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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리 Oct 30. 2022

내가 어머니와도 아버지와도 다른 사람인 걸 알아

나는 더 좋은 선택을 하며 살 것이다

1.


최근엔 내가 다니는 정신과에 친구가 갔었다. 친구도 요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용기를 낸 것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친구는 정상이라고 한다. 약 처방은 필요 없고, 체력을 키워야 한다고. 나는 사실 이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화된 의료 시스템이 찾아오는 ‘소비자’ 누구나를 진단명에 욱여넣고 병리화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야 돈을 버니까. 그런데 친구에게는 그렇게 말했다 해서, 내가 정상이 아니긴 하구나 싶었다. 한편 병원이 최소한의 양심은 있군, 하고 생각했다.


이 일은 어머니에게 내 ‘비정상성’을 설득할 수 있는 하나의 증거 자료가 되기도 했다. 어머니는 나의 정신병을 부정하고 싶어한다. 나는 동생들과 달리 믿음직한 맏딸이라고 십여 년을 여기며 살아와서 그럴 것이다. 어머니 역시 독립적이고 강한 여성이지만, 내게 정신적으로 의존하는 면이 분명 있다. 나는 그것이 사랑스럽고 버겁다. 당신이 똑똑하고 믿음직하다고 여기는 당신 딸이 아프기는 아프답니다. 그것은 당신도 힘들겠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랍니다.


당신이 결혼했던 내 나이 즈음부터 내 나이만큼의 시간이 흐른 지금. 당신은 삼십 년 동안 폭력적인 남편을 견디고 아이 셋을 부양하며 소처럼 일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책임이 너무 커서 외로울 시간도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신이 ‘지킨다’고 여겼던 가족의 모든 구성원들은 병들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조금은 원망하며 더 사랑한다. 하지만 우리가 만날 수 없었더라도, 당신이 이 가정을 이루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게 딸의 사랑이다.

 


2.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옛날부터 아버지가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것에도 소위 ‘버튼이 눌리며’ 분노 조절을 못하는 모습이 너무 싫었다. 하지만 내가 동생에게 어느새 그러고 있기도 했다.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그처럼 될 까봐 두려웠다. 조울증은 가족력이 강하다고 하고, 아마 나는 아버지에게 병도 물려받은 모양이다. 흰 피부와 짙은 눈썹과 머리카락, 센 척하면서 사람을 좋아하는 성정, 의외로 약한 것에 물러 터진 모습과 함께. 나는 아버지에게는 한 마디도 하지 않지만, 아버지는 우리의 강아지를 안고 가끔은 나를 배웅하지 않는 척 나를 배웅한다. 나를 쫓아 나오는 강아지를 말리는 척하면서.


아버지. 나는 당신에게 증오와 두려움과 경멸과 일말의 연민을 함께 느낀다. 당신은 내게 경멸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당신이 나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것을 알았다. 당신은 내게 어느정도, 당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투영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부모란 존재들이 자식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일까. 나는 아마 내가 당신과 닮아서, 당신을 조금 이해하고 증오한다. 당신이야말로 치료받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육십년이 너무 아깝다. 우리를 괴롭혀온 삼십년은 더 아깝다. 개새끼.


나는 당신이 내게 “저년은 누굴 닮아서 저래”라고 할 때, “네 딸이라서 그래, 씨발” 하고 일갈했다. 나는 저런 말을 할 수 있다, 당신이 당신의 아내에게는 잔인하면서 내게는 약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나는 내가 태어나기 전의 당신에 대해서는 모른다. 당신이 차라리 남성이 아니었다면 나았을까? 잘 모르겠다. 그러면 당신의 분노는 당신 자신을 향했겠지. 어느 쪽이나 당신은 불행했을 테지. 하지만 적어도 한 여성과 당신의 자식들을 불행하게 하진 않았을 테지.


우리 자매는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 못했다. 그나마 내가 나은 수준이었다. 여동생 역시 우울증으로 나와 함께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 우리 가족은 이렇다. 각자의 결핍에 허덕이고 있다. 가족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이렇게 적어 놓으니 우습다. 자조가 어느새 내 성격의 특징이 되었다. 나는 뭐가 그렇게 우스울까. 사실 괴로우면서.

 


3.


나는 오늘 딸기우유 색 셔츠를 입었고, 친구가 골라준 귀걸이를 했고, 스틸라의 블러셔를 감탄하며 내 뺨에 올렸고, 그에 맞춰 핑크빛 틴트를 입술에 발랐다. 햇살을 느끼며 카페에 왔고 나에게 무덤덤한 듯 친절한 카페 직원에게 커피를 주문했다. 나는 셔츠 색깔이 예쁠 때, 블러셔가 기가 막히게 어울릴 때, 아주 사소한 친절을 익명의 누군가와 나눌 때, 모두 기분이 좋아진다. 카페에 내가 원하는 창가 자리가 비어 있을 때도 기분이 좋다. 카페인이 몸에 도는 느낌도 좋다. 키보드를 누르는 작은 소리들도 경쾌하다. 


내가 어머니와도 아버지와도 다른 사람이란 걸 안다. 나는 더 좋은 선택을 하며 살 것이다. 동생의 주치의가 말해준 것처럼, 잘 살았다는 건 늘그막에야 결정 날 거니까. 그러고 보면 내 주치의는 그런 말을 왜 안해주지? 하다가, 내가 주치의에게 힘들다는 소리를 별로 안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튼 괜찮은 척하는 것도 습관이다. 내일은 주치의에게 나의 트라우마에 대한 얘기를 꺼내봐야지. 나는 더 좋은 선택을 하며 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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