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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 들판에 남은 것들

#655

by 조현두

저문 들판에
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가늘게 흔들리는 가지 끝에는
잎사귀 하나 더 머물지 못하고
떨어진 자리마다
묵은 그림자가 쌓여 있었다


말없이 사라진 발자국은
흙먼지 속에서 사라지고
마른 풀잎들이 서로를 스치며
지난 계절의 숨결을 기억한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헤매게 했는지

무엇이 이들을
끝끝내 무너뜨렸는지

어떤 빛도 닿지 않는 틈에서
이제는 흔적만이 남았다

다시 피어나지 않을 씨앗들
부서진 가지 끝의 맺히지 못한 열매들
그저 흔들리고
사라지고
더 이상 머물지 못한 채


하지만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손끝에 맺힌
묵은 흙냄새처럼
그 기억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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