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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리 Oct 30. 2022

안기고 싶어요

겨울, 진료실 안

1.


주치의는 거의 내 말을 듣기만 했다. 무기력하다는 이야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 갖고 싶은 것도 없다는 이야기, 이곳(병원)에 오기도 싫고 더 자고 싶었다는 이야기.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래서 논문도 못 쓸 것 같다고 했다. 공부를 시도해봤자 어차피 잘 안 될 것 같다는 얘기도 했다. 주치의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큰 가봐요.”하고 말했고, 나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아예 안 든다고 말했다. 


한번은 엄마가 다소 격앙된 태도로 내게 “다 버겁다”는 말을 해서 내가 피했다는 얘기도 했다. 



2.


창피해서 과연 할 수 있을까, 했던 말이었지만, 결국 해버렸다. 


“선생님한테 안기고 싶어요.”  


성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자고 싶다는 말도 애저녁에 했으면서, 이 말이 더 창피하다고 했다. ‘안기고 싶다’는 ‘자고 싶다’보다 더 나의 의존성을 드러내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매우 주저하며 말했기에, 주치의는 일단 하기 힘든 얘기 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두 가지로 내 감정을 분석했다. 첫째, 치료자를 성적인 대상에서 ‘보살핌을 주는 존재’로 보아가는 것 같다. 둘째, 어머니에게서 보살핌을 받을 수 없으니 — 오히려 내가 그녀에게 보살핌을 줘야 하고, 그게 내게는 버거운 일이니 —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을 찾는 것 같다.  


나는 그에게, 


“근데 저는 아기가 아니잖아요. 자고 싶다는 욕망은… 성인 같은데, 보살핌을 바라는 건….”


하고 말했다. 나는 서른 살 먹고 애처럼 보살핌을 바라는 내가 때로 비참하다. 주치의는 말했다. 


“누구에게나 정서적인 보살핌은 필요하죠. 애기가 아니란 말은, 애기가 아니면 보살핌을 받을 수 없다. 애기만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 나는 보살핌을 받을 수 없으니 독립적이어야만 한다. 오히려 보살핌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맞나요?”


맞는 것 같다고 대답하며 눈물을 닦았다. 


그는 앞으로도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오리씨에게 중요할 것 같다며, 오늘 말해준 것도 고맙고 앞으로도 이야기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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