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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Aug 29. 2018

다행

2018.08.16에  쓰고 08.28에 고쳐 쓰다.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변하는 건 사람이다. 마음이다.

사람이 변하므로 세상이 변했다.

마음이 변하므로 사랑도 변했다.



우리라는 세상에 등 돌린 수많은 변절자들을 생각하며 나는 기도했다.

그래도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 같은 건 잊고 진짜 사랑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길을 가는 동안 눈 앞에 놓인 삶이 얼어붙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다 잘될 거라고.


진심일까? 솔직히 모르겠다.

착하지도 않은 내가 타인의 안녕을 빌어주는 이중적인 마음가짐이라... 알고 보면 나를 위한 거겠지.

그냥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으니까.


아주 오랫동안 함께 있어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있었다. 볼 꺼진 빈방은 호는 없이 흡만 존재하는 검은 숲처럼 외로웠다.


한참 너무 힘들 때는 듣는 대상도 없이 기도하다 잠들기도 했다.  종교도 없는 주제에 세상 모든 신에게 빌고 또 빌며,

모든 문장 앞에 제발이라는 단어를 열 번쯤은 붙이고 나서야 그래야 조금이라도 숨을 뱉을 수 있었다.


제발 제 짐작이 틀리게 해주세요

제발 모든 일이 잘 풀리게 해주세요

제발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제발 제발

제발 전화가 오게 해주세요

제발 무엇보다 나를 선택한다고 해주세요

제발 사랑에 지치지않게 해주세요


때때로 비신자의 사이비같은 기도는 잔인한 현실로 응답이 왔다. 


어떤 것들은 도무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하고 어떤 것들은 너무 잘 알아서 괴롭다. 한 철학자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이해한다면 진짜 사랑한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진짜 사랑을 한 경험은 있구나. 모든 게 거짓이라도 그런 경험 한 번쯤은 있었으니 이제 됐다.


매일 밤 '안 다와 모른다.'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는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진다.  내 곁을 잠시 스쳐 간 사람들은 이제 내 입에서 웃음과 함께 나온다.


하나도 슬프지 않고, 불러도 서럽지 않은 이름들.

그저, 그날의, 그 사람이, 타인으로 튀어나온다


시간은 그런 존재다.

변화 앞에서 모든 걸 희화화한다. 그렇게라도 견디려고 한다.


다행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왠지 최악의 불행은 피한 것 같은 말이다.

일이 다 잘 되어 기분이 좋아지기 직전의 말 같아서 좋다.


<그나마> 내 삶에 다행인 일들:


꽉 막힌 옥탑 틈으로 숲이 보인다는 것. 몇 걸음 놓으면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 잠결에 깨어나면 발치에 퉁퉁한 고양이가 있다는 것. 가지 않고 보지 않아도 너른 바다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 매일 기차표를 사는 꿈을 꾸며 일상을 버티는 것. 가을이 빗소리로 친절하게 밤을 덮는 것. 아쉬운 오늘이 지나도 새로운 내일이 기다려주는 것.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보다 얻게 될 사람의 마음이 훨씬 많다는 것.


그래. 참으로 다행이다. 다행인 삶을 건너간다.


@클레멘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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