히 말이야.
휴.
어. 괜찮아 괜찮아 다 지난 얘긴데 뭐.
술 좀 됐나 보다. 고만 마실란다.
캬하하. 야야,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
너 웃지 마라. 나 그래서, 쪽팔리긴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중학교 올라갈 때까지 밤에 자다가 오줌 쌌다.
엄마가 그러는 데 약간 몽유병 증세도 있고 헛소리도 하고 그랬나 봐. 그러다 한약 지어먹고 좀 괜찮아진 것 같아.
그때. 밤마다 유리가 꿈에 나오더라.
유리가 좋아하던 파란 뽀로로 반팔 티셔츠에 과자랑 아이스크림이 잔뜩 묻은 바지를 입고... 어딘지 모르겠어. 근데 매번 같은 장면이야.
붕 떠오른 유리가 천천히 낙하하는 꿈.
입을 크게 벌린 채
혓바닥만 조금씩
움직이는데
나는 유리야 안돼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아무 목소리도 나오지 않아.
지금은 악몽 같은 거나 가위에 안 눌리는 데 머리가 기억하니 더 큰 문제다.
그래. 그때 내가 전학 간 거야.
여름 방학 직전에 전학 갔잖아.
너 그때 처음 봤을 때 존나 시크한 척했잖아. 그러다 매점에서 포도 봉봉 하나 사주니까 좋아가지고, 으휴 뇌물 좋아하는 한심한 새끼.
어?
그럼 잘 지내시지.
나도 군대 갔다 오고 자주 집에 못 가지.
가게도 알바 없이 둘이 하니 워낙 바쁘니까.
가게 시작한 게 신의 한 수였지. 매달릴 게 있잖아.
아니면 우리 가족 다 어떻게 됐을까.
못 견디고 다들 자빠졌겠지.
운전자는 어린이 보호구역에 일방통행도 거슬러 올랐나 봐. 아무튼 유리 때문에 큰 보상을 받았다고.
큰고모가 그러더라. 그걸로 가게 차린 거야.
나는 그때만 해도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지.
그날 이후로 아주 오랫동안,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렸지. 공부도 엉망이고 주눅 들어 산 것 같아.
친척들의 눈초리 그리고 사람들의 동정,
엄마의 원망, 아빠의 아무 일 없는 척 무관심을 견디는 건 너무 잔인한 벌이더라.
따지고 보면 이건 그냥 유리의 타고난 팔자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지. 아니 많지.
원래는 그쯤이면 유리가 낮잠 자고 있는 데, 그래서 몰래 자전거 타러 나갔다가 금방 돌아오고는 했거든. 돌아와도 유리는 자고 있어서 별 문제가 없었는 데 그날따라 그러니까 참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하면 꼭 평소랑 다른 일들이 있지. 그게 그런 일이 일어나려고 했는 건가.
나는 그 뒤로도 그 일에 대해 정말 많이 생각했지.
그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말이야.
그건 그날 유리를 모른 척한 나일까?
사업이 망해 가족을 궁지로 몰아넣은 아빠일까?
아빠를 등쳐먹은 놈일까?
어린아이들을 두고 생계에 뛰어든 엄마일까?
출산율만 걱정하고 아이들을 지킬 변변한 법도 없는 국가일까?
낮잠을 안 잔 유리일까?
운전을 지랄같이 하던 운전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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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단순히 타고난 운명이었을까.
하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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