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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머물던 방에서

#656

by 조현두

한때 서로를 비추던 햇빛이
천천히 기울어 갔다
우리는 그저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작은 흔적을 남길 뿐

그날의 대화들은
이제 아무 소리도 남기지 않는다

잊힌 말들과 닫힌 마음들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순간들

우리가 바라본 같은 하늘은
서로 다른 구름으로 끝내 뒤덮힌듯
침묵 속에서
서늘한 바람만이 들려왔을 뿐


나는 오래된 책갈피에서
한 조각 꽃잎을 발견한 듯
지나간 계절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향기는
이미 아련하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계절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조용히 멀어질 뿐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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