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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664

by 조현두

도무지 이 신전을 오르는 일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산 정상에 위치한 신전을 향해 가파른 계단을 오를 때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발끝에서부터 허벅지까지 찌릿한 고통이 느껴지지만, 이것이 신에게 다가가는 대가라면 감수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무지하고 배우지 못한 내가 신전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도 신의 은총이라 믿는다. 하지만 별이 밝게 빛나는 밤마다 나는 조상들에게 묻고 싶다. 왜 이토록 험한 곳에 신전을 지었는지.

우리 신전의 신단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배의 모형이 있다. 다른 마을의 신단에는 귀금속이나 화려한 꽃, 귀한 도자기가 모셔져 있다고 들었지만, 우리의 신단은 지나치게 소박하다. 오빠는 이런 신단을 보며 종종 혀를 찼다.
“어디 가서 자랑할 것도 없는 신단이야. 이런 조잡한 나무 배를 신성하다고 모시다니.”
오빠의 말처럼 이 성상은 마치 동네 아이들이 장난삼아 물가에 띄우는 배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 배에 얽힌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 그저 오래된 전통이라는 말뿐이었다.

오늘 신전에 낯선 이방인이 나타났다.
그는 우리와 비슷한 생김새였지만, 말씨와 행동에서 어딘가 이질적인 기운을 풍겼다. 먼 마을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신전의 성직자들과 어른들은 그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우리의 전통은 낯선 이를 배척하지 말라고 가르쳤지만, 그 경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그를 멀찍이 지켜보며, 어른들의 냉랭한 태도를 조용히 따라할 뿐이었다.

신단을 닦고 있던 내게 그가 말을 걸었다.
“이게 뭔가요?”
“우리 신전의 성상입니다.”
“무엇을 기리는 건가요?”
“…모릅니다.”
“언제부터 있었나요?”
“글쎄요, 저도 잘 몰라요.”
“왜 여기에 있는지는요?”
“그것도 모릅니다.”

질문이 끝났을 때, 나는 그의 침묵이 어딘가 불편했다. 그래서 내가 아는 만큼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들어본 바로는, 이 성상은 한때 마을의 유서 깊은 배로 쓰였다고 해요. 오래되어 썩고 낡자 그 일부를 떼어 이렇게 신단에 모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단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시선이 성상에 머무는 동안, 신전에서 가장 엄격한 무녀조차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어색한 정적 속에서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배는 어떤 배였나요?”

그 말은 겨울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부딪히는 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소중한 배였겠지요. 다만, 저는 글만 겨우 익힌 무지한 소녀라 더 이상은 알 수 없답니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성상이 왜 성상인지 모른다니, 아이러니군요.”
“그렇지만, 소중한 것이기에 성상이 된 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작은 천 조각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이걸 잘 간직하세요.”
그리고 그는 노을 속으로 걸어갔다. 나는 신전 문앞까지 따라 나가 그를 배웅하며 천 조각에 적힌 낯선 글자를 살폈다. 오빠가 오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천을 단단히 쥐었다.



.

.

.

.

.


모든 것이 무너졌다. 아니, 무너졌다기보다는 멈춰버렸다.
땅은 흔들리고, 불은 일렁였으며, 비명이 온 하늘을 뒤덮었다. 사람들은 깔려 죽고, 타 죽고, 떨어져 죽었다. 오빠는 보이지 않았고, 나만 먼지를 뒤집어쓴 채 숨어있었다. 언제 집이 다시 무너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신전을 떠올렸다. 그 높은 곳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신단을 확인하고 싶었다. 무너진 산길을 따라 신전 자리에 도착했을 때,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신전은 사라졌지만, 신단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성상 또한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온전했다.

신단 아래 빛나는 돌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그날 그가 내게 건네주었던 천 조각에 적힌 글귀와 같았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앞으로는 왜 성상인지 모두가 이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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