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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조회 시간이 다 되어서야 집을 나섰다. 어차피 늦었으니 천천히 가기로 마음먹었다. 등교 시간이 지난 등굣길은 평화로웠다. 따스한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 기분을 조금 더 만끽하고 싶어 일부러 느리게 걸었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어느덧 교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시계를 보니 1교시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난 화장실에 들어가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세면대에 서서 천천히 손을 씻었다. 찬물이 피부에 닿자, 묘하게 긴장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안 가,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복도를 지나, 교실 문을 밀었다. 어제와 같은 풍경. 숨을 한 번 내쉬고는 천천히 자리를 향해 걸었다. 슬쩍 소희를 보았다. 소희는 언제나처럼 책상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을까. 난 혼자 지지고 볶고 다 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선 여전히 불쾌한 대화들이 들려왔다.
“뭐야. 진짜 아저씨잖아?”
질리지도 않을까? 고개를 돌려 그쪽을 보았다. 교실 뒤편에서 수진과 무리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 수진이 들고 있는 카메라 속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와... 사진까지 찍혔으니까 이제 빼도 박도 못 하겠다.”
“미치겠다. 얘 표정 봐.”
수진이 카메라 버튼을 눌러 사진을 넘겼다. 다음 사진. 또 다음 사진. 사진이 넘어갈 때마다, 그들의 반응은 더 커졌다. 키득거리는 소리, 어깨를 치며 떠드는 몸짓... 그걸 보고 있자니, 역겨워 토가 쏠릴 지경이었다.
“수진이 너도 대단하다. 어떻게 찍은 거야?”
“아~ 누가 알려줬어.”
수진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보았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수진을 따라 나를 보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상이라도 집어 던지면 한동안 조용해질까? 그게 아니라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뭐라도 하고 싶은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푸하하.”
교실 한쪽에서 경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럽게 터진 웃음소리에, 순간 교실이 얼어붙었다. 나도 얼떨결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웃음의 주인은 소희였다. 분명 조금 전까지 무심하게 창밖을 보던 소희였다.
소희는 웃음을 멈추려는 듯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그 웃음은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쟤 왜 저래?”
“미친 거 아니야?”
수진도, 무리 아이들도, 나도, 그리고 교실 안 모두가 당황한 얼굴로 소희를 보았다.
“미안. 너무 웃겨서.”
소희는 한참을 웃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교실을 가로질러 천천히 수진 앞으로 걸어갔다. 소희의 행동 하나하나에 교실이 술렁였다.
소희가 수진 앞에 멈춰 서, 그 손에 들려있는 카메라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시선을 들어 수진을 바라보고는 낮은 어조로 말했다.
“이거... 네가 찍은 거야?”
“왜? 들켜서 놀랐어?”
수진은 뻔뻔하게 말을 받아쳤다. 그런데, 수진의 손이 부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소희는 수진의 카메라를 뺏어 들고는, 천천히 사진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사진 잘 나왔네. 초점 나간 게 좀 흠이지만.”
수진이 어이없다는 듯 비웃으며 말했다.
“당당한가 봐? 수치심 같은 건 안 느끼나?”
“내가? 내가 왜 그런 걸 느껴야 해?”
잠깐의 정적.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그때, 수진이 카메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소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 손을 피했다. 그러고는 카메라를 자기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다음엔 대놓고 찍어줘. 그럼 포즈라도 취해줄게.”
소희는 자리로 돌아가 가방을 어깨에 두르고는 망설임 없이 교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런 소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복도 쪽 창문 너머로 소희가 보였다. 그때, 소희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리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입 모양으로, 아주 또렷하게 말이다.
“집에서 봐.”
*
소희가 나가자, 교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수진은 소희가 사라진 걸 확인하고서야 노발대발했고, 교실에선 여전히 불쾌한 소리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학교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소희가 내게 한 말이 자꾸만 맴돌았다. 집? 자기 집은 아니겠지? 그럼, 우리의 집. 지붕이 없는… 그곳.
학교가 끝나자마자, 소희에게로 달려갔다. 교문을 넘어, 지겨운 동네를 지나, 우리가 늘 가던 곳으로. 한참을 뛰니, 목이 바싹 탔다. 입안에서 희미하게 단맛이 돌았다.
얼마 안 가 폐건물 앞에 도착했다. 숨을 한 번 들이쉬고,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빡빡한 쇳문을 힘껏 밀어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내 눈에 소희가 들어왔다.
“일찍 왔네?”
소희는 언제 갈아입었는지,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원피스는 햇빛을 머금어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였다.
“안 추워?”
내 물음에, 소희가 히죽 웃고는, 옷을 자랑하는 어린아이처럼 빙그르르 돌았다. 원피스가 바람을 머금고 한순간 흩날렸다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이쁘지.”
“…응.”
“추우면 껴입고, 더우면 얇게 입고, 그런 거 지겹잖아?”
그 말이, 마치 주사를 꽂은 것처럼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소희는 가볍게 고개를 기울이며 내게 물었다.
“넌 안 궁금해?”
“뭐가?”
“아까 그 사진 말이야.”
소희의 물음에, 나는 대답 대신 그냥 어깨를 으쓱였다. 소희는 그런 나를 한동안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여기도 이제 지겹다. 그치.”
소희는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몸을 뒤로 젖혔다가 툭- 다시 앞으로 숙였다. 마치 뛰어내릴 듯이 말이다.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소희의 팔목을 붙잡았다. 소희는 멈칫하더니, 피식 웃으며 돌아봤다.
“우리 놀러 갈래?”
“…갑자기?”
“응.”
“어디로?”
“몰라? 이 동네에서 제일 멀리.”
시계를 보았다. 좀 있으면 학원에 가야 할 시간이었다.
내게는 정해진 루틴이 있었다. 항상 그랬듯이 말이다. 내가 대답이 없자, 소희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그럼 여기 있던가~ 난 간다!”
그러고는 휙 돌아서서는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점점 소희가 내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나는 가방끈을 꽉 쥐었다. 그때, 소희가 고개를 돌려 내게 손짓하며 말했다.
“빨리 와!”
*
우리는 마치 좋은 일이라도 생긴 사람들처럼, 익숙한 거리를 발 닿는 대로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정류장에 멈추어선 황록색 버스가 우리 눈에 들어왔고, 소희는 곧장 버스에 올라탔다. 나도 질세라 소희를 따라 버스에 올라탔다.
“이거 어디 가는 버스야?”
“몰라? 어디 가지?”
소희가 뒷자리로 가 버스 창문 위에 붙어있는 노선도를 보았다. 그러고는, 오른쪽 가장 끝에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바다 갈까?”
소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사미 해변 길] 이 버스의 종점. 가는 데만 아마 두 시간은 걸리겠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소희는 신이 난 듯 창문을 열고는 바람을 맞았고, 나도 소희의 시선이 닿는 곳을 보았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동네 풍경을 보고 있으려니, 왜인지 여행이라도 떠나는 것만 같아 가슴이 간질거렸다. 소희가 나를 힐끗 보더니, 이어폰 한쪽을 내 귀에 꽂아주었다.
곧이어 음악이 흘러나왔다. 투박한 사운드.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가사. 처음 들어보는 밴드의 음악이었는데, 반주에 섞여 있는 노이즈 소리가 괜히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무슨 노래야?”
“비밀.”
나는 장난스럽게 소희를 노려보았고, 소희는 피식 웃으며 내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 소희의 손끝이 살짝 이마에 닿았다.
소희가 드럼 박자에 맞춰 손가락으로 내 무릎을 툭툭 건드렸다. 나는 그런 소희의 손끝을 힐끗 보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리듬을 따라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자 소희가 옆에서 피식 웃었다.
“같은 노래 듣는 거 맞아?”
“이거 아냐?”
“그냥, 귀여워서.”
순간 내 볼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부끄러워 고개를 돌렸다. 소희가 손가락으로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내가 반응이 없자, 소희는 더 장난스럽게 손을 뻗어 내 볼을 찔렀다. 자꾸만 찔러서, 소희의 손을 잡았다. 그때, 순간 심장이 터질 뻔했다. 소희의 손을 아주 살짝 잡았을 뿐인데, 숨도 제대로 못 쉬겠고, 괜히 머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손을 떼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잡은 그대로 있고 싶었다. 내 볼이 빨개진 걸 보여주기 싫어 고개를 푹 숙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비비라도 더 바르고 올걸…. 소희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참을 키득거리다가 말했다.
“여진이 너도 한 이상함 하는 것 같아.”
“안 이상하거든.”
소희가 내 어깨에 기대었다. 따듯한 온기와 함께 적당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소희의 숨소리가 이어폰을 비집고 들어와 내 귀를 간지럽혔다. 그 소리는 어느새 음악과 함께 어우러졌고, 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음악을 들었다.
어느덧 버스 종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