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6
여름은 무너졌다
말들은 서로 엉켜 있었고 마음은 방향을 잃었다
햇빛은 지나치게 컸고 그림자는 없었다
나는 눕거나 너무 오래 깨어 있거나
어느 쪽도 나를 회복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시집을 꺼내 든다
손에 닿는 종이의 질감 눌린 갈피
오래 전에 읽었으나 아직 끝나지 않은 문장들
그 속에 단단한 숨이 하나 들어 있다
가을은 그렇게 시작된다
예고 없이
빛이 낮아지고 공기가 얇아질 때
문장 하나가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다
말들이 정리되기 시작하고
나는 조용히 한 줄씩 나를 덮는다
마음 한 귀퉁이는 아직 젖은 채다
다 마르지 못한 문장이 내 안에 있다
그래도 나는 넘겨본다
조용히 한 줄씩
곧 겨울이 올 것이다
슬픔은 그 계절을 따라 밀려올 것이다
나는 그걸 안다
그러나 피하지 않는다
가을로 가기 위해
조금 덜 무너지기 위해
나는 오늘 시집을 펼친다
처음의 문장을 다시 읽는다
아직은 끝나지 않은 계절의 입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