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오리 Sep 01. 2022

물속에서

나의 지질한 방황기

1.


코로나에 걸렸다. 생각이 ‘내게도 이런 일이?’와 ‘마침내 올 것이 왔군’ 사이에서 왕복했다. 놀란 시선이 자가진단키트에 선명히 뜬 두 줄 사이에서 왕복했듯이. 알려진 대로 열이 오르고 어지럽다가, 목이 아팠다. 다행히 증세는 심각하지 않았다. 아직은 젊은 육체 덕일까.


물리적으로는 차단되었지만 가족, 친구들에게 랜선으로나마 보살핌을 받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방문 앞으로 계속 날라지는 과일을 먹으며 호사를 누렸다. 방에 드러누워서 핸드폰 게임을 하다가 깨달았다. 나 지금 오랜만에 편한 마음으로 누워 있구나. 


바꿔 말하면, 그간은 죄책감에 짓눌려 있었다는 것이다.


서른 한 살이 되도록, ‘번듯한 직장’을 가져본 적 없는 게 내 콤플렉스라면 콤플렉스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과외 아르바이트도 조교 업무도 했지만, 그래도 왠지 쪼그라드는 내가 있었다. 경제적으로 ‘생산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것. 사회가 말하는 ‘정답’의 길을 걷지 않고 있다는 것. 아무리 내가 배우는 인문학이 경제적으로 환산되는 것만이 가치 있다는 명제에 반대한다해도, 나는 내가 쓸모없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대학원 석사과정에 지원하며, “저는 윤리적이고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적을 만큼 순진했다. (지금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연구에 대한 흥미가 떨어져 가면서도 석사 논문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윤리적이고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만은 아니었다. 나는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 된다는 감각이 무서웠다. 그저 학위 논문일 뿐인 석사 논문이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유일한 척도인 것 마냥 굴었다. 정신과 의사가 “논문이 ‘많은 것’들을 해결해줄 거라 생각하는군요.”하고 말했을 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는 이해가 된다. 나의 쓸모 있음을 증명할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었던 것이었다. 논문은 나의 금빛 지푸라기였다. 더는 연구에 애정도 무엇도 없었지만.


그리고 논문 준비하는 대학원생에서 백수가 되었다. 정신과에 다니고, 블로그에 글을 끼적이는 것이 근 1년 간 가장 꾸준히 한 일이다. 이번에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을 읽으며, 항상 ‘쓰는 사람’이고 싶었다던 저자에게 무척 공감했다. 나 역시 그랬다. 대학원에 간 것도 쓰는 사람이고 싶어서였다. 다만 자의식이 비대해서인지, 혹은 내 안에 풀리지 않는 어떤 문제가 있어서인지, 이제 나는 식민지 시기의 소설이나 60년대 영화보다는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하고 싶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2.


때로는 생각한다. 나 혼자서만 물 속에 있는 것 같다고. 다른 이들이 땅을 박차고 힘차게 걷는 동안, 나는 물 속에서 흐느적거린다. 단단히 디딜 땅이 없다. 발끝은 바닥에 닿지 못한다. 발바닥을 간질이는 물결뿐. 같은 동작을 해도 물 밖과는 다르다. 물의 저항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느껴야 한다. 동작은 느릿느릿하다. 물살을 가르고 멋지게 나아가고 싶지 않아. 그냥 몸에 힘을 빼고 둥둥 떠 있고 싶다. 그런데 숨이 턱턱 막힌다. 학자금 대출과 핸드폰 요금이 턱, 턱 연체될 때 특히! 엄마가 자신의 남편이 아닌 내게 카드 값에 대해 말할 때는 더욱 더 턱! 턱!


그러다 아픈 사람, 특히 공인된 전염병에 걸린 자가격리자가 되자, 간만에 부모님이 나를 챙겨준다고 느꼈다. 챙김 받는 게 좋았다. 잘 먹어야 낫는다며 아빠가 통장에 돈을 조금 입금해 줬을 때는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한국장학재단과 LG유플러스야, 얼른 돈 가져가렴. 내 알량한 신용 등급 지켰다. 휴.


돈이 없는 것만 빼고는 나쁘지 않은 일상이다.



3.


나도 내게 필요한 것이 정신과 치료와 규칙적인 식사, 운동, 그리고 작은 성취의 감각이라는 것을 안다. 햇살과 커피와 산책만으로도 내가 꽤 기뻐하는 인간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햇살, 커피, 산책은 개뿔. 그것 때문에 내가 코로나에 걸렸겠는가? 물론 코로나에 걸리는 것은 그저 운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자조적 유머일 뿐이다.


돈도 없고 앞길도 막막하여, 나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그냥 질펀히 놀고나 싶었다. 소위 ‘헌팅 포차’라고 불리는 곳에서 최소한의 술과 안주만 시키고 남자들의 접근을 기다리곤 했다. 그 남자들에 비해 내가 좀 늙긴 했지만 걔들이 씀씀이는 더 컸다. 나랑 섹스하고 싶어서 소고기도 사주고, 샴페인도 사주는 걔들이 좋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주지 말았어야지!)


하지만 간만에 몹시 기분이 더러운 섹스를 하고 다짐했다. 나는 강남에서 15만원을 주고 홀로 숙박할 지갑 사정이 아니었다. (그 돈이 있으면 학자금 대출을 갚았겠지?) 그러니까 나는… 숙박비가 아까워서 별로 섹스하고 싶지도 않은 남자랑 모텔로 들어갔다 이거다. 어휴, 다음부터는 PC방에서 홀로 밤을 새우리라. 이런 구린 남자랑 자느니 <오버워치>의 허벅지 단단한 리퍼와 질펀하게 화물을 미는 게 낫겠어. (첨언. <오버워치>는 PC 게임이고 리퍼는 그 게임의 캐릭터이며 화물을 미는 것은 그 게임의 미션이다.)


낯선 남자와 섹스하지 말라며 만류하던 — "박오리씨가 상처받을까봐 걱정하는 거예요” — 정신과 의사는 나를 혼내지는 않았다. 다만 ‘다소 충동적인 행동의 이유를 아는 것이 좋겠어요.’ 하고 말했다. 그는 항상 나더러 이유를 알아보자고 한다. 잘 모르겠는데요.


그는 내가 곧잘 ‘눈을 감는다’고 말했다. 내가 현실을 외면하듯 잠을 많이 자는 것도, 낯선 남자와 섹스를 하는 것도, 일종의 ‘눈을 감는 것’이라고. 나는 무엇을 보지 않으려는 걸까? 나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걸까? 역시 모르겠다. 발 디딜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발가락, 클리템네스트라,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