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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리 Oct 30. 2022

......엄마?

초봄, 진료실 안

1.


나는 주치의에게 ‘선생님과 멀어졌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이제 날 신경 안 쓰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는 왜 그렇게 느끼는지에 대해 물었고, 나는 이게 내 기분 문제일지도 모른다고도 말했다. 나는 요새 어떤 것도 좋아하지 않으니까. 주치의는 “관계의 멀어짐이 자신의 기분에 달려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네요.” 했다. 그러면서, “지난번 진료에서 치료자의 말 중 불편했던 건 없었나요?” 하고 물었다.

 

“말…은 없었어요. 아, 진료를 짧게 해준 건 명백히 불만이예요!(15분이라니!) 그리고 제가 이사했다고 진료 텀을 조정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서운했어요. 1주일마다 볼만한 환자는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어요. 물론 배려 차원에서 하신 말씀이겠지만요. 그걸 아는데도 서운했어요.”

 

주치의의 표정은 웃음을 참는 것인지, 쓴웃음을 짓는 것인지, 그저 평온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망할 마스크.  

그가 농담을 했다. “치료자와 정말로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긴 했네요.” 

나도 일단 웃었다. 그러게요.  



2. 


최근에 공부를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했다. 어려운 책은 읽히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주 쉬운 책만 읽는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의 내 상태가 이래도 되는 건지, 해야할 것에서 회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얘길 했다. 그리고 주치의가 "괜찮아요. 조금 쉬어 가도 돼요." 하고 말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답은 정해져있으니 의사 너는 나한테 위로를 해줘, 라는 의미는 아니었고, 당신에게 '이러한 말'을 '바라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주치의는 물었다. 


"그렇다면 듣고 싶지 않은 말은요?"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너 정말 한심하다." 

"앞으로 뭐 해먹고 살래?" 


주치의는 그런 말을 다른 사람에게 들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항상 내게 그렇게 말한다고 답했다.  



3. 


그가 말했다. 


“치료자가 ‘무언가’를 대신해서 지지의 말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무언가요? …제 내부의? 외부의?” 

“아뇨.” 


나는 아마 눈썹을 일그러뜨렸을 것이다. 약간 찡그린 채 주치의를 보았다. 하지만 다음의 단어를 뱉는 걸 참을 순 없었다. 


“……엄마?” 


순간 그의 눈이 반짝였다.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 진 기분이 들었다. 나는 선생님이 원하는 답을 맞힌 모범생이 되었다. 그렇게 착실하게 그가 만든 흐름에 끌려갔다. 아오 그 놈의 양육자! 양육자가 그렇게 중요하냐! 정신분석이 그렇게 좋냐!


약간 즐거우면서도 주치의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고 싶은 기분이었다.   


"우리의 이야기에서 아버지는 악, 어머니는 피해자였죠. 하지만 어머니에게도 보고싶지 않은 모습이 있을 수 있어요. 지난 진료 때 제가 '어머니에게 보고싶지 않은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을 했었어요.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해서,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치료자와 멀어졌다'고 느끼는 건 아닐까 계속 생각했어요."

 

나는 솔직히, 그가 그런 말을 했었다는 게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정말 하나도. 나는 계속 재차 정말 엄마 얘기를 했느냐고 물었다. 주치의는 "정말 듣기 싫었나보군요." 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괜찮으시겠어요?"  


그럼 여기까지 와서 안 괜찮다고 하겠는가. 


“네.” 


정신과 의사 P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분석 임상 사례 n번째가 된 기분이다.  



4. 


그는 아마도 내가 곧잘 무기력해지는 이유를 부모에게 느끼는 얽히고 섥힌 감정에서 찾고자 하는 것 같다. 치료자에 대한 전이 감정을 치료적으로 다뤄보겠다고도 했었고. 나는 솔직히, 엄마를 대신하는 존재로 나의 주치의를 보고있다고 인지하는 게 좀 웃기다. 당연히 웃기지, 주치의는 (아마도) 30대 남자란 말이다. 좋아한다고 생각했다가, 성적으로 생각했다가, 내 아빠나 오빠나 남편이 되어줬으면 하고 생각했다가, 성적이지 않은 의미로 안기고 싶다가... 지금은 뭘까?

 

이상한 활력이 도는 것은, 어찌됐든 새로운 문을 연 느낌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컨텐츠가 생긴 느낌이랄까. 주치의는 내가 복용하는 약의 변화는 최소화하면서, 면담 위주로 진료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약을 늘리지 않아서 실망하실 수도 있지만, 하고 덧붙였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어머니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뭐가 적절한 말일지 생각한다. '정신과 의사에게 말하는 상상하기'가 어느새 내 취미(?)가 되었다. 더 무기력할 때는 그냥 병원 가기도 귀찮다고 생각하는데, 적어도 지금은 이 새로운 컨텐츠가 어떻게 진행될까, 상상하게 된다.  


나는 기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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