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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우리는 다시 멀어졌다.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서로 말을 걸지 않았다. 소희는 책을 보거나,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고, 나는 그런 소희를 힐끗거리며 지켜봤다. 자꾸만 소희의 손끝이나 머리칼 같은 자잘한 것들에 시선이 갔다.
수진과 아이들의 관심도 어느새 나에서 소희로 옮겨갔다. 처음엔 전학생이라면 누구나 받는, 잠깐의 관심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소희는 예쁘고, 피부 하얗고, 머리색도 빛나는 갈색이고…. ‘한 번쯤 눈길이 가는 애’였으니까.
다만, 소희는 그들의 관심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다가오고, 말을 걸어도 짧게 대답하거나, 애매하게 웃고 넘겼다. 딱히 무례한 건 아니었지만, 애초부터 거리를 두려는 태도처럼 보였달까.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봐.”
“걍 싸가지가 없는 거야.”
그런 소희가 거슬렸나 보다. 하긴, 자기들보다 잘난 존재가 나타나면, 곁에 두거나, 망가뜨려야 한다고 믿는 애들이니까. 지금의 수진과 그 무리는, 마치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을 거다. 그런 그들에게 소희 같은 애는, 그 믿음을 흔들기에 충분히 불편한 존재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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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부턴가, 소희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전 학교에서 학폭 문제로 강제 전학을 왔다는 둥, 전 동네에서 알아주는 양아치라는 둥. 소문은 순식간에 번졌고, 과장되고 변형되며 퍼져 나갔다.
‘전학생’ 소희는 어느새 ‘이상한 애’에서 ‘위험한 애’로 변해 있었다.그들이 소희를 대하는 태도가, 왠지 낯설지 않았다. 무리에서 어긋난 애는 쉽게 타겟이 되거든. 다만, 나는 반응했고, 소희는 반응하지 않았다.
소희의 아무 일도 없다는 듯한 그 무심함이, 왠지 멋있어 보였다.하여튼 간에, 교실에서는 서로 남처럼 지냈다. 눈이 마주쳐도 모른 척했고,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의 세상에 있는 사람들처럼 굴었다. 하지만, 교실 문을 나서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같은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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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에서의 소희는 교실 안 소희와 달리, 더 가볍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우리는 꼭 어딘가에서 만나서,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처럼 발을 맞췄다. 문득, 매일 소희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묘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무슨 학원?”
“수학.”
“으, 지겹겠다.”
소희는 늘 같은 질문을 했고, 나는 같은 반응을 했다. 대화는 아무 의미도 없었지만, 그마저 편안했다.
우리는 계단을 하나씩 올라, 낡은 철제문을 밀었다. 쇠가 긁히는 소리와 함께, 옥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스치듯 지나갔다. 소희는 늘 그랬듯 난간 앞으로 가서 몸을 기댔다. 햇빛 아래 소희의 머리칼이 반짝이며 흩날렸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봤다.
“지겹지 않아?”
“뭐가?”
“그냥, 학교, 학원, 집… 그러다가 나이 먹고, 그렇게 살다가 끝나는 거.”
소희를 바라보았다. 소희의 눈빛이 이상하리만치 담담해 보였다.
“반복되는 삶은 오늘로 끝났으면 좋겠어.”
“…그러게.”
“난 있잖아.”
소희는 잠시 말을 멈추고 하늘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붉게 물든 노을빛이 천천히 소희의 눈동자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냥… 살아 있을 때, 죽고 싶어.”
소희가 낮은 어조로 말했다. ‘살아 있을 때, 죽는다.’ 무심하게 흘러나왔지만, 안에는 단단한 심지가 박혀 있었다. 단순한 체념일까, 아니면 어디에도 닿지 못한 자유를 꿈꾸는 걸까. 나는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소희는 이미 저 너머에 서 있었다. 내가 감히 닿을 수 없는, 멀고 낯선 곳에 말이다. 그 생각이 들자, 나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 두려움과 동경, 그리고 그 사이 어디쯤에서 맴도는 무언가…. 나도 소희와 함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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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자, 식탁 위에 영양제와 따뜻한 레몬차가 놓여 있었다. 나는 약을 집어 들었다. 하얀 알약을 손바닥 위에서 가볍게 굴리다가, 입에 털어 넣고 레몬차를 마셨다. 그 순간, 엄마가 말했다.
“여진아.”
“응.”
혹시 학원에 가지 않은 걸 아셨을까. 목이 바짝 말랐다. 나는 조용히 컵을 내려놓았다.
“너네 반에 전학 온 애 있니?”
“…응.”
순간적으로 숨을 들이마셨다. 엄마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걔랑은 멀리해.”
손끝이 저릿했다. ‘소희를… 멀리하라고?’ 이상했다. 엄마가 이유 없이 이런 말을 할 리 없다. 엄마는 소희를 본 적도, 소희에 대해 아는 것도 없을 테니까. 그때, 불현듯 학교에서 들었던 소문들이 떠올랐다. ‘학폭.’ ‘강전.’ ‘위험한 애…’ 혹시, 학교에서 도는 소문이 진짜일까. 아니면, 엄마가 알고 있는 무언가가 따로 있는 걸까. 더 묻고 싶었다. 하지만 묻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멀리해야 한다.’ 엄마의 그 말이, 잠이 들기 전까지 머릿속을 맴돌았다. 문장 하나가 천천히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올랐다. 그럴수록, 소희가 떠올랐다. 소희가 창밖을 바라보던 표정. 처음 내게 말을 걸었던 순간. 옥상에서 불던 차가운 바람. 그리고, 그 바람 속에서도 묘하게 따뜻했던 미소. 눈을 감아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내일도 소희와 함께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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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교실은 유독 어수선했다. 한쪽에서 수진 무리가 웅성거렸다. 이번엔 또 무슨 소문을 만들어냈을까.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들릴 만큼 큰 목소리. 어쩐지 불길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 속에서 ‘소희’라는 이름이 들렸다.
“누가 봤대. 밤에도 같이 있었다더라.”
“미친, 진짜 실화야? 아빠 아니고?”
“아, 개 토 나와….”
가슴 안쪽이 불안하게 떨렸다.시간이 지날수록, 교실 안의 웅성거림은 커졌다. 작은 불씨 하나가 삽시간에 번지는 것처럼, 말들이 교실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그 말들은 점점 살이 붙어 나갔다.
“내가 봤다니까? 젊은 아저씨랑 막 손잡고 걸어가는 거?”
“분위기가 좀…. 아 소름끼쳐.”
“돈 받은 거라던데?”
소희는 이제 단순한 전학생이 아니었다. 그리고, 날이 지날수록 소희의 존재는 마치 허구의 인물처럼 변해갔다. 없는 이야기들이 실체처럼 떠돌았고, 사실이든 아니든, 모두가 그걸 사실로 믿어갔다. 그런데도, 소희는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책을 읽었고, 창밖을 바라봤고, 덤덤하게 하루를 흘려보냈다. 점심시간, 급식 줄에서 누군가 소희의 이야기를 떠들었다. 나는 들리지 않는 척했지만, 그 말들이 기어이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때, 소희가 바로 앞줄에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애들은 소희가 바로 뒤에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입을 나불거렸다. 나는 조용히 시선을 옮겼다. 소희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정말로 무심한 건지, 모른 척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이 모든 게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앞을 바라보았다. 다만, 소희의 손끝이 살짝 오므라졌다. 주먹을 쥐려다 마는 것처럼 말이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아니면, 버티는 걸까. 혹시, 무너지고 있는 건 아닐까. 말을 걸어볼까 했지만, 목이 턱 막혔다. 막상 마주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소희가 괜찮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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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따라, 쉬는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늘어졌다. 나는 가방을 챙기다 말고, 손을 멈췄다. 이상하게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때, 내 책상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여진아.”
낯익은 목소리였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수진이었다. 수진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자연스럽게 내 앞에 섰다. 그러고는 책상 모서리를 손끝으로 툭툭 두드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수진이 가벼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상했다. 수진이 나한테 먼저 말을 걸 리가 없다. 무언가를 감추고 있을 거다.
“너, 소희랑 친하지?”
“…아닌데.”
순간 숨이 막혔다. 분명 그냥 묻는 게 아니었다. 말을 끝낸 수진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만 살짝 올라간, 익숙한 표정. 그러고는 한발 다가와, 나를 내려보며 말했다.
“에이, 맨날 같이 다니잖아. 어제도 같이 가는 거 봤는데? ”
수진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장난스럽지만, 이건 그냥 질문이 아니었다. 대답을 정해두고 나를 떠보는 거다. 나는 수진의 시선을 피하고는 입을 닫았다. 괜히 입술이 바짝 말랐다.
“재밌었어? 그것도 꽤 늦은 시간까지.”
수진은 뭔가를 알고 있었다. 아니, ‘확신’하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수진이 나를, 그리고 소희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최대한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흔들렸다.
“…너 나 따라다녀?”
내 말에 수진이 크게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 아이 같아서, 오히려 더 불길했다. 손끝이 저릿했다. 불안함은 가슴까지 차올랐다. 수진은 그런 내 반응이 흥미로웠는지,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팔짱을 끼고 몸을 천천히 숙였다.
“소희, 소문이 진짜야?”
“뭐?”
“너는 다 알고 있을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