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여린 것들만이 오랫동안 흔들렸다

#735

by 조현두

나는 당신에게

풀잎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바람에 젖고, 햇살에 기우는

가장 연약한 것들이

가장 오래 흔들린다는 걸

먼저 젖는 마음으로

비 오는 날의 길가를 걷던 사람

꽃보다 먼저 진 것들에게

말 없이 다가가던 눈동자


그대와 나란히 걷던 어느 오후

나는 처음으로

바람이 아플 수 있다는 걸 알았고

햇살이 미안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한여름에도

겨울밤을 품은 듯하던 당신

깨질 듯한 바람 속에서도

눈동자엔 늘

별빛 하나가 깃들어 있었다


우리는 끝내 서로를 부르지 않았고

그저 방향만을 향하던 나날들

나는 당신을 따라 눕는 풀잎이었고

당신은 자주

그 풀잎을 지나쳐 갔다


이제 나는

당신이 머물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말을 몰라도

그대의 눈으로 바라본 적 있는 것들에

이제는 나의 숨을 고르며

새로운 의미를 건넨다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은

아무 말도 없던 당신의 뒷모습이

나에겐 오래 머무는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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