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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리 Oct 30. 2022

거울을 들여다보듯

마음을 돌볼 때였다

1.


전 남자친구의 디지털 성폭력과 그 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2차 피해들은, 내게 여러모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나는 이 이후 페미니즘에 더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되었다. 내 고통을 나만의 문제로 여기고 싶지 않았다. 사회적 맥락을 알고 싶었다. 이를테면,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여기는 가부장제의 오랜 시각. 여성의 몸을 서로 선물함으로써 얻어지는 남성적 유대감. 의아했다. 가해자는 나를 사람으로 보기는 한 걸까? 어떻게 여자의 몸과 여자의 인격이 분리 가능한 것인 양 굴 수 있을까? 나는 수많은 공모자들에게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네가 보고 있는 그 ‘야짤’ 속의 주인공, 그 여자도 사람이야! 가슴만 잘려 있다고 사람이 아닌 게 아니라고!”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싶어서 대학원에 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카데믹한 연구는 내 목소리를 내는 것과는 조금 달랐고, 이제 나는 다른 글을 쓰고 싶다.



2.


페미니즘을 공부한다고 내 마음이 치유되지는 않았다. 돌이켜보면 괜찮은 수순이었을 수도 있다. 페미니즘 덕에 내가 겪은 일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많은 여성들이 나와 같은 피해를 겪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구조의 문제임을 알았다. 그러니 이제 내 마음을 돌볼 차례였다.


하지만 정신과에 이런 생각을 하고 갔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즐겁지 않은 대학원 생활과 석사 논문에 지쳐 있었다. 대학원에 적을 두고는 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 나는 그것이 나의 주요 문제라고 생각했고, 논문과 진로 문제 이야기를 주로 나눴다. 의사는 적절한 면담과 약 처방을 했고, 몇 달이 흘렀다. 

어느새 나는 의사를 좋아하고 있었다.


여전히, 누군가를 원하는 모양이었다. 남자에게 그렇게 당했으면서도, 여전히 남자를 사랑하고 싶은 거야, 나는.



한동안 의사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자각한 것과, 그것 때문에 밀려온 트라우마 때문에 괴로웠다.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하는 것도 창피했고, 외상적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힘겨웠다. 홀로 글을 썼다. 그것이 1화의 글과, 다음화의 서간문이다. 



3.


전이(transference) - 긍정 전이


환자가 과거 중요한 인물을 향하고 있던 감정, 욕구, 방위를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에게 향하는 현상을 전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환자에서는 유아기에 주로 부모님에게 향하던 감정, 욕구, 방위기제 등을 치료자에 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전이 중 신뢰, 동경, 애정 등의 긍정적인 감정을 말합니다. 


(출처:아산병원 알기쉬운 의학용어 https://www.amc.seoul.kr/asan/healthinfo/easymediterm/easyMediTermDetail.do?dictId=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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