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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소희는 나를 보고 웃었다. 다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냥 가벼운 눈인사 같은 걸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의미가 있는 걸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순간 내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는 것이다.
그 뒤로, 소희가 자꾸 신경 쓰였다. 나도 모르게 소희를 살폈다. 소희는 수업 시간을 빼고는 자기 자리에서 책을 읽었다. 그러다, 아주 가끔 창밖을 내다보았다. 쉬는 시간, 몇몇 아이들이 다가와 실없이 말을 건네어도, 소희는 딱딱한 답변 외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상했다. 분명 전학 첫날인데, 소희가 한 거라곤 고작 짧은 인사를 건네고, 이름을 밝힌 게 전부였다. 아이들과 친해지려는 노력도,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려 애쓰지도 않았다. 마치 원래부터 이 학교에 다니던 사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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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저번 사건 이후로, 수진과 아이들은 더 이상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또다시 없는 사람 취급했다. 마치 내 앞에 투명한 벽을 세우고, 나를 그 안에 가둬버린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다만, 저번과 한 가지 다른 점은, 그 벽을 건드리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는 거다.
‘유소희...’
소희와 자꾸 시선이 마주쳤다. 처음엔 우연이라 생각했지만, 시선을 의식할수록 더 자주 마주쳤다. 너무 멀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에서 말이다. 그렇게 눈이 마주치면, 묘한 웃음을 보이고는 나를 스쳐 지나갔다.
소희를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자꾸만 뒤통수가 가려운 느낌이 들었다. 혹시 소희가 나를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소희를 너무 의식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무의식중에 소희를 찾고 있는 걸까. 아니야. 그냥 내 착각이겠지. 같은 반이니까, 눈에 띄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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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학교가 끝나고, 학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난 평소처럼 귀에 이어폰을 꽂고 도로변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맞은 편 작은 가게 유리창 너머에, 흐릿하게 비친 내 모습 뒤로 소희가 보였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모른 척해야 할까? 그러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소희가 내 이름을 부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발소리가 일정한 박자로 다가왔다. 그에 맞춰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소희가 내 손끝을 톡 건드리며 물었다.
“어디 가?”
소희는 너무 자연스럽게, 마치 원래 나와 대화를 주고받던 사이처럼 물었다. 당황한 나머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학원.”
“윽, 재미없겠다.”
소희가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고는 내 앞을 천천히 걸으며, 무언가 기다리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너는?”
“나? 그냥.”
소희가 걸음을 멈추더니, 내 앞으로 크게 한 걸음 다가왔다. 소희의 얼굴과 너무 가까워,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가까이에서 본 소희의 눈동자는 빠져들 것만 같았고, 그 안에 내 모습이 비칠까 고개를 돌렸다. 소희의 가느다란 머리카락 사이로 희미한 시트러스 향이 맴돌았다. 아주 작은 숨소리도 들렸다. 소희는 어깨를 으쓱이며 내게 말했다.
"같이 갈래?"
"...어딜?"
"가보면 알아."
학원에 가야 할 시간이었다. 항상 그랬듯이, 정해진 루틴대로.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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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를 따라 도착한 곳은, 동네 어느 구석진 곳에 있는 한 폐건물이었다. 소희는 자주 오던 곳인 것처럼 계단을 뛰어 올라갔고, 난 그런 소희를 따라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꼭대기 층에서, 낡은 철제문을 밀어 열자, 귀를 긁는 듯한 쇳소리와 함께, 탁 트인 동네의 전경이 보였다. 소희는 익숙하게 난간으로 다가갔다.
바람이 불었다. 소희의 머리카락이 어깨를 따라 부드럽게 흐트러졌다. 난간을 잡은 소희의 손끝이 미세하게 움직였고, 햇빛 아래 소희의 살결은 투명하게 빛났다. 문득 시선이 오래 머문 것 같아, 천천히 눈을 돌렸다.
옥상 벽엔 오래된 낙서가 뒤덮고 있었고, 바닥에는 언제 버렸는지 모를 쓰레기들이 널려 있었다. 궁금했다. 소희는 나를 왜 이곳에 데려온 걸까.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집은 답답해서. 여긴 지붕이 없잖아.”
소희는 피식 웃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소희의 시선 끝에, 구름 한 점 없는 텅 빈 하늘이 있었다.
"너, 나랑 말하고 싶었지."
갑작스러운 소희의 물음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순간적으로 핑계를 찾아야 할 것 같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고개를 돌려 소희를 보았다. 소희도 나를 보고 있었다. 소희의 미소에, 차마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응..."
전부터 느꼈지만, 소희와 시선이 마주칠 땐 ‘나를 보고 있었다’와 같은 그런 일반적인 느낌이 아니었다. 그보단 마치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에 더 가까운 느낌이랄까. 그 순간, 햇빛이 강해서 눈을 찡그렸다. 소희가 손을 들어, 가볍게 내 눈을 가려주었다.
"그렇구나."
소희는 주머니에서 작은 플라스틱병을 꺼냈다. 뚜껑이 ‘딸깍’ 소리를 내며 열렸다. 소희가 하얀 손끝으로 병 안을 더듬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알약을 꺼내 입에 넣고는, 물도 없이 삼켰다. 자연스러운 그 모습이 어디선가 본 장면 같았다. 아, 어젯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던 딱딱한 알약….
“너도 필요하면 말해.”
소희가 병을 흔들며 말했다. 소희가 말하는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또다시 바람이 불었다. 소희의 옷깃이 흩날렸다. 난 그런 소희를 바라보았다. 소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하늘만 바라보았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어.”
“어떤 생각?”
“그냥, 멀리 날아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멀리 떨어져 있고 싶다. 모든 것으로부터... 뭐, 이런......”
소희는 말을 마친 뒤,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가, 크게 내쉬었다. 나도 소희를 따라 숨을 들이쉬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너도 그런가 해서.”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해가 저물고, 옥상이 붉게 물들 때까지.
*
그날 밤, 꿈을 꿨다. 꿈이라고는 너무 생생한, 아니, 어쩌면 꿈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곳은 유난히 공기가 맑았다. 상쾌한 바람이 내 피부를 스쳤다. 무중력 상태. 나는 분명 떠오르고 있었다. 날고 있었다. 소희와 함께.
갑자기 눈이 떠졌다. 숨을 들이켰다. 아직 숨이 쉬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