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현두 Jul 31. 2024

하늘과 구름의 경계가 선명하기에

#554

오늘 하늘은 그랬습니다

하늘은 하늘이였고 구름은 구름이였지요

구름은 하늘이 되지 못햇고

하늘은 구름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그래서 시를 읽었습니다

유명한 작가는 아니었습니다

글에 촉감이 있다면 우둘투둘 만져질 것만 같은 날 것의 글을

나는 참 고즈넉하게 읽었습니다


어제는 동백을 분갈이 하였습니다

찬란한 계절은 짙은 초록 끝에서 반짝였습니다

아마도 얼마남지 않은 시간이 지나 찬바람을 맞더라도

동백은 다시 붉은 빛 고혹적으로 밀어올리지 않을지요


오랜 산에 올라서 사랑이 되지 못한 것들을 생각합니다

사랑이 되지 못한 그리움이 또렷해지는 것은 하늘 탓이 맞을겁니다

어쩌면 하늘과 구름의 경계가 흐린 것이 조금 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하늘에 구름 한점 없었다면 슬펐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늘도 산도 구름도 뒤섞인 그런 날이였으면 희무끄레 한 마음이 다독여졌을지 모르겠습니다


운명이 정해준 내 사랑은 아킬레우스와 거북의 경기인 줄 알았지만

참 운이 좋게도 나는 그대를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대가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대는 내게 참 많은 이야기를 남겨놓고 갔습니다

 

헐거운 운명은 그대를 그곳에

나를 여기에 두기로 하였나 봅니다

그대는 나를 앞질러 갔으니 나는 한발짝 뒤에서 그대 머리 구름이 되겠습니다

바람이 불었을 때 나는 사라졌다가

바람이 멈추는 날에 그대의 온 하늘을 덮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멀리가지 말고 바람이 닿는 곳에 있어주시기 바랍니다


내 그리움이 고개를 젖히면

하늘만 올려다보시면 좋겠습니다

내 그리움이 고개를 젖히면

나도 하늘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오지 않을 편지에 답장을 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