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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리 Sep 02. 2022

나는 보호자를 바란다는 말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당신을 바란다는 말이라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는 보호자를 바란다는 말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당신을 바란다는 말이라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당신이 차트에 무엇을 썼을 지는 모르겠다. 내가 짐작할 영역은 아니겠지, 이 글이 당신이 짐작할 영역은 아닌 것처럼. 


당신이 무어라고 말을 했더라. 당신이 자주 그러하듯, 내 말을 한 번 더 정리해 내게 일러 주었으려나. 이 화제는 오래가지 않았다. 필경 내가 말을 돌렸으리라.


실재하는 누군가에 대해 이렇게 많은 글을 써본 건 당신이 처음이다. 나를 스쳐 지나간 그 남자들 중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이렇게 글을 쓰지 않았다.


나는 말한다. 이것은 상상이 아니다.


친구는 동등하게 친밀함을 나누잖아요, 저는 그것도 너무 소중하고 좋아요. 제 친구는 애인보다 더 중요한 친구기도 하고요. 하지만 외롭다고 느꼈을 때, 제가 바란 건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물론 친구도 의지해요, 서로 의지하죠. 하지만 그때 떠올린 건... 조금 더 보호자 같은 사람이요.


나는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상상이다.


사실 그게 당신이예요.


앨리슨 벡델은 그녀의 심리 상담사 조슬린이 그녀를 안아 주기를 바랐다. 마음이 좋지 않을 때, 차를 타고 조슬린이 사는 집 앞까지 가 그녀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곤 했다. 그녀가 자신의 엄마였으면 하고 바랐다. 그녀에게 그저 내담자들 중 하나가 되고 싶지 않았다. 특별하고 싶었다. 그녀를 사랑했다.*


나도 그렇다.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 잠시 이부자리에 앉아 있었다. 왜 생각이 그리로 뻗어 나갔는지는 모른다. 그래, 나는 파도 앞의 돌멩이고, 그 생각이란 파도에 젖는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리라. 내 머릿속에서 나는 계속 주치의에게 안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안기고 싶다, 란 다섯 음절만 되뇌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계속 계속 완성했다. 그래서 바로 옮겨 적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안기고 싶다. 섹스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가끔은 그가 나를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벡델의 그래픽 노블을 읽고 든 생각일지도 모른다. 벡델은 조슬린이 그녀를 안아 주기를 바랐고, 실제로 요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조슬린은 거절했다.) 나는 요청할 생각은 없다. (거절 당하기 싫으니까.) 하지만 상상은 자유다. 나와 그의 포옹이 전혀 에로틱할 필요는 없다. 그는 여느 때처럼 셔츠 위에 의사 가운을 입은 채가 좋겠다. 나는 지금처럼 회색 목폴라와 슬랙스 차림일까. 그는 포옹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담백하게 내게 닿았다 떨어지겠지. 아니다, 이건 상상이니까, 우리는 밀착된 포옹을 할 것이다. 나는 내 손바닥 안에서 구겨지는 그의 가운의 감촉을 느낄 것이다. 그 아래 나를 안느라 팽팽해진 등을 느낄 것이다. 뺨이 서로 닿을 것이다. 아니다, 망할 역병 때문에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렇다면 마스크를 쓴 뺨이 닿고, 나는 그 투박한 섬유를 타고 전해져오는 압각을 느낄 것이다. 가슴이 짓눌리도록 진한 포옹을 원한다. 하지만 침대로 가기 전 단계의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그 다음 단계가 없기에 아쉬운 마음을 가득 담은 포옹이길 원한다. 그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내렸으면 좋겠다. 난 머릿결이 좋으니까.



이건 거의 사랑이지만, 아니 필시 사랑이지만,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 모를 사랑이다.


그렇지만 당신이 웃을 때가 이미 좋다. 좋아진 지 오래 됐다.


'숨죽여 쓴 사랑시'가 당신을 향할 줄이야.**




*앨리슨 벡델, <당신 엄마 맞아?/ 웃기는 연극> 원제는 <Are you my mother?/A comic drama>


** IU- 'Love Poem' 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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