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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Jun 05. 2016

인소 : 봄 장마

우린 가끔 예고 없이 비에 맞는다.


그 사람을 처음 만난 건 어느 모임에서 입니다.


작은 자선 파티가 열렸고, 나는 초대인으로 그 사람은 자원봉사로 왔지요.

처음부터 그 사람이 눈에 들어왔던 건 아닙니다. 그저 뭔가 사연이 있을 듯한 인상을 받았죠.


사랑이요? 감정이요?


제 나이에 그런 이야기 하면 노망 났다고 그래요. 그리고 범죄자 취급받아요. 그것도 나이 차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들의 마녀사냥을 당하겠죠.


그래요. 그래서 아무한테도 누구한테도 말 한적 없어요. 심지어 늘 제 자신에게도 이건 오해라고 이야기했죠.


오해예요. 네. 오해였어요.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 건.


그 사람은 미소가 참 예뻤어요. 그리고 친절했죠. 물론 거기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미 마음의 문을 열고 오기에 나 같은 늙은이에게도 친절해요. 내 시답지 않은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 주죠.


그냥... 가끔은 동정받는 기분이고... 가끔은 따뜻한 기분이에요.


그 사람들의 눈을 마주 할 때면... 아주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나도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다는 기분...

뭐 그런 기분이었어요.


나 아직 살아있구나. 늙었다는 것 만으로 무시당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구나.


그래요. 어느 순간부터인가 저는 무시당하며 살아왔어요.


사람들은 대 놓고 절 무시하지는 못 했어요. 나름 예의라는 게 아직 살아있는 사회니까요.

하지만 자식들 조차 나와 상의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집에 들어와도 나에겐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어릴 때 미주알고주알 귀찮도록 말이 많던 녀석들이 요즘엔 한결같은 이야기뿐이에요.


"내가 알아서 할게. 몰라도 돼."


맞아요. 사실 얘기해도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에 함께 해보려고 해도 나는 처음 듣는 단어들이나 헷갈리는 상황들이 많았어요. 나이가 드니 이해력도 떨어지나 봐요. 그래서 조금... 서글펐어요.


집안에 모든 어려움은 내가 나서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았는데 말이죠. 오히려 내가 나서는 일들은 문제가 커지곤 했어요. 녀석들은 늘 날 나무랐죠.


"그러게 왜 자꾸 나서. 가만히 좀 계세요."


나는 자식들에게 피해 주는 부모가 되는 것 같아 나 자신이 한심해 보였어요. 우리 엄마, 우리 아버지 그렇게 사고 칠 때 내가 쓴소리 했던 것들이... 이제야 가슴에 사무쳤어요. 어머니... 이런 기분이 셨었나요...


그래서 이젠 아무 말도 안 해요. 그냥... 밥은 먹었냐... 일은 잘 되냐...라는 정도만...


이젠... 나 없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해결될 일은 알아서 해결돼요. 난... 없어도 상관없는 존재가 되었죠.


사회를 나가도 마찬가지였어요. 앞에서는 네네네 하며 들어주는 척하면서도 노인네들이 말이 많다고 뒤에서 수군거리었죠. 나이 먹고 정신 못 차린다고 까지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사람은... 달랐어요.


가끔 자신의 고민도 곧 잘 나에게 물어왔어요. 집안일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눈가가 촉촉해지는 날도 있었어요. 그래서 나는 왠지 마음이 더 짠해지고 더 신경이 쓰였어요. 그냥... 잘 되면 좋겠다. 우는 일 없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들이 하나하나 쌓여가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꽤 늦은 시간이었는데... 술 한잔 먹고 싶다고 하더군요. 나는 이런 적이 처음이라 조금 고민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슨 일이길래 이 시간에 그럴까 하는 걱정도 됐어요.


그 날은 ,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고 있던 밤이었어요.


어느 새 바람은 따스해지고 색색깔의 꽃 잎들이 하나 둘 비에 젖어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죠.

봄꽃 비 냄새... 가는 동안... 뭔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처음 가보는 젊은 사람들의 가게를 멋쩍게 들어갔어요. 해맑은 모습으로 손을 흔드는 그 사람을 보니 안심이 되었어요.  나는 우산을 접어 탁탁! 털어내고는 자리에 앉았어요.


"왔어요? 밖에 비 많이 오죠?"


"봄장마인가... 무슨 일 있어?"


"미안해요. 늦은 시간에. 많이 놀라셨죠..."


나의 물음에 그 사람은 금세 슬픈 표정을 지었어요. 벌써 소주가 반 병정도 비워져 있었고 자신의 술잔을 들이킨 후 나에게 잔을 내밀었어요.


"일단 한잔해요."


"어, 그래. 근데 진짜 무슨 일 있어? 혼자 술도 다 먹고."


"에이, 그냥 그런 날 있잖아요. 울적한 데 , 술은 한잔 하고 싶은데... 혼자 먹기는 싫고.. 그런 날... 오늘 같은 날."


"그게 다야? "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면 자신의 잔을 들며 나에게 건배하자는 시늉을 했어요.


"짠할까요?"


나는 얼떨결에 잔을 부딪혔어요. 술잔이 흔들리며 술이 밖으로 흘러넘쳤어요. 그리고.. 알 수 없는 내 감정들도 흘러넘치기 시작했어요.


"술 좋아하니? 술도 못 먹게 생겨가지고."


"왜요? 저 술 엄청 세요. 아마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제가 제일 쎌 껄요? 그리고 아직 창창하잖아요!"


그 사람은 작은 안주 하나를 집어 들어 내 앞에 내밀었어요. 나는 잠시 동안 멀뚱히 그 안주를 쳐다봤어요.


"뭐해요. 팔 떨어지겠다. 아 하세요."


"응? 어... 어.. 아......."


내 입속에 작은 소시지 조각 하나가 들어왔어요. 처음엔 새콤했고 끝엔 달콤했어요. 내 평생 이렇게 맛있는 쏘세지는 처음이었죠.


"어때요? 맛있죠? 이 집 쏘야는 진짜 세계 최고라니까요! 나 여기 왕 단골이에요. 그동안 여기 갖다 바친 돈을 생각하면... 어우.."


그 사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또 한잔 들이켰어요. 나도 안주를 씹으니 술이 당겨 소주를 한잔 또 마셨죠.


"근데 애인은 어쩌고 혼자 이렇게 술을 마시나."


"애인이요?? 무슨 애인... 에이 저 그런 거 없어요. 모쏠이에요. 모쏠"


"뭐? 뭐썰??? 그게 뭐야."


"하하하.. 모쏠이라고.. 모태솔로! 태어날 때부터 애인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그래? 재밌네. 별 말이 다 있구나. 근데 인기 많게 생겼는데... 의외네."


"그쵸? 진짜... 다 들 눈이 삐었나 봐. 나 같은 사람을 그냥 두다니. 자! 한잔 해요! 그리고... 불쌍하면 애인 해주시던가" 


나는 깜짝 놀랐어요. 하지만 그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듯 술을 따르곤 자신의 술잔을 내밀었어요.


"에이..! 딱! 무슨 나 같은 늙은이가 애인이여. 내가 한 20년만 젊었어도 바로 애인 신청 예약했지. 다음에 내가 괜찮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줄게"


"치... 치사하게"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했고 나는 그 작은 이야기에도 마음이 흔들렸어요. 그리고 곧바로 대답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답답했어요.


그 사람은 내가 준 술을 한잔에 쭉 들이켰어요. 그리곤 작은 소시지를 집어 먹곤 엄지 손가락까지 치켜들며 맛있어했어요. 아...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그냥...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뭔가... 이 세상에 이 작은 가게 안에 우리 둘만 있는 기분이었어요. 아주 시끄러운 술집이었는데, 그냥 그 사람의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어요. 웃는 모습, 깊은 눈, 작은 몸짓들 하나가 좋았어요. 그냥 다. 다 좋았어요.


우리는 그렇게 시시한 이야기들로 채워갔어요. 그리고 시시한 소주병을 비워갔어요.  


어느덧 술병은 쌓여만 가고 우리의 이야기도 쌓여갔죠. 가게 문을 닫는다는 주인의 말이 없었으면 아마 그 집에서 며칠을 세어도 좋았을 거예요.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그 사람을 부축했어요. 이 집에서 자기가 최고라더니... 그 사람은 이미 많이 취해있었어요.


부축하며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어요. 술을 너무 마신 통에 갈색빛의 눈동자는 흐릿해졌고 눈가는 촉촉했죠. 얼굴을 쓰다듬고 싶었지만 노망난 노인네라고 욕할까 봐, 다음부터 날 만나주지 않을까 봐 그냥 꾹 참았어요. 그렇게 어색하게 그 사람을 부축하며 가게를 빠져나왔죠.


봄비가 아직 내리고 있었어요. 나는 손을 앞으로 펼쳐 떨어지는 비를 손으로 받으며 하늘을 쳐다보았죠.  어디선가 꽃향기가 날 미치게 했어요. 나는 한 손으로 우산을 펼치느라 애를 먹었어요. 우리 두 사람은 봄비에 흠뻑 젖어들었죠.


그 사람은 추운지 몸을 떨었어요. 나는 감기가 걸릴까 걱정이 되었어요. 그리고 아까 미리 집에 보내지 않은 게 이제와 후회가 되었어요. 혹시라도 아프면 어떡해요? 나는 걱정이 되어 빨리 집에 데려다주려고 했어요.  


"정신 차려봐. 집이 어디야? 집에 가자. 집에 데려다줄게."


"으으음..."


그 사람은 몸도 가누지 못 한 채 내게 기대 왔어요. 술을 마신 탓인지 몸이 더 무거운 거 같았어요. 나도 이 나이에 젊은 사람을 감당하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이대로 이렇게 계속 비를 맞고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요.


"집 어디야? 응? 응? 집에 가자~"


"싫어."


나는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어요. 내 귀를 의심했죠. 설마.


"응? 뭐가 싫어. 착하다. 이제 가자. 감기 걸리겠다."


".... 싫어. 집에 갈 거면 차라리 여기서 감기 걸릴 거야."


나는... 난처했어요.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어떻게 해야 해요? 나 욕심내도 돼요? 나 어떻게 해요? 이건... 안 되는 거잖아요. 그쵸? 그냥 취기에 말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다음날 서로가 죽도록 자신을 책망하는 거잖아요.


근데... 근데 말이에요.


그래도 말이죠.


다 아는데. 나도 아는데요.


.

.

.

.

.

.

나도 싫어요. 집에... 가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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