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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름 Nov 10. 2022

큰 일 아니에요  

2022.11.10

오늘 고등학교 강연이 끝나고 사인을 하는데, 한 학생이 힘을 주는 문장을 적어달라고 했다. 

00님, 큰 일 아니에요, 하고 적어주었다. 


--


큰 일 아니에요. 적어놓고 보니 과연 이 문장이 고등학교 학생에게 힘을 주는 문장이 될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학생 뒤에 서 있던 학생도 화이팅할 수 있는 글을 적어달라고 해서 또 이렇게 적어주었다. 00님, 큰 일 아니에요. 


집에 오면서 잘못 적어주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 문장은 내가 평소에 괜한 감정이나 걱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그러니까 힘을 내기보단 그 상황을 애써 넘기기 위해 쓰는 말이다. 예상치 못한 일격을 받거나 짜증이 확 날 때 내가 나에게 말한다. 큰 일 아니야. 황보름, 큰 일 아니야, 알았어? 큰 일 아니니까 그냥 넘겨. 


큰 일 아니야, 하고 말하면 실제 대부분의 일들이 큰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좀 짜증은 나지만 좀 손해는 봤지만 좀 상처는 받았지만 좀 기분은 나쁘지만, 큰 일은 아닌 것이다. 큰 일이 아니니 나는 그 일을 넘길 수 있다, 넘겨야 한다, 그래야 다시 가뿐한 하루를 맞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큰 일 아니라는 주문은 내가 다시금 평화로 되돌아가기 위해 하는 말.


아이들에겐 잘못 적어준 문장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데 꽤 도움을 주는 문장이기에, 그 아이들이 졸업하고 진학도 하고 취업도 하고 별 거지 같은 인간도 만나고 하면서 힘이 들 때, 이 말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긴 하다. 00야, 큰 일 아니야, 스스로에게 들려주며 감정을 추스르고 자기 자신에게 더 중요한 것들에 다시금 귀를 기울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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