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내 입에 들어갈 음식을 처음 만들어본 나이는 서른이었다. 대책 없이 퇴사를 한 후 영어 공부 외엔 할 일이 없던 때였다. 학원에 다녀와 모니터 앞에서 미국 드라마나 뉴스를 틀어놓고 큰 소리로 혀를 굴리다 보면 목구멍이 컬컬해졌다. 이제 공부는 그만하고 먹을 걸 좀 만들어보라는 신호. 목을 가다듬으며 부엌으로 나와 학원에서 돌아오다 사 온 식재료를 손질했다. 레시피가 시키는 대로 재료를 썰고 양념을 만들고 재료와 양념을 섞어 볶거나 끓였다. 시키는 대로만 했는데도 짬뽕에선 짬뽕 맛이 났고, 순대 볶음은 정말 순대 볶음이었으며, 잔치 국수는 시원했고, 심지어 오이김치도 정말 오이김치였다.
일주일에 두세 번, 마음이 동할 때마다 먹고 싶거나 한번 해보고 싶은 음식을 만들었다. 엄마가 일부러 가르쳐주지 않던 것들을, 어차피 결혼하면 하기 싫어도 하게 될 테니 미리 발 들이지 말라며 가르쳐주지 않던 것들을, 그러니까 음식 재료를 고르고 육수를 만들고 간장과 소금과 액젓으로 간을 보고 또 진지하게 맛을 보는 일련의 부엌일을, 나는 혼자 깨쳐갔다.
간 좀 봐달라고 숟가락을 건넬 때면 엄마의 표정은 여러 개가 됐다. 부엌일엔 도통 관심 없던 둘째 딸이 요리 하나를 뚝딱 해내는 게 신기하다는 표정이다가, 원하는 삶을 살겠다며 회사까지 때려치우더니 도대체 얘가 여기서 뭘 하는지 묻고 싶은 표정이다가, 지금껏 그래왔듯 딸의 아주 작은 재능이라도 들춰내 칭찬을 해줘야 하는지 난감해하는 표정이 되었다. 여러 개의 표정으로 맛을 본 엄마는 언제나 맛있다고 했다. 맛있다면서 소금이나 간장을 더 넣으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 한 엄마는 내게 먼저 밥을 차리라 하지 않았다. 요리에 관심이 생긴 딸을 쿡쿡 찔러 본인이 좀 편해보고자 할 수도 있을 텐데, 엄마에겐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 듯했다. 오늘 저녁은 내가 할게, 하면 엄마는 그럴래? 하고는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봤다. 딸이 차려준 밥을 먹고 설거지는 본인이 했다. 내가 하겠다며 싱크대 앞으로 몸을 들이밀어도 엄마는 기어코 밀치며 저리 가라고 했다. 엄마가 거쳐온 세계에서 부엌일은 다른 모든 일의 대립항 같았다. 이 일에 손을 댔다간 큰일 나는 것이다. 다른 모든 일을 손에서 놓아야 하니까. 엄마에게 부엌일은 딸이 가진, 또는 딸이 꿈꾸는 무한한 가능성을 앗아가는 것이었을까. 그렇기에 딸이 요리에 가진 관심이 그리 달가운 게 아니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엄마가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요리를 향한 내 관심은 내가 먹고 싶은 걸 내 손으로 어디까지 만들어 먹을 수 있는지에 국한되어 있었으니까. 레시피를 보며 하나씩 만들어보는 시간은 재미있기도 했다. 내가 먹고 싶은 걸 푸짐하게 만들어 가족에게 대접하고, 가족이 맛있게 먹어주면 기분도 좋았다. 쿠키를 구워 출근길에 싸주기도 하고, 식빵을 구워 퇴근하고 온 가족에게 썰어 내주기도 했다.
요리를 할 때마다 성취감이 쌓여가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백날 되뇌어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요리를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요리는 과정을 절대 배반하지 않아서 레시피대로만 하면 떡볶이가 나오고 초코칩 쿠키가 나왔다. 요리를 하나 할 때마다 자기 효능감이 쑥쑥 크기를 키웠다.
일 년쯤 요리에 열을 올리다 다시 일을 하면서는 거의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 일 년의 실습 후에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할 수 있는 음식이 라면밖에 없던 사람에서,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건 엄청난 변화였다.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기술 하나를 습득한 셈이니까.
내 손으로 내 입에 들어갈 걸 만드는 기술. 물론 내가 습득한 기술은 잔기술에 가까웠다. 숙성에 며칠이 걸리는 복잡한 요리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긴 시간의 정성과 섬세함을 요하는 요리, 또 생고기를 손질해서 굽고 튀기는 요리까지 나아간 건 아니었으니. 삼십 분에서 한 시간 남짓 움직이면 그럭저럭 먹을 만한 완성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술. 내겐 이런 잔기술만 있으면 됐다.
내 요리는 어디까지나 내 짧은 입이 그때그때 원하는 것에 집중됐다. 멸치, 다시마를 시원하게 우려낸 육수에 퐁당 빠진 탱탱 칼국수. 맥주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매콤 짭조름한 골뱅이 쫄면(소면 아니고 쫄면!). 달착지근한 소스를 듬뿍 두른 오므라이스. 때 되면 한 번씩 끓여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참치김치찌개. 십오 분 만에 완성 가능한 간편 된장찌개. 간단한 걸론 최고인 오일 파스타. 엄마보다 더 잘하는 김치볶음밥. 그리고 가끔은 국물 떡볶이, 한 번쯤은 떡강정.
며칠 전엔 집들이 겸 놀러 와 하룻밤을 잔 친구에게 요리를 해줬다. 거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친구가 말했다. 이렇게 느긋한 아침을 얼마 만에 맞는지 모르겠어. 친구가 이 시간을 더 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나는 넌지시 물었다. 수제비 먹고 갈래? 응? 어떻게? 내가 해줄게. 최근 수제비에 빠져 일주일에 한두 번씩 해 먹고 있던 참이었다. 레시피를 볼 필요도 없이 스텐 볼에 밀가루를 붓고 소금과 식용유를 알맞게 친 후 물을 부었다. 숟가락으로 밀가루를 휘젓다가 손을 씻고는 그대로 부엌 바닥에 앉아 밀가루를 치댔다. 날 보며 친구가 재미있다는 듯 웃어서 나도 같이 웃었다.
결국 우리의 대화 장소는 부엌이 되었다. 내가 호박이니 양파니 써는 옆에서 친구는 이야기를 했고, 채소를 썰다 말고 놀란 나는 친구의 얼굴을 봤다. 오랜 친구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하는 말은 내가 그간 알던 내용과 많이 달랐다. 정말? 네가 그렇다고? 인간이란 타인에게 얼마나 어렴풋한 존재인지 새삼 놀라며 나는 채소를 마저 썰었고,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사이 끓어오른 육수에 수제비를 뜯어 투하했다. 요즘 장수제비에 꽂혀있던 터라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 얼큰 칼칼한 수제비를 만들었다.
커다란 그릇에 수제비를 담아 친구에게 대접했다. 친구의 입에 수제비가 후룩 들어가는 걸 보고 나도 먹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 했던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대접하는 시간은 언제나 좋다.
혼자 살게 되면서 세운 규칙이 하나 있다. 하루에 한 끼 이상은 꼭 직접 해 먹기. 아침은 식빵이나 과일로 간단히 먹고, 점심은 시간을 최소한으로 투자하는 범위 내에서 차려 먹고, 저녁은 그날그날 먹고 싶은 음식을 시간을 들여 해 먹기. 시간을 들인다고 해도 어차피 내가 먹고 싶은 건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대개 삼십 분만 공을 들이면 다 해 먹을 수 있다. 미리 육수만 끓여놓으면 떡국 같은 것도 금방 만들 수 있으니까. 그전에 멸치에서 똥을 따 냉동 보관해 놓았다면.
요리를 직접 해 먹으려는 이유는, 내 일상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로 요리만 한 게 없다는 생각에서다. 나는 지금껏 매일 직접 요리를 해 먹는 사람의 인생이 손쓸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단 소리를 들은 적 없다. 내가 듣고 본 이야기 속에서, 요리는 보통 뿔뿔이 흩어졌던 하루의 조각조각을 이어 붙이는 용도로, 삶을 재건하는 용도로 쓰이곤 했다. 도마에 파를 올려놓고 어슷썰기를 한다는 건 나를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끝까지 망가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나에겐 있다.
재건의 도구로 요리가 특히 좋은 건, 앞에서도 말했듯 매일의 요리가 작은 성취의 경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다른 건 다 망친 하루라도 김치볶음밥 하나 맛깔나게 잘 만들어 먹었다면 그날은 뭐라도 하나 한 거다. 뭐라도 하나 하는 하루가 쌓이다 보면 끝이 난 것 같던 삶도 다시금 열린 문 앞에 서게 된다. 그 문은 조금씩 더 열린다. 김치볶음밥을 맛있게 먹을 때마다.
얼마 전엔 충무 김밥이 먹고 싶어서 섞박지를 해봤는데 맛이 괜찮았다. 깍두기도 몇 번 하다 보니 이젠 손쉽게 하게 된다. 총각김치도 해봤지만 다시 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여러 번 씻는 과정에서 몸이 녹초가 되었다. 만약 누가 와서 총각무를 깨끗이 씻어주기만 한다면 한 해에도 몇 번이나 담고 싶을 정도로 맛은 좋았다. 언젠가는 배추김치를 한번 담가봐도 좋겠다. 당장은 말고, 정말 언젠가. 내 입맛에 딱 맞게 잘 담가봐야지.