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
이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 중 하나는 아마 청소일 것이다.
시작하기도 쉽지 않고 그 일은 끝이라곤 없다. 끝이 없는 일을 평생 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지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사람들은 밥은 어떻게 먹냐고 하겠지만 그거는 재미라도 있지 청소는 내게 영 재미없는 일이고 재미도 없는 데 안 하면 티가 나는 일이고 티가 나는 데 안 하면 불편해지는 일이다. 그래서 억지 춘향이처럼 대충대충 슥슥 쓸어 댄다.
신기한 것은 방 청소를 하다 보면 도대체 언제 떨어졌는지 모를 수 십 개의 머리카락을 발견하게 되는 데 이 많은 것들이 평소에는 어떻게 눈에 안 밟히냐 하는 것이다.
주섬주섬 줍다 보면 돌아서면 또 떨어져 있어, 나는 이내 투덜이가 된다. 정말 머리카락이란 녀석은 지독하게도 떨어진다. 그러다 문득 나 이러다 대머리 되는 거 아니야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하다가 그러면 방 청소가 훨씬 수월해지겠군 하는 생각으로 끝난다.
머리카락은 자라고 떨어지고, 자라고 떨어지고, 돌아서면 떨어지고. 한 달에 겨우 몇 센티 자랄 텐데 이 길이라면 몇 년 째 자라온 녀석일 텐데, 이 긴 것이 한 번에 뚝 떨어지면 본체인 나로서는 굉장한 손해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나는 청소는 싫지만 청소를 싫어하는 만큼 물건이 제자리에 있는 것이 좋다. 그래야 그것을 가능한? 손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건이 있던 자리 그러니까 바닥에는 먼지가 쌓이지 않는다. 큰 물건일 수록 청소 공간이 좁아지겠지. 그곳은 늘 그것이 자리를 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작은 물건들을 가지는 것은 좀 불편하다. 왜냐면 그 위에 먼지가 쌓이는 데 그건 청소하기가 더 까다롭기 때문이다. 자꾸 이런 얘길 하다 보니 영 더러운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데 뭐, 그렇게 깔끔 떠는 유형도 아니니.
청소를 다 하고 '또오해영'을 본다. 연애 드라마는 잊고 있던 연애 세포를 자극한다. 혼자 지지리 궁상맞게 울다가 웃다가 심장이 쿵쿵 거리다가 남의 연애사에 몰입한다. 그것도 가짜 러브 스토리에 말이다. 열심히 보다가 나는 어땠더라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내 맘 구석구석을 들여다본다. 나는 어떤 사랑을 했지?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까.
그래. 마음도 청소가 필요하다. 그것이 이별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라면 필수다. 어질러지고 정리 안된 기억과 추억과 생각들이 한 가득이다. 그것들은 헤어진 후에도 지독하게 자라고 생각도 못 할 때 입 밖으로 툭 터진다. 술을 먹으면 눈 밖으로 꾸역꾸역 밀려 나온다. 그것이 어떤 모양 새였는지 몰라도 그런 무형의 감정과 생각과 기억들이 어떤 물질이 되어서 나올 때는 대부분 모양이 비슷하다. 눈물 또는 콧물의 모양이다. 좀 그런가? 머리카락도 머리에 붙어 있을 땐 이쁘자너.
아주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못 하고 너무 쌓여버린 짐들에 감당할 수 조차 없을 때가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아주 아주 오랫동안 방황한 적도 있었다. 온갖 쓰레기로 가득 채운 적도 있었고, 기억이 쌓인 방에서 도저히 숨 쉴 수 없어 겉돌기만 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었다. 있다면 그냥 시간이 지나서 결국 치워야 할 것들은 치워야 한다는 것뿐.
나는 뭐든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게 좋았다. 더 이상 손댈 것도 없고 잃어버릴 것도 없고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래서 늘 같은 방식으로 늘 같은 자리를 며칠에 한 번씩 정리하고 청소하고 그런 단순한 일들 말이다. 그러나 내 사랑은 한 번도 같은 방식으로 같은 자리를 정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늘 부서지고 깨지고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기억들, 망가진 감정들, 제 자리에 있지 않은 불안한 사람들 그런 것들이 날 미치게 했다. 사랑도 그냥 처음부터 한 결 같을 순 없는 것 일까.
지독한 폭풍이 지나가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모든 것은 제자리가 있지만 그것이 내 방에 어울리는 것들이 아니었음을. 그저 자라나 떨어지는 머리카락들처럼, 내게 너무 소중했지만 언젠가는 떨어져 나갈 인연이었음을. 내가 붙잡으려 해도 그럴 수 없는 것들이 여전히 존재함을 말이다.
사람은 자꾸만 움직인다. 사랑은 자꾸만 만들어 낸다. 기억은 자꾸만 생성된다. 이것들은 언젠가는 떨어지고, 사라진다. 우리는 부지런히 그것들을 쓸어 담는다. 언제 이렇게 많은 것들이 있었나 싶어 놀라기도 하지만 미루면 미룰수록 많은 것들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들. 늘 한결같은 것들은 오히려 지나치기 쉽다. 때론 안정적이고, 때론 지루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을 사랑한다. 방바닥에 뒹굴던 머리카락과 생각들은 하나씩 발견될 때마다 새롭고 놀랍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것들이 이 바닥에서 아무렇지 않은 낯짝을 하고 돌아다니는 거지? 그러나 그것들은 발견되는 즉시 청소가 시작된다. 그리고 다시 익숙한 것들만 남는다.
때론 그런 것들이 귀찮지만 나는 여전히 며칠에 한 번, 그리고 별안간 마음이 답답할 때 그것들을 쓸어낸다. 그것들은 한 동안 쓰레기통에 방치되다가, 다시 문 앞에 꽉 찰 때까지 서있다가, 어느 날 진짜로 멀리멀리 수거되어진다. 그렇게 멀리 사라진다.
청소란 그런 것이다. 한 번에 끝나는 청소는 없다. 귀찮아도 해야 하는 일이란 게 귀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