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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Jun 04. 2016

인소: 5일장

악은 우연이 만든다.

5일장               


내가 4살 때였다.

매월 5일이면 아버지를 따라 장에 나섰다. 숫자를 가르쳐 주지 않아 다른 숫자는 몰라도 내 머릿속에 5라는 숫자는 매월 달력에서 찾을 수 있었고, 나는 커다란 달력을 모조리 넘겨 그 숫자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 놨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장에 가는 날이면 아버지는 어김없이, 내 손에 커다란 눈깔사탕을 쥐어주셨다. 샴푸 거품처럼 하얗고 노랗게 빨갛게 알록달록한 눈깔사탕. 오물오물 똥구멍처럼 작은 입을 억지로 벌려 눈깔사탕 하나를 입 안 가득 쑤셔 넣으면, 봉긋하게 솟아나 입 속 가득 터질 것 같은 그 달달함이 사무치게도 좋았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일 조그마한 소리로,


 “아버지, 장에 가면 안돼요?”


라는 질문을 하곤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내 질문에 대답을 해 준 적이 없었다. 그저 5일이 되면 기계처럼 날 이끌고 장에 나섰다. 나는 그게 기계적인 행동이든 날 사랑하는 마음이든 그저, 행복했다. 

    

늘 그렇듯이 작은 고사리 같은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손꼽아 기다리던 5일이 더디게도 돌아왔다. 아버지의 커다란 손을 잡고 장에 나서는 날이면 나는 누구보다 행복했다. 그래서 까르륵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디선가 고막이 터지도록 뻥 튀기는 소리, 생선을 들고 나오는 사람, 한약재를 가져온 사람, 코끝을 자극하는 상인들의 활기찬 삶의 냄새, 잘박 잘박 바닥에는 늘 물이 질척거려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은 채로 마른땅을 찾아 이리저리 깨금 발질을 해야 했다. 눈앞에 혼자만의 길을 정하고 요리조리 건너 다니는 재미가 작고 어린 심장을 쿵쾅쿵쾅 방망이질하게 했다.


내게 있어 장날은 환상의 지루한 마른 일상에 쏟아지는 상상의 소나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은, 늘 가던 길이 아닌 새로운 시장 골목에 접어들었다. 아버지는 이제부터 닭을 키워봐야겠다며 내 손을 잡아끌고, 푸드덕푸드덕 요란한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제 막 생명을 움튼 갖가지 어린 동물들이 꼼지락 꼼지락거리며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나랑 닮은 듯해서 나는 보기만 해도 웃음이 쏟아졌다.     


나보다 어린 생명들 중 단연 나는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강아지에게 손을 뻗쳤다. 뭐가 그리도 신나는지 연신 킁킁킁 핥아대며 내 품속으로 뛰어 들어왔다. 어찌나 버둥거리는지, 내 품에 안겨서도 요란법석을 떨었다. 안는 게 어색했던 어린 나는 버둥대는 강아지를 놓쳐버렸고, 순간, 강아지는 깨-앵 깨-앵 고막을 찢는 끔찍한 데시벨의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나는 귀를 찢는 강아지의 처절한 음성에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생명줄의 고통의 찬 소리.       


그리고 이내 닭을 고르던 아버지의 눈빛이 , 흥정을 하던 개장수 아줌마의 눈빛이 그 어느 때 보다 시리게 다가왔다. 아줌마는 상품가치가 떨어졌다며 떠넘기듯이 강아지를 내 품에 쥐어주었다. 아버지는 연신 ‘싯팔, 이제 개새끼까지 거둬 먹여야 하나’하며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셨다.


집으로 가는 내내 아버지는 내 오른손을 거칠게 꽉 잡아당겼다. 나는 아프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여 거칠게 집으로 향하는 아버지에게 눈깔사탕 이야기를 꺼내고도 싶었지만, 품안에서 멋도 모르고 여전히 헥헥, 거리고 있는 강아지 때문에 쉽사리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그냥 내 입속에 누가 눈깔사탕 대신 돌이라도 집어넣은 것처럼 입속이 깔깔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앞만 보고 가다 가끔 날 돌아보는 아버지의 표정이 무서웠다. 뒤통수도 화가 난 듯 무서워서 나는 땅만 보며 걸었다. 왠지 지금 눈깔사탕 이야기를 하면 아버지가 다시는 장에 데려가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내 품안에서 움틀 거리는 강아지만 왼손으로 꼬옥 끌어안으며 돌아왔다.     


이제 절대 절대 떨어트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만이 작은 내 머릿속에 꽉 차 있었다.     


강아지의 눈빛은 애처롭고 귀여웠다.

아마도,

말을 못 하니 내가 보호해 줘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 하찮은 녀석 때문에 나의 유일한 행복이던 눈깔사탕이 멀어진 것만 같아서 한편으로는 강아지가 너무 미웠다.      


집으로 가는 동네 개울 어귀에서는 왼쪽 팔도 너무 아프고 괘씸한 생각도 들어 놓친 척하며 개울물에다 던져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왠지 아까 그 끔찍한 소리를 또 듣는다면 무서운 얼굴을 한 아버지가 크게 화를 내실 것 같아 그만두었다.     


집으로 돌아가니 할머니는 내 품에 있는 강아지를 보며


“뭐여-이거 순종이여? 잡종이여?”


라고 했다. 아버지는


 “몰라, 순종이라는데 개새끼가 개새끼지 뭘”


하면서 들어가셨다.     


그 후로 할머니 품에 들어가 똘망 똘망한 눈으로 날 쳐다보던 녀석은 ‘순종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꽤 긴 이야기지만, 아무래도 가독성을 생각하여 아주 일부분만 올립니다. 쫌 잔인한 이야기에 성적인 부분이 많아? 일반 게시되기엔 무리가 있을 듯 하여 ^^;  아무래도 전체 이용 가능한 글을 써야하는 데, 동심은 어디로 간 것인지. 그냥 넋두리 입니다.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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